Arlo Pro 카메라 사용기

아무래도 카메라를 달아놔야 할 공간이 생겼습니다. 공간을 외부로부터 분리할 문이 있긴 하지만 이 문을 잠가버릴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공간에는 종종 사람들이 드나들었고 집안에서는 이곳을 확인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카메라를 달기로 마음먹고 알아보니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일단 카메라는 당연히 전기를 필요로 하니 배선이 필요했고 카메라로부터 영상을 받아 기록하고 보관할 장비도 필요했습니다. 후자는 사실상 하드디스크가 달린 컴퓨터나 다름없으니 그리 복잡해보이지 않았지만 배선은 공사를 필요로 했고 그 정도 시간과 비용을 투입할만한 이슈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요즘 세상에는 배터리로만 동작하는 낮은 수준의 보안카메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구입한 것은 넷기어의 Arlo Pro입니다. 이 결정을 내릴 시점에 이미 후속 모델이 나와 있었고 이 글을 쓰는 시점에는 4K 영상을 지원하는 후속 모델이 프리오더를 받는 중입니다. 굳이 최신 모델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일단 이전 모델 가격이 뚜렷하게 낮았고 'Arlo Pro'와 'Arlo Pro 2' 사이에 기능 차이가 크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베이스 스테이션 하나와 카메라 두 개를 구입해 공간의 서로 마주보는 위치에 설치해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구동원리

이 카메라가 배터리로 구동될 수 있는 이유는 항상 영상을 녹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적외선센서와 사운드센서에만 전원을 공급하고 있다가 이 센서에 이벤트가 감지되면 그때서야 영상을 녹화합니다. 영상은 베이스 스테이션을 통해 넷기어 웹사이트에 업로드하고 다시 영상 녹화를 중단합니다. 실제로 이벤트가 일어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생각보다 오랜 기간 추가 충전 없이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제조사에서는 태양광 충전장치를 별도로 판매하는데 처음엔 상당히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지만 아마존의 구매평이 하도 무섭게 적혀있어서 더이상 고려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제조사 주장으로는 제한된 사용 시나리오에서 최대 6개월까지 충전 없이 버틸 수 있다고 합니다.

설치

웹사이트의 광고 이미지에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실외에 설치되어 있지만 실제 제품을 보면 그게 가능할 거라는 신뢰는 간단히 사라집니다. 만듦새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정도로 실외에서 안정적으로 동작할 거라고 예상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카메라를 설치할 공간이 실외였다면 바로 반품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설치할 공간은 단열이 잘 되지는 않지만 눈과 비가 직접 몰아칠 공간은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패키지에는 반구형 자석 마운트가 들어있습니다. 이걸 벽에 고정하고 카메라를 붙이면 설치는 끝납니다. 반구형 마운트는 벽에 콘크리트 못으로 고정하게 되어 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양면테이프를 이용해 고정했습니다. 몇 달 동안 사용하고 있는데 다행히 사고가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양면테이프 점착상태에 문제가 생기면 카메라는 2미터도 넘는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져 완전히 부서질 겁니다. 만약 벽에 구멍을 낼 수 있다면 나사식으로 카메라를 고정하는 마운트를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동작

이 제품을 구입할 시점에는 펌웨어가 훌륭하게 동작하지는 않았습니다. Arlo 아이폰 앱에서 카메라는 잘 조회되지 않았고 이유 없이 베이스 스테이션이 등록된 카메라를 잃어버렸습니다. 해결 방법은 다시 카메라를 떼서 베이스 스테이션 옆에 들고와 등록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며칠에 한번 꼴로 일어나 상당한 스트레스였는데 펌웨어 버전이 올라가면서 광고한 것과 거의 비슷한 동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적외선센서에 움직임이 감지되거나 사운드센서에 임계점 이상의 소리가 들리면 녹화를 시작해 더이상 움직임이나 소리가 감지되지 않는 시점까지 최대 5분간 영상을 녹화합니다.

옵션

카메라 옵션에는 따라 화질을 올리고 배터리 사용시간을 희생할지 배터리 사용시간을 올리고 화질을 희생할지를 선택하거나 한쪽 카메라에 이벤트가 감지외면 다른쪽 카메라도 녹화를 시작하거나 제오펜스에 드나듦에 따라 녹화모드를 켜거나 끌 수 있습니다. 화질은 기본값을 유지하게 됐습니다. 기본값보다 낮은 화질은 사람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운 수준이었고 기본값보다 높은 화질은 배터리를 2주에 한번은 충전해야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기본값을 유지하면 제 경우에는 약 두달에 한번 정도 배터리를 충전해야 했고 이 정도면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입니다. 예상하기에 제조사에서 말한 6개월짜리 시나리오를 달성하려면 지오펜스에 따라 내가 집에 없을때만 켜지도록 하고 가장 낮은 화질로 녹화해야만 했을 겁니다.

영상 관리

베이스 스테이션에는 별도로 스토리지가 없습니다. 베이스 스테이션은 오로지 영상을 업로드하는 역할만 하며 영상은 넷기어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료 서브스크립션으로는 지난 7일 동안의 영상을 유지해주는데 한국에서는 애초에 30일간 영상을 유지해주는 유료 서브스크립션 페이지 접근이 막혀 있으므로 지난 7일간의 영상만 확인할 수 있다고 보면 됩니다. 앱을 통해 영상 각각을 다운로드하거나 스크립트를 사용해 자동으로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영상을 자동으로 다운로드해서 7일보다는 긴 기간 동안 모아두고 있습니다.

외부 서비스 지원

IFTTT와 아마존 에코, 구글 어시스턴트를 지원합니다. 제 사용 시나리오상으로는 24시간 카메라를 켜두기 때문에 그다지 유용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IFTTT를 통해 카메라의 작동 기록을 구글스프레드시트에 기록해두는 것은 의미있었습니다. 날짜, 시간, 요일에 따라 주요 이벤트가 언제 일어나는지 통계를 낼 수 있게 됐습니다. 사실 배터리를 아끼는데 초점을 맞춘다면 카메라를 아예 꺼놔도 괜찮을 것 같은 시간대가 있다는 것도 알게됐는데 이 기계를 가볍지만 보안 용도로 사용하는 이상 배터리를 아낀다고 그런 시도를 하지는 않을 겁니다.

오동작 사례

이벤트가 일어난 직후 녹화를 시작하지만 1~2초 정도 딜레이가 있으며 이벤트가 이 사이에 끝나버리면 영상이 기록되기는 하지만 영상으로부터 아무 정보도 얻지 못하거나 이벤트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놓치기도 합니다. 상황을 완화하기 위해 카메라 두대를 묶어 한쪽에 이벤트가 감지되면 다른쪽 카메라도 작동해 영상을 녹화하게 했지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배터리로 동작하는 상태를 유지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면 오직 감지 용도로만 사용할 세번째 기계를 문 밖에 달아놓고 이쪽에 이벤트가 감지되면 카메라가 영상 녹화를 시작하는 식으로 구성해야 할 겁니다. 제조사에서는 세번째 기계에 적당한 제품을 판매하고는 있지만 용도에 비해 가격이 너무 높다는 생각이 들어 실행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이벤트는 이유 없이 완전히 놓치기도 합니다. 가령 집앞에 택배상자가 스폰됐지만 아무 영상도 기록되지 않는 일도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부분은 여러 차례 특정 택배회사의 배달만 기록되지 않았다는 점인데 예상하기에는 배달원들의 특정 장비에 의해 카메라 동작이 방해받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통제실험을 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 추측만 하는 중이고 이 상황을 피할 방법을 고민해보는 중입니다.

결론

보통 보안 카메라가 일단 설치해놓고 나면 영상을 열어볼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완전히 신경 끄고 지낼 수 있는데 비해 Arlo 카메라는 설치 후에도 상당한 신경을 써야 합니다. 신경을 쓸 여지가 있다면 적당한 가격대에 공사 없이 편리하게 설치할 수 있는 카메라입니다만 신경을 쓸 여지가 없다면 추천하지 않습니다. 안정적으로 동작하게 만들기까지 약간이나마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며 어쩌면 예상하지 못한 지식기반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보안 카메라'라고 말하기에는 미션 크리티컬한 용도에는 사용할 수 없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