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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지난 약 반 년에 걸쳐 공유오피스 프랜차이즈 중 하나에서 일했습니다. 처음에는 회사가 공유오피스에 있다길래 눈을 가늘게 뜨고 거기 괜찮은 건지 의심했습니다. 제게 공유오피스는 그런 이미지였습니다. 여느 정보기술업계와 비교해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가 돈을 얼마나 많이 먹는데 규모가 큰 업무공간을 임차하지도 못하고 공유오피스에 입주해 있다니 애초에 비즈니스를 시작할 돈은 있는지 의심스러웠습니다.

한편 공유오피스에 대해 제가 가진 다른 이미지는 쿨하고 팬시한 공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공유오피스 광고는 항상 사람들이 넓고 아늑한 공간에 모여 랩탑을 펼쳐 놓고 일하거나 밝은 색깔 사무가구를 실리콘밸리 탑클래스 회사마냥 이리저리 배치해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늙고 후줄근한 내가 그런 힙하고 쿨하고 또 팬시한 공간에 적응이나 할 수 있을지 걱정됐습니다. 또 우리들의 개발환경은 랩탑 하나로 간단히 끝나는 그런 환경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정신차려보면 정신 차려보면 모니터 여러 대, 컴퓨터 여러 대, 그 사이에 쌓인 책과 종이뭉치, 먹다만 먹다 만 종이컵과 음료캔으로 가득한 공간이 더 익숙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공유오피스에 출근했습니다.

첫인상은 사진과 달리 더럽다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이 상태로도 멀리서 사진을 찍으면 누르스름한 불빛 아래 예쁜 색상 벽과 바닥과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무가구가 나쁘지 않은 사진빨을 만들어 줄 것 같았지만 사무공간에 한 발짝을 내딛는 순간 이 공간이 잘 관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바로 느꼈습니다. 일단 바닥에 닿는 신발바닥에서 올라오는 느낌으로 미루어 바닥청소가 잘 안 되거나 아예 안되는 것 같았습니다. 또 아침에 출근했는데도 휴지통이 전혀 비워져 있지 않았습니다. 출근해서 처음 한 질문 중 하나는 휴지통을 내가 비우는 것인지, 아니면 관리주체가 비워주는지를 비워 주는지 묻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사무실에 따라 화분에 물을 주거나 커피머신을 청소하거나 휴지통을 비우는 일이 직원의 업무일 때가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휴지통은 매일 늦은 오후에 비우는데 이 일을 하는 스탭에 따라 구석에 놓인 휴지통은 잘 비워지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제가 출근하자마자 본 휴지통이 바로 그 구석에 놓인 휴지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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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또 생각나는 더러운 이야기가 있는데 이전에 한 회사가 층 전체 또는 건물 전체를 사용하던 환경과 비교해 남자화장실에서 손을 안 씻고 나가는 사람 비율이 뚜렷하게 높습니다. 이전에는 열 명 중 네 명 정도가 손을 안 씻고 나갔다면 이제는 일곱 명 정도가 손을 안 씻고 나갑니다. 똥 싸고 그냥 나가는 사람들도 열 명 중 두 명은 됩니다. 이 사람들이 화장실을 떠나 공용공간 구석구석에 손을 댑니다. 화장실에서 나가 물을 받아가기도 하고 커피머신에서 커피를 받아가기도 하며 제빙기를 열고 얼음삽을 덥썩 집어 얼음을 퍼가기도 합니다. 더러운 손이 닿는 여러 물건 이야기를 이어서 하면 돌려서 여는 모든 문 손잡이와 씨리얼 디스팬서 손잡이, 무료 제공되는 우유와 두유 껍질은 영원히 미끌거리고 미끌 거리고 정수기 꼭지에는 항상 커피가 튀어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는데 이런 더러움은 결국 화장실에 모입니다. 맨 처음 이야기를 시작한 잘 관리되지 않는 휴지통, 대강대강 청소되어 방치된 구석들, 공간의 설계보다 더 많이 입주한 사람들, 그 사람들의 위생관념들이 화장실에 모였습니다. 이 설명은 여기서 끊겠습니다.

환기가 안됩니다. 일단 건물 자체가 낡아 제대로 된 공조시설이 없습니다. 냉난방시설은 층 전체를 한 덩어리로 사용하거나 설계자가 예상한 최소 덩어리까지만 지원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공유오피스는 공간을 이보다 더 잘게 쪼개서 사용하기 때문에 공간에 따라 냉난방시설이 부족하거나 최소한의 공조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사무공간도 있습니다. 현대적인 강제배기시설이 없기 때문에 이른 아침 사무공간 공기는 메케합니다. 환기하는 유일한 방법은 바깥을 향한 창문을 여는 겁니다. 하지만 창문을 열고 자연배기를 해봤자 넓은 공간에 충분한 환기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나마 이건 건물 바깥쪽에 접한 큰 사무공간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건물 바깥쪽에 접하지 않는 작은 사무실들은 아예 환기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무공간들은 보통 출입구를 열어놓는다 그럼 밖에서 안이 들여다보이니 입구에 시선을 가릴만한 패브릭 따위를 늘어뜨려 놓곤 합니다.

사무가구가 작고 좁아 불편합니다. 기본 제공되는 책상은 폭이 120밀리짜리 그냥 네모난 책상입니다. 이케아에서 한자릿수 만원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은 물건입니다. 모니터 두 대 올리면 책상이 꽉 차 더 이상 아무것도 올릴 수 없습니다. 의자는 같은 건물에 정형외과를 입주시키면 장사가 잘 될 것 같다는 느낌을 줍니다. 아직 같은 건물에 정형외과가 없어 보이지만 제가 보기에는 조만간 입주할 겁니다. 회사에 아무것도 가져다 둘 수가 없습니다. 당장 참고할 책도 책꽂이도 종이뭉치도 개인 물품도 아무것도 놓을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궁금한 내용이 어느 책의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데 그 책이 집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작업이 끊깁니다. 책상은 짜증을, 의자는 요통을 유발하는 환경입니다.

소모품 관리가 안됩니다. 탕비실에 냅킨은 이른 점심시간에 떨어지지만 다음날에 이르는 억겁의 시간 동안 채워지지 않습니다. 냅킨이 줄어드는 속도로 미루어 하루에 네 번은 채워야 할 것 같지만 절대적으로 하루에 한 번만 채워집니다. 그나마 사무공간 전체를 같은 회사가 사용하는 사무실에서는 그냥 스토리지에 가서 내가 가져가다 내가 채우면 되는데 여기선 스토리지에 내가 접근할 수도 없습니다. 열두시 십오분에 떨어진 냅킨은 다섯시 삼십분에 가도 그대로입니다. 냅킨 뿐 아니라 화장실의 페이퍼타월, 휴지, 탕비실의 종이컵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다 보니 각 사무실마다 여분의 비품을 직접 구입하는 것 같은데 이들을 딱히 놔둘 곳이 없으니 출입구 근처에 쌓아둡니다. 다른 사무공간 입구를 지나가다 보면 입구 바로 안쪽에 생수병, 각티슈, 물티슈 따위가 잔뜩 쌓여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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