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준비

이번 주를 포함해 지난 몇 주 동안 중요한 보고 준비로 바빴습니다. 평소 기능을 추가하고 추가된 기능에 근거해 게임 기능을 조립하기를 반복하는 일상에서 기능 추가를 멈추고 테스트를 반복해 결함을 발견하고 결함을 수정하며 결함을 수정하기 위한 의사결정을 반복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행히 이전 다른 직장들에 비해 요구사항이 갑자기 추가, 변경됨에 따라 무작정 준비가 끝날 때까지 초과근무를 지속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노동시간에도 노동강도는 훨씬 올라갔고 한 주가 끝날 즈음이 되자 스탭들 상당수가 많이 지쳐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보고를 받는 입장에서는 개발팀의 추가 부하를 최소화 하는 범위 안에서 보고를 받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해 오곤 합니다. 적당히 마일스톤 수행 성과를 공유하고 실제 빌드를 테스트 할 수 있는 모양으로 정리해 팀 바깥의 보고 대상에게 전달하는 정도면 개발팀에 큰 추가 부하를 주지 않고 프로젝트에 대한 가시성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개발팀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일단 이 보고에 개발팀의 미래가 달려 있다면 보고 준비에 강한 압력을 느끼고 압력에 의한 부하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보고 결과에 의해 프로젝트에 의한 평가가 일어나며 평가 결과에 의해 다음 분기 예산 책정에 차질이 생기거나 투자를 검토하던 바이어가 투자하지 않기로 결정하거나 회사가 프로젝트 중단 또는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등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 확실하다면 팀은 정상적인 개발 진행을 뒤로 하고 보고에 총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프로젝트 초반에 보고 계획을 수립하며 그저 한 두 달 마다 개발 중인 상태를 묶어서 보여주면 되지 않겠느냐며 그 정도가 개발팀에 주는 부하는 거의 없지 않겠느냐는 비 개발 부서의 의견을 듣고 순식간에 혈압이 올라 목 뒤가 뻣뻣해졌지만 사회적인 입장과 팀의 원만한 대외관계를 위해 붉어졌을 것이 분명한 얼굴을 가까스로 숨긴 채 빌드 공개와 보고가 그렇게 단순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한참 동안이나 웃는 얼굴로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 보고는 투자를 위해 개발팀 밖의 여러 그룹을 대상으로 준비하는 중인데 이미 이 준비를 위해 몇 주 동안 이전에 수립한 개발 계획을 중단하고 보고 준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보고 준비에는 중요 보고와 게임 커스터미이징 같은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익숙한 시나리오부터 게임 전체를 기준으로 할 때 현 시점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채팅, 운영 통제 기능을 지금 당장 추가하거나 최적화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스크린샷이나 영상 촬영에 좋은 모습을 보일 것이 분명한 아트 보강, 아직 제대로 제작한 적이 없는 사운드 추가 같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또 마일스톤 계획에 따라 만든 게임플레이는 보고 시나리오에 따라 그때그때 보고 규모와 대상들의 게임 플레이 예상 수준 등을 고려해 난이도를 조절하고 보고 상황 변화에 따른 대응 시나리오에 따라 게임을 준비합니다. 없는 것을 있다고 지어내 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프로젝트에 대한 가시성을 확보하고 우리들이 가진 가능성을 최대한 보여야 하기 때문에 보고 준비에 최선을 다 하고 있습니다.

이런 보고는 이전에 다른 회사에서 종종 허들이라는 이름으로 팀에 강한 부하를 주곤 했는데 허들의 성공과 실패에 따라 프로젝트가 유지되어 다음 달 급여를 무사히 받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결정되곤 했기 때문에 팀 전체가 허들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허들 준비에 모든 힘을 다 하곤 했습니다. 실은 허들을 준비하며 마일스톤 계획에 따른 기능 개발을 중단하고 보고일을 목표로 빌드에 갑작스런 완결성을 부여해 나가며 이 빌드 기준으로 요구사항이 구체화되면서 마일스톤 계획에는 단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는 갑작스런 기능 추가가 일어나며 팀을 궁지에 몰아넣을 때도 있었는데 허들을 무사히 통과하면 이런 기능은 더 이상 쓸모가 없었지만 기능을 급하게 추가하며 엉망이 된 잿더미 빌드 위에 마일스톤 계획에 따른 정상적인 기능을 개발하기 위해 비용이 급 상승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어릴 때는 이런 과정이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항상 보고가 끝나고 나서 그 다음 주에 출근해 빌드를 실행해 보면 개발 진행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기능과 이 기능을 급하게 욱여 넣으며 잘 안 보이게 대강 땜빵한 흔적들로 가득해 몇 발자국만 잘 못 옮기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폐허 위에서 개발을 계속해야 했기 때문에 대체 이게 무슨 개짓거리인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런 회사나 스폰서에 대한 프로젝트 가시화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으면 잿더미 위에 개발을 계속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거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대단히 소모적인 보고 절차는 일종의 필요악이 아닐까 하는 쪽으로 생각이 변했습니다.

이번에 진행할 보고 역시 이 보고 결과에 따라 앞으로 개발 완수에 도달하는데 필요한 런웨이를 확보하거나 그렇지 못하거나가 결정될 겁니다. 그래서 개발팀 전체가 상당히 곤두서 있고 결코 거짓은 아니지만 아직 덜 만들어진 기능들을 묶어 완결된 플레이를 경험할 수 있도록 잘 추스리고 눈에 띄는 결함 중 일부는 잘 수정하고 나머지는 적당히 수정하며 그리고도 제한 시간 안에 수정할 수 없을 것 같은 결함은 결함이 눈에 띄지 않도록 플레이 시나리오를 수정해 가며 개발팀 바깥으로부터 가시성을 확보하되 그 가시성을 통해 보이는 프로젝트가 평가절하되지 않고 우리들의 실제에 가깝게 보이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보고가 지나고 이어서 개발을 계속할 기회를 얻게 된다면 여전히 우리들은 이번 보고를 위한 얕은 의사결정의 반복으로 아슬아슬하게 쌓아 올려 마무리한 잿더미 위에 개발을 계속해야 할 겁니다. 아니면 런웨이 확보에 실패해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겠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