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온라인 게임에 소액결제가 도입된 이후 가장 흥미로운 유료 상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계약 형태의 상품입니다. 이걸 정확히 뭐라고 부르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업계에서 어지간한 개발 용어들은 사람을 주고받으면서 자연스럽게 공유되어 표준 용어를 사용하는 편인데 유료 상품 관련 용어들은 제 기준에서는 생각보다 널리 표준화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단 저는 ‘계약 상품’이라고 부를 겁니다. 구입 즉시 상품 전체의 가치를 한번에 받을 수 있는 상품과 달리 계약 상품은 상품에 포함된 가치를 전달 받는데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을 만족할 때마다 가치를 받을 수 있지만 만약 조건을 만족하지 않으면 가치를 받을 수 없습니다. 같은 돈을 지불했지만 플레이에 따라 상품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가치가 달라집니다.
이런 계약 상품은 돈을 지불하고 즉시 전체 가치를 얻어 게임에 적용하고자 하는 고객들에게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이 게임에 당분간 정착하기로 마음 먹은 고객에게라면 상당히 매력적인 조건입니다. 상품의 전체 가치를 받을 수 있는 조건들은 계단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조건의 대부분은 게임을 플레이 하면서 자연스럽게 달성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연금처럼 게임을 플레이 하는데 따라 차례로 지급되기 때문에 내가 앞서 지불한 돈이 계속해서 나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느껴 더 나은 만족을 주기도 합니다. 이런 상품은 모든 계약을 이행해 받는 가치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다른 상품에 비해 시작 비용이 높은 편입니다. 스크린샷의 사례에서 무료로 플레이 할 수 있는 게임에 한 번에 2만5천원을 지불하기로 결정하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반면 게임의 구성을 이해한 다음에는 이 금액에 비해 내가 받을 수 있는 가치가 훨씬 높음을 알게 됩니다.
이 상품에 이야기할 특별한 점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 상품을 구입하는 순간 플레이어는 이 상품이 제시하는 모든 계약 조건을 달성해야 할 것 같은 압력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는 점입니다. 사실 이 상품에 돈을 냈건 말건 게임을 할 지 말 지는 플레이어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언제라도 게임을 할 수도 있고 또 언제라도 게임을 그만 둘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플레이어는 이 계약에 돈을 지불했고 일부 가치를 이미 받기 시작했으며 법률 상 고지된 청약철회기간을 지난 다음에는 처음 지불한 비용을 매몰 비용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상태가 됩니다. 다른 게임을 플레이 하게 됐거나 다른 할 일에 시간을 사용하게 되더라도 게임을 플레이할지와 비교해 이런 결정들을 내리기 훨씬 어렵게 만듭니다. 개발자 입장에서는 플레이어에게 주는 압력의 정도에 따라 기간, 가격, 가치를 조절해 상품을 구성합니다.
다른 한 가지 특별한 점은 이 상품이 이를 구입하지 않은 플레이어에게도 영향을 끼친다는 점입니다. 이런 형태의 계약 상품이 특별한 점은 이 상품 판매 페이지 자체가 상품의 가치를 습득하는데도 사용되는 것입니다. 상품을 구입한 플레이어도 구입하지 않은 플레이어도 이 페이지를 통해 보상을 받습니다. 이 상품을 구입하지 않기로 결정한 플레이어도 게임을 진행함에 따라 계속해서 보상을 받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상품을 구입할 때 한 번에 얻을 가치가 점차 증가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위 스크린샷에서 레벨업을 진행함에 따라 전설 문장을 받을 수 있는데 이 상품을 구입하지 않은 플레이어는 꽤 많은 전설 문장을 한 번에 받을 수도 있음을 계속해서 보게 됩니다. 그리고 전설 문장 구입 페이지에서 전설 문장 하나가 얼마인지 살펴보고 이 페이지에 돌아와 상품 가격 2만 5천원을 현재 레벨에 받을 수 있는 전설 문장 갯수로 나눠본 다음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계약 상품에는 이런 스타일 외에도 기간 단위로 혜택을 제공하는 형태도 있는데 이는 전통적인 월정액제와 유사한 형태입니다. 이런 계약 상품도 비슷한 특징이 있지만 플레이어에게 미치는 감정적 효과는 약간 다른데 그건 다음에 이야기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