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뫄뫄 출신이라 잘 아는데
일할 때 내가 처한 상황을 공감해주고 또 내 어려움을 들어주며 이해해 줄 뿐 아니라 나아가 대안을 제시해 주는 동료나 상사가 있다면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에 관계 없이 이 기간을 통해 많이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그런 동료나 상사가 있다면 프로젝트가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많이 줄어들기도 해서 프로젝트가 런칭에 성공하고 또 좋은 평가를 받기까지 한다면 이후 커리어 내내 두고 두고 우려먹을 강력한 경험을 얻게 됩니다. 그 동료들이나 상사들 역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어 자신들이 알고 있는 좋은 동료나 상사로써 행동하기 위해 이전 시대보다 훨씬 더 노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단지 운이 좋아서 주변에 훌륭한 분들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 만은 아닐 겁니다.
한편 이런 접근이 언제나 좋은 과정이나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동료들이 놓인 상황을 감지하고 이들의 어려움을 들어 이를 완화하거나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나 관점을 제시하는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지만 자신의 이전 경험과 지금 일어난 상황 사이에 여러 가지 차이가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의미 있는 관점을 제시하거나 의미 있는 조언을 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동료들은 결코 바보가 아니기에 이런 잘못된 조언이 잘못되었음을 즉시 눈치 챕니다. 다만 권력 관계를 고려해 소위 ‘사회생활’을 하기 때문에 잘못된 조언으로부터 피드백을 받을 기회는 결코 없을 겁니다. 대신 서서히 스스로의 발언이 가지는 무게가 줄어들며 점차 조직을 통제하기 힘들게 됩니다.
한번은 스스로를 게임디자이너 출신이라고 말하곤 하는 높은 분 밑에서 일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직원들의 사기나 복지, 일상 생활 지원에 무척 신경을 쓸 뿐 아니라 종종 일어나곤 하는 팀 사이에 의견 충돌이 일어날 때 게임디자인 쪽 의견에 강하게 힘을 실어 팀 간에 문제가 생겨 의사결정에 어려움을 겪거나 감정적인 문제로 번지지 않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한편 이 분은 종종 게임디자인이 스스로 처리하기에 너무 높은 의사결정이 필요한 요구사항을 내려보내곤 했는데 나중에 게임디자인의 행동에 힘을 실어주더라도 항상 게임디자인이 무리하는 상황으로 전개되곤 했습니다. 감히 우리들에게 힘을 실어 주는 분을 거역할 수 없었던 우리들은 더 높은 의사결정이 필요한 사안들을 무리하며 처리해 갔고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다른 부서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습니다.
이 분이 항상 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에는 ‘나도 기획자 출신이라서 잘 아는데’로 시작하는 우리들을 다독거리는 말씀과 우리를 절벽 끝으로 내모는 말씀을 함께 하시곤 했는데 어차피 절벽 끝에서 해야 할 일은 해야 할 일이니 불만이 없었지만 오히려 우리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있음을 표현한 앞쪽 말에 불만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샘플이 아주 많지는 않아 함부로 단언할 수 없지만 자신을 어떤 역할 출신이라고 소개하시고 또 그렇기 때문에 비슷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 중에는 실제로 그 역할을 충분히 이해할 만큼 수행한 분이 많지 않다는 가정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정말 우리들이 처한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면 그는 이미 우리들 중 하나이거나 함부로 우리들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음을 스스로 이해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분의 이전 경력에 대해 들을 기회가 생겼고 예상 대로 그 분이 스스로 말씀하시던 역할을 수행한 경험이 그리 깊지 않을 가능성이 높음을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들은 여러 팀 사이에서 무리하며 모호한 업무지시 속에 무리한 의사결정을 반복해야만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표현을 즐겨 사용하는 분들을 경계하는 편인데 자신이 과거에 했던 경험이 현재에도 유효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단지 권력의 차이에서 비롯될 가능성 역시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서로 다른 프로젝트를 서로 다른 기간에 걸쳐, 또 서로 다른 사람들과 서로 다른 회사와 서로 다른 정치적 상황에 처한 채 수행할 때 우리들의 경험이 단지 이전에 비슷한 역할을 해 본 적 있기 때문에 조언할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하다면 더 오랜, 더 깊은 경험을 구입하는데 더 큰 돈을 낼 필요가 없을 겁니다. 우리들이 처한 상황은 항상 여러 서로 다른 조건이 어우러져 결코 이전과 비슷하다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에 경력을 통한 여러 가지 경험을 구입하는데 돈을 냅니다. 서로 다른 회사에서 서로 다른 프로젝트를 서로 다른 시대에 수행하고 있을 때 함부로 이전 경험을 기반으로 상대를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지금 처한 새로운 상황을 자신의 경험에 기반해 납작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이런 말 뒤에 나올 만한 조언보다는 실질적인 문제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또 실제로 할 수 있는 행동과 실제로 확보해 줄 수 있는 자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모르지 않는다는 위로는 잠깐 동안 위안을 줄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가끔 이런 위로를 통해 에너지를 얻는 사례가 있지만 우리들은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때문에 누군가 어려움을 토로하는 자리에서는 그 어려움에 공감하되 어려움을 유발한 문제를 완화하거나 제거하기 위한 실질적인 도움에 집중하고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실행하고 그렇지 않다면 공감하는 수준에서 마무리해야 합니다. 또 스스로가 상황을 잘 이해하고 또 공감한다면 문제 해결을 위한 자원을 확보하는 행동을 통해 스스로의 이해를 말 없이 전달할 수 있을 겁니다.
결론. ‘나도 뫄뫄 출신이어서 잘 아는데’로 시작하는 말은 분명 공감의 의미이지만 공감에도 실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경험은 의미 있지만 그 경험이 서로 다른 상황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지 않습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분명 공감의 언어로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공감으로 동작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차라리 공감보다 먼저 실질적인 해결을 위한 자원 확보에 초점을 맞추는 편이 행동을 통한 공감으로 비춰질 여지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