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하지 않도록 가이드하기
이전에 일하던 어느 팀에서 한번은 팀의 근태 관리가 문제 된 적이 있습니다. 보통 근태를 문제 삼으면 팀이나 회사가 기울어 간다는 신호일 때가 있습니다. 높은 분들이 더 이상 뭔가 개선해 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을 때 선택하는 마지막 방법 중 하나 입니다. 그래서 이런 신호를 마주하면 탈출 버튼을 만지작거리는 편이 올바른 행동일 수 있습니다. 다행히 그런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근태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실행된 근태와 그 기록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 점이 문제가 됐습니다.
큰 회사에서 이런 문제가 생긴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포괄임금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출퇴근 시각 기록에 민감했고 또 휴가 관리 역시 잘 동작하는 편이었습니다. 휴가 사용은 사전에 통보하면 결재선이 상위 직책자에서 끝났지만 사후에 통보하면 결재선이 차 상위 직책자로 늘어나 부담을 주는 방식으로 동작했습니다. 회사 는 의도적인 누락이 의심되는 상황이 아닌 이상 관대하게 대응하곤 했습니다.
회사가 우리들이 작성한 근태 기록을 수령하면서 팀 내 관련 담당자에게 이 기록이 확실한지 추긍 했고 여기에 자신 있는 답변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전통적인 회사에서 상급자에게, 혹은 팀 바깥으로 문서를 제출할 때는 결재선 형식으로 문서를 검토했음을 확인하는 절차가 있었는데 우리 규모에서는 그런 절차가 없었고 절차를 지탱할 시스템도 없었습니다. 때문에 팀 밖으로 나가는 문서는 마지막으로 팀 밖으로 내보내는 사람에게 검증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 검증을 수행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팀 밖으로부터 기록의 정합성을 추긍 받을 수 있고 여기에 확실한 답변을 하지 못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기록을 직접 작성하는 일은 우리 모두가 나눠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 모두가 기록을 빠뜨리지 않고 성실하게 기입할 책임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 기입 방법이 여러 곳에 분산 되어 있고 기입 방법 역시 별로 직관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분산된 기입 방법들이 서로 연동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먼저 기록은 인사관리 시스템에 입력해야 했는데 회사 내부에서 구축하는 대신 외부 솔루션을 구입해서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기록하려면 항상 외부 웹사이트에 별도로 로그인 한 다음 기록했는데 개인적으로 이 인사관리 시스템은 대한민국 노동법률을 준수하면서도 힙한 느낌을 내려고 많이 노력한 것 같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서비스들이 항상 그렇듯 스크린샷을 찍어 지하철 광고에 걸기에는 적합하지만 그걸 직접 사용하기에는 불편합니다. 내가 기입한 근태 기록은 그냥 블릿포인트 목록으로 예쁘게 나타났지만 알아보기는 아주 어려웠습니다. 날짜 단위로 입력하는 정보를 달력 모양으로 보여주면 가독성이 높아진다는 단순한 생각을 못 했을까 싶지만 내가 저 시스템 만드는 회사 직원도 아니고 이런 이야기를 무료로 시시콜콜 늘어놓을 만한 에너지는 없었습니다.
다음으로는 같은 정보를 슬랙 채널에 기입해야 했는데 이곳에 기입하는 이유는 이미 회사가 정한 인사관리 시스템 가독성이 나빠 저 사이트에서 정보를 파악하기 어려움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채널을 하나 정해 휴가를 사용하거나 출근이 약간 늦거나 반차를 사용해야 할 때 간단히 메시지를 남기곤 했는데 입력하기도 쉽고 보기도 쉬웠기 때문에 널리 활용되었습니다. 반대로 이 방법이 훨씬 편하기 때문에 종종 이 채널에만 보고하고 인사관리 시스템에 입력하는 것은 잊어버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태에 대해 회사 인사 부서로부터 추긍 받자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는 굉장히 쉽게 기록을 누락할 때 패널티를 주자는 쪽으로 흘러갔는데 개인적으로 실망스러웠습니다. 패널티를 통해 단기적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도 못하고 또 이런 기록 시스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나쁘게 만들 여지가 많습니다. 인식이 나빠지면 기록을 누락한데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지지 않게 되는데 일단 이렇게 되고 나면 상황을 개선하기 아주 어려워집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한 근본적인 문제는 회사가 구입해 사용하는 인사관리 시스템의 기입 인터페이스가 불편하고 또 이 시스템을 사용하는 여러 사람들 입장에서 원하는 정보를 찾아보기도 아주 불편하다는 점입니다. 오늘 협업 부서의 누가 휴가인지 아닌지, 잠깐 자리를 비운 것인지, 대강 언제쯤 돌아오는지를 파악하고 싶을 뿐이지만 이를 파악하려면 여러 단계에 걸쳐 복잡한 메뉴를 타고 들어가야만 할 뿐 아니라 겨우 근태 정보일 뿐인데도 필요 이상의 정보 열람 제한이 있었습니다. 또 이렇게 기록해 놓고도 슬랙에 이중 기입해야 하는데 위 목적을 달성하는데는 슬랙만으로 충분한 상황이어서 인사관리 시스템에 기입을 쉽게 누락하게 됩니다.
이 인사관리 시스템은 쓰레기 같지만 그나마 슬랙 연동을 지원해 기술적으로 상황을 완화할 수 있었고 또 명색이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이 게임디자인 관점에서 문제를 완화할 방법을 생각해보는 대신 처음부터 패널티 이야기가 나와 크게 실망했습니다. 기술적인 방법, 게임디자인 관점의 방법 양쪽 모두를 고민하고 또 적용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람인 이상 실수를 합니다. 우리들이 모여서 함께 일하는 이유는 서로를 도와 실수를 줄여 더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함입니다. 결코 서로의 실수를 끄집어내 벌주고 공포에 기반해 서로를 감시하기 위함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들이 고객들에게 여러 가지 경험과 감정을 주는 게임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일을 하는 이상 이 일의 대상이 고객들 뿐 아니라 우리들 스스로를 향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수하지 않도록 가이드 하려면 먼저 시스템 상 실수할 여지를 줄이고 시스템 자체를 더 편안하게 만들며 실수가 일어날 때 이를 빨리 눈치챌 수 있는 절차를 만들어야 합니다. 패널티를 사용할 수는 있겠지만 그 이전에 시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더 나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냥 당장 잠깐 편하기 위해 패널티를 먼저 떠올리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