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회의에서 망신당하지 않는 요령
회의 시간입니다. 이미 사전에 전달한 문서에 이 시간에 말할 모든 내용이 적혀 있지만 문서를 읽은 사람은 거의 없거나 전혀 없습니다. 때문에 회의 시간에는 사람들에게 이미 문서를 통해 전달한 내용을 반복해서 설명해야 합니다. 이 설명은 때때로 거의 문서를 읽다시피 하며 진행되곤 합니다.
이런 회의에 문제의식을 느껴 회의 형태를 회의실에서 각 잡고 하는 대신 간단히 밖에서 만나 이야기하고 끝내는 형태로 바꾸기도 하고 자리에 앉는 대신 서서 말하기도 하고 또 본인의 용건이 끝나면 그냥 나가도 된다는 규칙을 명시적으로 선언하거나 회의가 시작되면 말 없이 제출한 문서를 읽는 시간을 가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중 어떤 방법도 적용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고 또 적용할 만한 권한이 있는 분들을 설득하기에는 이런 방법이 가져올 효과를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미 문서를 통해 제출한 내용을 반복해서 설명하는데 시간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문서 대신 직접 설명할 때 장점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그런 글에 기반한 문서에 비해 직접 설명할 때 논리가 같고 또 정보 수준이 동일하다면 직접 설명할 때 더 관대해 보입니다. 잘못된 내용을 문서를 통해 전달할 때보다 직접 설명하다가 지적 받을 때 재빨리 수정하고 지나가면 상황을 훨씬 빨리, 또 부드럽게 수습할 수 있곤 합니다. 또 문서를 작성할 때에 비해 설명을 준비하거나 직접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 자신의 머릿속이 정리되며 내 말을 듣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이해 수준이 훨씬 높아지는 계기가 됩니다.
또 주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수준과 관심 포인트를 알아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이야기하거나 다른 사람이 내게 이야기할 때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을 관찰하면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내내 노트북으로 트위터를 보다가 특정 키워드가 나오자 마자 고개를 들고 관심을 가지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말하는 나 대신 회의실에 모인 다른 누군가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앞에서 회의를 진행하다 보면 이런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이런 그림을 더 잘 볼 수 있습니다.
때로는 나에게 적대적이거나 적어도 우호적이지는 않은 사람들을 회의실에 불러 같은 말을 반복해야 합니다. 종종 이런 회의에 멸망을 겪기도 하는데 이런 회의를 잘 진행하는 요령이 있습니다. 먼저 회의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와 다른 일을 하고 나와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내가 생각해본 적 없는 관점으로 의견을 제시하거나 질문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장 좋은 상황은 이런 사람들과 오래 부대끼며 이들의 시각을 습득하는 것이지만 그럴 수 없다면 이들로부터 내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음을 각오하고 질문을 받을 때 내가 아는 선에서 제대로 답해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이 회의 주제를 가장 잘 알고 또 가장 깊이 이해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이해 수준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를 갖추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준비를 많이 해야 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일단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를 갖추면 회의에서 말하는 자세가 달라지는데 이 자세의 변화가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는 신호로써 작용합니다.
나 자신이 주제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지간한 다른 시점의 질문이나 의견은 간단히 내 이해에 기반해 받아들이거나 거절하거나 보류할 수 있습니다. 높은 이해에 기반한 자신감은 일종의 기싸움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내가 자신감에 근거한 강력한 자세를 보이면 적대적으로 시작했던 상대를 최소한 중립적인 상태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적대적인 상대를 대상으로 한 보고 회의에서 망신 당하지 않는 요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