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간의 자원이동과 자원이동수단
새벽에 도저히 잠이 안와서 자리에 앉아 멍하니 있다가 문득 메타버스간의 자원이동은 각 메타버스의 복잡성을 무시한 발상이라는 말을 읽은 생각이 났습니다. 읽을 때 제 생각도 같았습니다. 가령 저 게임으로부터 획득한 아이템이 이 게임의 다른 아이템과 비슷한 가치가 있다고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가끔 이런 게임 속 경제관념이 없는 채로 작성한 시나리오에 기반한 소설이나 영화에서 이 게임으로부터 얻은 아이템을 저 게임에 별 문제 없이 바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갑갑한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만약 그게 아이템이라면 확실히 각 메타버스의 복잡성은 메타버스간의 자원이동에 큰 걸림돌이 됩니다. 이 게임의 상급 마법 주문서는 저 게임의 어떤 총기류에 대응되어야 할까요. 아니면 이 주문서는 현대전을 배경으로 한 저 게임에서는 동작하지 않는 종이뭉치일 수도 있습니다. 메타버스의 특성만으로는 이 설정이 말이 될 수 있지만 아이템의 소유자들은 결코 이 상황을 인정하려 들지 않을 겁니다.
생각해보면 이미 각 메타버스 개발자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각 메타버스간에 자원이동이 가능합니다. 한 게임에서 캐릭터를 정리해 현금화한 다음 다른 게임에 캐릭터를 만들어 현금으로 그쪽에서 자원을 구매하면 됩니다. 영화에서 보던 한 메타버스에서 다른 메타버스로 자원이 심리스하게 이동되지는 않았지만 실제 세계의 자원과 교환을 통해 메타버스간의 자원이동이 가능했고 자원의 가치평가문제 역시 말씀히 해결되었습니다. 각 메타버스상에서 자원의 가치는 메타버스의 시장에서 인기, 고객들이 이 메타버스를 인정하는 수준, 메타버스가 고객들의 요구사항을 얼마나 깊히 이해하고 이에 대응하는지, 고객들이 메타버스상에서 특정 상태를 만들어내기 위해 요구받는 시간과 자원의 양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 자원의 가치는 언듯 보면 특정 메타버스상의 가치평가체계에 국한된 것처럼 보이지만 메타버스상에서 플레이를 하는 사람들은 실제 세계에 존재하므로 실제 세계에서 사람들이 소모하는 자원의 양이야말로 서로 다른 메타버스간에 자원이동을 가능하게 만들어 이들의 복잡도를 무시하고 메타버스간에 가치를 평가할 수 있게 만듭니다.
처음에 메타버스간에 자원 교환이 일어나려면 각 메타버스 시스템의 복잡도를 감안한 사실상 불가능한 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위 주문서 사례에서 주문서가 다른 메타버스상에서도 의미있는 비슷한 수준의 가치를 가진 자원으로 변환되려면 메타버스 제작사들 사이에 사실상 불가능할 대단히 긴밀한 경제디자인이 필요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는 메타버스간에 직접적인 자원교환을 가정할 때 필요한 것으로 이들 사이에 실제 세계의 자원을 끼워넣으면 메타버스간에 거의 불가능할 어떤 개발도 없이 서로 자원이동이 가능하고 이미 이 자원이동은 지난 20여년에 걸친 역사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게임의 형태나 장르가 비슷한 게임을 여럿 만들어내는 회사라면 자사에서 서비스하는 여러 게임들에 위에서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던 직접적인 자원이동을 위한 경제시스템의 규격화가 어느정도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흔히 고객들이 공개적으로는 그리 좋은 평가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모바일 MMO 게임을 여럿 개발해내는 회사가 있다면 각 게임의 경제시스템이나 과금체계가 어느 정도 비슷하고 각 게임의 PLC 설계가 비슷하다면 같은 회사 안에서 각 게임들의 경제시스템에 의도된 호환성을 유지해 직접적인 자원이동을 가능하게 만들어 여러 메타버스를 묶는 경제시스템을 형성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게임회사들이 블록체인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데 서로를 의식해서 경제시스템을 설계하지 않고 각자 개발해 서비스중인 메타버스간에 자원이동을 위해 지금은 실제 세계의 가치평가기준과 실제 세계의 자원이동방식 -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의 통제를 받는 - 을 경유해야만 합니다. 만약 이 메타버스간의 가치 재평가와 자원이동의 매개를 실제 세계의 자원이동방식이 아니라 게임회사에서 설정한 자원이동체계 - 가령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 아데나라든지 - 를 사용하면 지난 20여년에 걸쳐 메타버스간에 자원이동의 상업적 가능성을 구경만 하고 있어야 했던 게임회사가 이제 적극적으로, 또 본격적으로 메타버스간의 자원이동에 개입하고 이를 통제할 수 있게 됩니다. 같은 관점에서 게임회사가 메타버스와 블록체인 같은 기술에 강한 관심을 가지고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은 의미있습니다.
실제 세계의 화폐는 화폐를 발행하는 주체의 지불능력에 따라 가치가 결정됩니다. 메타버스간의 자원이동에 매개로 사용될 실제 세계를 우회한 교환수단을 개발한다면 이 교환수단은 개발사의 지불능력에 강하게 의존하지는 않을 겁니다. 크게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하면 메타버스간의 주요 자원이동수단으로 자리잡을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첫째. 처음으로 서비스할 것, 둘째. 자원이동에 관심이 있는 메타버스가 이를 대단히 쉽게 게임에 연동할 수 있을 인터페이스를 제공할 것, 셋째는 이 자원이동수단을 지원하는 초기 메타버스들이 자원이동이 의미있게 받아들여질만한 실제 시장에서도 의미있는 메타버스일 것. 이 조건들을 모두 만족하는 표준 자원이동수단을 맨 처음 개발해 본격적으로 서비스하기 시작하는 회사가 나온다면 이건 정말로 따라잡기 어려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