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친절
결론: 위키에 기반한 문서관리시스템은 실수에 강하므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적응하게 하기 위해 보다 관대하고 친절하게 가이드해야 합니다.
거슬리는 문구
주말에는 지난 수 년에 걸쳐 사용해 온 도쿠위키 편집화면에 적힌 문구를 수정했습니다. 정확히는 그동안 계속해서 거슬리던 문구 하나를 삭제했습니다. 도쿠위키에서 문서를 수정할 때 텍스트박스 위쪽에는 문서를 더 좋게 만들 자신이 있을 때에만 편집하세요.
라고 적혀있습니다.
처음으로 위키라는 기록 도구가 국내에 전파될 무렵의 분위기가 문득 떠오릅니다. 사람들은 위키 시스템의 문법과 문서의 구조화, 하이퍼링크 생성, 공동작업과 자동버전관리 같은 개념을 생소해했습니다. 특히 게시판처럼 그저 텍스트를 좀 올리고 이미지를 좀 붙이고 링크를 좀 걸고 싶을 뿐인 사람들에게 위키는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문서 전체가 이상한 모습이 되기 일쑤였고 이는 관리자들을 항상 불안한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위키에는 샌드박스나 플레이그라운드같은 지금 생각해보면 모욕적으로 느껴지는 페이지들이 생겨났고 이 페이지는 처음에 이곳으로 내몰린 누군가가 깨작거린 흔적이 남지만 이내 버려졌습니다. 사람들이 위키 시스템에 익숙해져 이곳에서 연습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위키 시스템 자체를 포기했습니다.
도쿠위키를 사용하면서 처음에 이야기하던 문구는 상당히 거슬렸습니다. 개인 웹사이트를 만드는데 주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 책임 하에 모든 수정을 했습니다. 실수하면 그냥 페이지를 다시 열어 실수를 수정하거나 이전 리비전으로 되돌리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런데 항상 문서를 수정할 때 텍스트박스 위에는 저런 약간은 고압적이고 또 한편으로는 모욕적으로도 느껴지는 표현이 적혀있었고 항상 거슬렸습니다. 늘 생각만 하다가 이번에는 시간을 약 1분쯤 써서 이 문구를 삭제했습니다.4) 이제 에디터에는 간결하게 편집을 마치면 저장하라는 메시지와 플레이그라운드 안내 링크만 남았습니다.
저항
어떤 세계에서는 문서를 공동작업이 가능한 환경에서 작성하고 서로 긴밀히 연결해두는 것이 당연하지만 또 다른 환경에서는 서기 2020년에도 여전히 마이크로소프트 워드에 문서를 작성한 다음 형상관리도구에 파일 째 커밋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후자의 문서관리방법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머리로는 회사에서 구입해준 컨플루언스5)가 매우 편리하고 강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자신이 컨플루언스를 구입해준 프로젝트에서 항상 가장 많은 문서를 만들어내고 또 가장 많은 문서를 서로 연결하고 업데이트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를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하기는 대단히 어렵다는 사실 또한 체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이전에 문서를 작성하는 이상한 습관들에서 좀 화난 채 글을 작성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 지적한 몇 가지 문제는 단순히 워드를 버리고 위키에 작성하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 링크를 통해 문서를 다른 사람들에게 더 편리하게 공유하고 쉽게 수정할 수 있으며 모든 수정사항이 기록으로 남아 실수를 쉽게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위키의 문서 구조를 따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문서를 구조화해 작성과 해석에 따르는 낭비를 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위키를 즐겨 사용하지 않는 분들께 위키를 가이드하다 보면 이 시스템이 그리 사용자 친화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됩니다. 가령 여느 위키 시스템 치고 맨 처음에 이야기한 불친절하고 때로는 모욕적인 주의사항이 포함되지 않은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또 수정사항을 메일로 발송해버리는 기능은 잦은 수정과 자잘한 실수를 바로잡는 과정을 더 두렵고 모욕적인 상황으로 만들어버리기 일쑤입니다. 이와 관련된 실수를 몇 번 겪고 나면 위키에 익숙해지기보다는 더 편안하다고 느끼는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로 돌아가버립니다. 워드는 공유시점을 내가 정할 수 있고 실수를 공동작업자들에게 실시간으로 공유하지 않아도 되며 익숙하지 않은 문서 구조화 대신 나에게 편안한 모양에 따라 '시각적으로 구조화6)'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장벽마다 좀더 친근하게 가이드하지 않으면 누군가는 회사에서 큰 비용을 지불하고 구입한 위키시스템을 사용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물론 비용을 지불하고 구입했겠지만 궁극적으로 팀의 생산성을 올리기에 단점이 많은 시스템에 머무르게 됩니다.
안전
시실 위키 시스템은 실수로부터 매우 안전한 시스템입니다. 실수 기록이 좀 남겠지만 어지간히 중대한 실수를 하더라도 결코 문서를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이런 환경이라면 사용자들의 실수를 좀더 관대하게 대하고 사용자들이 불편해하는 기능 - 가령 매 리비전마다 수정사항을 메일로 발송하는 것 같은 - 을 완화해 더 많이 실수해보고 시스템에 더 익숙해지도록 유도하는 편이 더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