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의 지하철
인도로 달리는 따릉이에 이어 트위터를 통해 받은 주제로 모순의 지하철을 작성했습니다. 이 블로그는 존댓말이 기본이지만 쓰다 보니 반말이 어울리는 것 같아 반말로 썼습니다.
집 근처에 지하철이 있다. 차가 없어 집 근처에 자전거도로나 지하철이 없으면 출퇴근이 상당히 어렵다. 이전에는 자전거 출근을 훨씬 선호했는데 여기 이야기한 이유로 더이상 자전거로 출근하지 않게 됐다. 몇 년 동안은 버스로 출퇴근 한 적도 있었는데 경기도 버스는 그 존재만으로도 이미 스트레스였다. 지하철을 대신 탈 수 있게 된 순간부터 버스는 생각하지도 않게 됐다. 하지만 집을 지하철 근처에 구하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기다리다가 좀비가 되고 마는 지하철이라도 있으면 주변 집들은 항상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간격만큼 더 비쌌다. 자동차는 ‘그거 사느니’ 몇 번을 반복하면 페라리가 된다는데 집은 ‘그거 사느니’ 한 단계를 넘기기가 어려웠다.
어느 날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거의 죽은 다음의 미래까지 한방에 저당 잡아 경기도 구석에 지하철과 아주 멀지는 않은 곳에 지붕과 문짝이 달린 집을 얻었다. 다행히 지하철을 타며 좀비가 되지는 않았고 한동안은 회사가 지하철 종점에 있었으므로 운이 좋으면 앉아서 퇴근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더 자주 운이 좋았고 술이라도 마신 날에는 도착한 열차를 한 대 보내면 항상 앉아 올 수 있었다.
선거철이라도 되면 서울에만 다니는 지하철을 이 촌구석까지 끌어오겠다는 정신 나간 지하철 광인들의 팜플렛을 받을 일이 있었는데 이전 같으면 별 미친 놈 다 보겠네 하고 휴지통으로 직행했겠지만 이제는 좀 더 유심히 보게 됐다. 어느 노선의 환승역이 생긴하더나 또 어느 노선이 연장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에 좀 더 귀를 기울이게 됐다. 이런 소식들은 분명 소나타 살려고 모은 돈으로 아반떼를 사게 만들겠지만 이미 나는 내 죽은 다음의 미래까지 저당 잡힌 신세였으므로 적어도 이 저당 잡힌 인생이 내가 죽기 전에 끝날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으로 혹시 소나타 값이 되지 않을까 관심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계속될수록, 또 이런 이야기들이 실제에 가까워질수록 내 출퇴근은 점점 더 피곤해졌다. 집 주변에는 그거 하나 덜렁 있는 촌구석의 허름한 지하철 입구 하나를 보고 온갖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역까지 걸어가는 동안 타워크레인이 몇 대나 서 있고 또 공사장의 소음과 공사 차량의 먼지를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한편 지하철은 서울 속 더 깊은 곳까지 연결되었지만 서울에 둥지를 트는데 성공한 대한민국 중산층들을 만나러 갈 일 보다 경기도에 있는 비슷한 신세의 지인들을 만날 일이 더 많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회사가 있던 종점은 더 이상 종점이 아니게 되어 영원히 앉아서 퇴근할 수 없는 신세가 됐다.
이 촌구석과 서울 번화가를 연결하는 실낱 같은 지하철은 간신히 한 달, 한 달 대출금을 갚아 쫓겨나지 않게 해 주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실낱이 길어지고 복잡해질 때마다 그 대출금을 벌러 나가는 길은 점점 더 힘들어지니 이상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