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스러운 새 아이폰 전환 경험
몇 년 만에 아이폰을 바꿨습니다. 원래 4년만에 바꿀 계획이어서 올해는 그냥 넘어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새 아이폰을 주문하고 몇 주를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예정 대로 4년 만에 바꿨으면 가계부에 통신비로 기입할 작정이었는데 3년만에 바꾸는 바람에 사치품 카테고리에 기입해야 했습니다. 새 아이폰에 기대한 기능은 맥세이프를 통해 지갑과 배터리를 붙일 수 있는 점, 라이다 센서로 공간을 스캔할 수 있는 점, 마스크 쓴 채로 페이스아이디 언락이 되는 점, 카메라가 개선되어 접사와 포트레이트 사진이 훨씬 잘 찍힌다는 점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예상대로 동작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폰 전환 경험은 이전과 달리 상당히 나빴습니다. 폰에서 폰으로 직접 데이터를 옮기는 기능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항상 이 기능을 사용해 왔습니다. 영혼까지 옮겨 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새 폰으로 이동하는 경험이 좋았습니다. 몇몇 은행 앱이 까다롭게 구는 걸 제외하면 나머지 앱들은 이전을 했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매끄럽게 동작했고 이번에도 이런 경험을 기대했습니다. 사실 나쁜 소문을 들었습니다. 심카드 관련 이슈가 있는데 애플 매장의 기술지원에서 한 말에 따르면 문제 우회 방법으로 폰에서 폰으로 옮기는 것보다 아이클라우드 백업을 통해 옮기는 방법을 추천했다고 합니다. 또 몇몇 유튜브 리뷰에서는 폰에서 폰으로 옮기면 옮기는 동안 두 폰을 모두 못 쓰는 상태가 되지만 아이클라우드 백업을 통해 옮기면 옮기는 동안에도 폰을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소개하기도 해서 어떻게 옮길까 잠깐 고민했습니다.
뭐 별 일 있겠나 싶어 늘 하던 대로 폰에서 폰으로 직접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시작하고 몇 분 지나자 예상시간이 3시간이라고 표시됐는데 설마 이 시간이 다 걸릴까 싶었습니다. 몇 년 전이긴 하지만 바로 이전에도 폰에서 폰으로 직접 옮길 때 40분 정도 걸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3시간이 걸렸습니다. 3시간 동안 폰을 쓸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린 것 외에도 몇 년 전에는 은행 앱 정도가 로그인이나 페이스 아이디 설정을 다시 요구했는데 이번에는 체감 상 전체의 절반 정도 되는 앱이 로그인 등의 설정을 요구했습니다..
또한 폰에서 폰으로 옮겼는데도 앱을 다시 다운로드하는 과정을 요구했습니다. 폰에서 폰으로 데이터를 직접 전송했는데도 설치했던 모든 앱을 하나 하나 눌러 다운로드한 다음 실행해 앱이 잘 실행되는지, 아니면 로그인 같은 절차를 요구하는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물론 각 앱을 처음 사용할 시점에 이 작업을 해도 되지만 실제 앱이 필요한 순간에 이런 작업을 하는 건 생각만 해도 화가 나는 일입니다. 모든 앱이 옮기기 이전과 똑같이 동작하게 됐지만 이 상태에 도달하는데 데이터를 이동하는데 걸린 3시간과 상관 없이 1시간 이상을 추가로 소요해야 했습니다.
제대로 옮겨지지 않은 기능이 있었습니다. 오토메이션 중 애플워치와 연동되는 오토메이션이 깨졌는데 이건 심지어 애플 자기 자신의 기계와 서비스라는 점에서 아주 실망스러웠습니다. 오토메이션에서 애플워치를 제어할 수 있습니다. 가령 운동 시작 오토메이션을 시작하면 애플티비에 유튜브를 켜서 재생하기 시작하고 애플워치에 워크아웃 모드를 시작하고 할일 목록에서 오늘 운동 할일을 찾아 진행중 상태로 바꾸는 등의 작업을 차례로 수행합니다. 저는 오토메이션을 시작한 다음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켜고 운동을 시작하면 됩니다. 물론 창문과 선풍기 역시 자동화 하고 싶은 대상이지만 아직 그 수준에 도달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애플워치를 호출하는 모든 오토메이션이 고장나 있었습니다. 등록된 사용자가 아니라는 메시지가 나타나는데 검색해보니 원격에서 애플워치를 제어하는데 사용하는 어떤 인증 수단이 폰이 변경되면서 깨진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언급하는 게시물이 처음 나타난 시점은 2020년 경이었다는 점에 더 깊이 실망했습니다. 지금은 2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이런 문제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결국 애플워치를 언페어하고 다시 페어해서 문제를 해결했지만 여기에 다시 거의 30분이 걸렸고 내가 대체 왜 이 짓거리를 하고 있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몇 년 만에 바꾼 새 아이폰의 여러 기능은 마음에 들었고 앞으로 몇 년을 사용하기에 충분해 보이지만 이번의 전환 경험은 아주 나빴고 다시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만약 몇 년 뒤에도 이런 경험을 하게 된다면 더 많이 실망스러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