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릴 말이 있습니다 사례
한 식품 프랜차이즈가 실시한 이벤트 이름이 ‘마이애미’여서 이야기가 좀 나온 적이 있습니다. 프랜차이즈 입장에서는 미국의 지명이면서 앞뒤를 나눠 각각 영어와 한국어 비속어를 통해 따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재미있는 이벤트 이름을 선택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벤트 이름과 내용이 고객들에게 대상을 비하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면서 욕을 먹었습니다. 한 순간에 시끄러워졌다가 도도히 흐르는 타임라인의 강물 저편으로 이내 사라져 끝내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한편 한 커피프랜차이즈가 이전의 분위기와 전혀 연결되지 않는 이상한 문구를 큼직하게 걸어 놓아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건 둘째 치고 기존 매장 인테리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이어서 무슨 정신으로 저런 메시지를 커다랗게 전국 매장에 걸어 놓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고위 의사결정권자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거라는 의심도 했습니다. 이는 고위 의사결정권자들이 실제로 매장을 사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한편 이런 사례를 보며 제 스스로가 이런 메시지를 집행한다면 고객들로부터 나쁜 평가를 받게 될 이런 메시지를 걸러낼 수 있을지 생각해봤고 그럴 수 없으리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이런 메시지를 보고 이상한지 이상하지 않은지, 또 고객들이 기뻐할지 그렇지 않을지를 판단할 능력이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한 것은 이전에 겪은 ‘드릴 말이 있습니다’ 사건 때문입니다.
어떤 게임 라이브를 하며 매 주 퍼블리셔의 마케팅 부서와 회의를 했는데 한번은 다음번 이벤트 이름으로 ‘드릴 말이 있습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말 몸통에 말 머리 대신 드릴을 붙인 이미지를 가져왔습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잘 알 수 없었습니다. 일단 어느 쪽 감정 표현도 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성공했습니다. 퍼블리셔에서는 최근 새로 입사한 스탭들의 감각과 의견을 중시하고 있어 이들에게 고객들의 주목을 끌만 한 메시지를 고안해 달라고 요청했고 그 결과 중 하나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미지가 마음에 안 드는 분위기였지만 배경 설명을 들은 이상 집행하지 않을 수도 없었습니다. 이벤트 이미지를 게임에 넣고 이벤트를 만들고 이를 테스트 하면서 아 진짜 이거 이대로 나가도 괜찮나 하는 생각을 머릿속으로 여러 번 했지만 입 밖에 내지는 않았습니다. 주마다 돌아오는 업데이트는 이미 사람들을 한계까지 몰아넣고 있었고 이런 이슈로 협업부서들의 업무를 지연시킬 수 없었습니다. 깊이 생각하지 말고 빨리 끝내고 집에 가는 편이 나았습니다.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은 목소리가 큰 사람들의 의견으로 이 글들을 항상 신뢰하지는 않습니다.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과 실제 로그에 기록된 결과는 서로 상당히 다를 때가 많기도 했고요. 게임을 실행하자마자 말 몸통과 드릴 머리통이 달린 이미지를 본 고객들이 어떻게 이야기했을까요. 게시판에는 웃겼다, 재미있었다, 참신하다는 글이 올라왔고 이벤트는 별 문제 없이 진행됐습니다. 만약 이 주에 내 생각대로 문제를 제기했으면 어땠을까요. 결과는 알 수 없습니다. 사실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그냥 지나간 결과가 이랬으리라 예상하기도 어렵습니다. 다만 이 경험으로부터 고객에게 집행될 메시지가 적당한지 판단할 능력이 제게는 없음을 깨달았고 그 후 이 깨달음에 맞춰 행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