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스테이지 매니저
맥OS에 스테이지 매니저가 추가됐다는 것을 한동안 인식하지 못하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애플 이벤트에서 본 아름다운 소개가 떠오릅니다. 맥은 OS 버전 10이 된 후 지난 20년에 걸쳐 데스크탑 인터페이스에 여러 가지 시도를 해 왔습니다. 앱에 따라 전환되는 상단 메뉴는 아주 오래됐지만 하단 독, 익스포제, 앱 익스포제, 런처, 미션컨트롤, 버추얼 데스크탑 등은 지난 20여년 안에 시도된 기능입니다. 이들의 핵심은 여러 앱이 동시에 떠 있는 상황에서 멀티태스킹을 더 효율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어느새 맥이 업데이트 되어 있었고 어느 날 오후 머릿속이 복잡해 딴짓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스테이지 매니저 설정을 켰습니다.
최근까지 맥을 사용할 때 앱 간 전환은 주로 Command+Tab
을 사용했고 여러 앱으로 이루어진 작업 맥락 간 전환은 주로 네 손가락 쓸어넘기기 제스처를 통해 버추얼 데스크탑을 사용했습니다. 각 데스크탑을 작업 맥락에 따라 나눠 놓았는데 회사에서 문서작업, 회사에서 개발작업, 집에서 문서작업, 게임 및 엔터테인먼트 정도로 맥락을 구분하고 각각의 맥락을 다른 데스크탑에 배치했습니다. 회사에서 문서작업을 하다가 잠깐 쉴 때는 집에서 쓰는 데스크탑으로 이동하면 집에서 필요한 앱들이 떠 있었습니다. 이 데스크탑 안에서 작업을 한 다음 터치패드를 쓸어 넘겨 다시 회사 작업으로 쉽게 돌아왔습니다. 또한 데스크탑을 전환할 때 이를 조작하는 인간의 태스크 스위칭도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미션 컨트롤은 사용할 때의 간지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별로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간혹 맥을 큰 모니터에 연결해 프리젠테이션 할 때 미션 컨트롤을 통해 앱을 전환하면 ‘오오!’ 하는 반응을 들을 때가 있지만 미션 컨트롤은 방금 설명한 데스크탑을 통한 맥락 전환에는 썩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미션 컨트롤은 여러 데스크탑에 걸친 여러 앱의 현재 상태를 보여주고 또 같은 앱이 여러 데스크탑과 여러 윈도우에 걸쳐 열려 있을 때 이들을 정리해서 보여줍니다. 하지만 미션컨트롤 스스로는 이미 데스크탑을 통해 구분된 맥락을 보여주는데 아무런 장점도 없었습니다. 미션컨트롤을 통해서도 맥락을 전환하려면 데스크탑을 전환해야 했고 이미 전환된 맥락 안에서는 Command + Tab
을 통해 앱을 전환하는 것이 훨씬 더 빨랐습니다.
런처는 작업 맥락을 끊었기 때문에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윈도우 8은 윈도우 키를 누를 때 시작 메뉴가 전체 화면에 걸쳐 나타났습니다. 이는 터치 기반 디바이스를 고려한 동작이라는 점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이를 터치 입력이 없는 데스크탑 기계를 통해 사용할 때 매번 작업 맥락이 끊기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브라우저를 통해 문서를 작성하다가 드로잉 앱을 실행할 생각으로 윈도우 키를 눌러 시작 메뉴를 부르면 화면 전체를 시작 메뉴가 가득 채워 버리는데 그 순간 집중이 깨지며 이어서 하려던 작업을 놓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윈도우 키를 단독으로 누르지 않는 습관이 생겼고 앱 아이콘을 찾아 클릭하는 대신 Windows + S
를 눌러 앱 이름을 타이핑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같은 이유로 맥의 런처 역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아이패드에서는 대체로 멀티태스킹이 필요한 작업을 잘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작업을 하기 위해 홈 화면으로 돌아가 아이콘 중 하나를 선택해 다음 작업을 하는 행동이 내 작업 맥락을 끊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맥에서는 주로 여러 앱에 걸쳐 작업하고 있기 때문에 화면 전체를 가리는 런처는 윈도우 8의 시작메뉴 처럼 작업 맥락을 끊기 일쑤였고 독에서 일찌감치 치워버렸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스테이지 매니저는 이상한 인터페이스라고 생각합니다. 기존 멀티태스킹을 지원하는 버추얼 데스크탑, 미션컨트롤, 익스포제 인터페이스와 공존하지 못합니다. 일단 버추얼 데스크탑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버추얼 데스크탑은 여러 화면에 걸쳐 앱들을 작업 맥락에 따라 배치하는 역할입니다. 스테이지 매니저 역시 정확히 이와 똑같은 역할입니다. 스테이지 매니저를 사용하면 데스크탑을 이동하지 않고 여러 앱을 띄운 다음 이 상태를 스테이지로 정의해 구석으로 치웠다가 이 스테이지 단위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스테이지 매니저가 버추얼 데스크탑과 다른 점은 제스처를 통한 전환 방식과 데스크탑 목록을 미션컨트롤을 통해 볼 수 있는데 비해 스테이지 매니저는 항상 데스크탑 왼편에 떠 있다는 점 정도입니다. 스테이지 매니저를사용하기 시작하면 버추얼 데스크탑 하위에 스테이지라는 하위 구분이 생기는데 누군가는 이런 다층 구조의 데스크탑 구조화 방법이 유용할 수 있겠지만 간결한 맥락 전환을 생각하면 어느 한쪽만 남기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스테이지 매니저는 미션컨트롤과 동작이 겹칩니다. 미션컨트롤은 현재 데스크탑에 떠 있는 앱의 여러 윈도우를 정리해서 보여주고 데스크탑 단위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스테이지 매니저 역시 현재 데스크탑에 떠있는 앱들을 스테이지 단위로 정리해서 항상 보여줍니다. 미션컨트롤과 스테이지 매니저의 가장 큰 차이는 화면에 항상 떠 있는지, 아니면 제스처를 통해 불러내야 하는지의 차이 정도입니다.
애플은 아이패드와 맥 사이에서 인터페이스를 정돈하지 못하고 매 년 닥쳐 오는 OS 업데이트 주기에 맞춰 반짝이는 새 기능을 만드는데 집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반짝이는 새 기능에 집중하는 것은 오래된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때 항상 일어나는 일이라 크게 이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지난 20여년에 걸쳐 소개된 여러 가지 멀티태스킹 지원 기능들이 그대로 남겨져 정리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새로운 멀티태스킹 기능이 덧씌워지면서 기존 기능과 충돌하거나 기존 기능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사용해 나가야 할 지 갈피를 잡기 어려운 상황은 해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개발팀에서 반짝이는 새 기능에 매몰되어 계속해서 이전과 잘 맞지 않는 기능을 추가하더라도 누군가는 이 기능을 합쳐 효율적으로 태스크를 전환하는 시나리오를 만들어 공유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표준 시나리오 없이 비슷한 역할을 하는 기능을 추가하기를 반복하다가는 몇 년 지나지 않아 맥에서 단순히 태스크를 전환하는 일 자체를 기피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윈도우 8 시대에 윈도우 키를 단독으로 누르지 않도록 훈련된 것과 비슷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