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아이피타임 네트워크
세 줄 요약:
아이피타임 공유기는 초기설정에 'iptime', 'iptime_setup'으로 네트워크 두 개를 생성한다.
초기 설정을 진행하면 'iptime_setup'을 변경해 요구사항에 대응한다.
남은 'iptime'은 비보안 상태로 인트라넷을 노출시킨다.
Arlo Pro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구사항을 완벽하게 만족하지는 않지만 배선없이 대부분의 이벤트를 녹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광고와 비슷하게 동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카메라는 베이스스테이션과 카메라 사이에 이미 구축되어 있는 와이파이 네트워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 장비가 설치될 모든 장소에 와이파이 네트워크가 설치되어 있지 않으리라는 가정으로 만든 것 같은데 베이스스테이션을 유선으로 인터넷에 연결하면 베이스스테이션과 카메라 사이에는 자체적으로 통신합니다. 헌데 이 베이스스테이션은 긴 안테나가 달린 것은 아니라서 조금만 장애물이 있어도 신호가 약해져 오동작을 일으켰습니다. 오동작은 영상을 녹화하다가 이벤트가 아직 안 끝났는데 중간에 영상이 끊긴다든지 영상을 끝까지 전송하는데 실패한다든지 하는 현상입니다. 베이스스테이션을 카메라를 설치한 것에 가까운 위치로 옮기면 문제를 줄일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와이파이 네트워크는 베이스스테이션을 옮길 위치에서도 신호가 적당히 강해서 불만이 좀 있었습니다. 와이파이 네트워크가 있는 집에 굳이 베이스스테이션이 별도로 효율적이지도 않은 방법으로 통신을 하는게 올바른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대안이 전혀 없어 베이스스테이션을 옮기기로 했는데 베이스스테이션은 오직 유선네트워크에만 연결할 수 있어 와이파이 리피터가 필요했습니다. 구글홈이 예뻐보였지만 와이파이 리피터에 돈을 쓰기에는 너무 비싸 이리저리 찾다가 십 수년 만에 아이피타임 공유기를 사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뾰족한 안테나가 여럿 달린 거창한 공유기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만원대 극초반인 기계를 샀습니다. 스펙과 기능설명으로 미루어 리피터로 동작할 수 있어 보였습니다.
요즘 시대에 맞게 이 공유기도 모바일 환경에서 설치할 수 있다고 광고했습니다. 공유기를 전원에 연결하고 조금려 부팅이 끝나면 폰에서 이 공유기가 생성한 와이파이 네트워크에 접속해서 라우터에 앱으로 연결해서 초기 설정을 입력하는 방식입니다. 앱 디자인이 90년대 후반 싸이월드에서 20여년을 워프해서 갑자기 나타난 가니메데인 같은 모습이지만 이 회사니까 이정도 수준에 충격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요샌 하다못해 넷기어같은 회사도 앱을 이딴식으로 만들진 않지만요. 저는 바로 리피터로 설정하고 싶었지만 앱은 유선으로 인터넷에 연결하거나 무선으로 인터넷에 연결하는 설정만 지원했습니다. 저는 만얼마짜리 아주 조그만 기계를 산건데 이렇게 작은 기계조차도 바로 인터넷에 연결할 용도로만 사용한다고 가정한 모양입니다. 랜선이 닿지 않는 위치에서 전원을 연결하고 있었기 때문에 좀 짜증을 내며 기계를 뽑아 메인 공유기가 있는 위치까지 이동한 다음 랜선으로 새 공유기를 연결하고 나서야 초기설정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원하지 않는 설정으로요.
처음 기계를 켜면 네트워크가 두 개 생깁니다. 'iptime', 'iptime_setup'인데요, 전자는 흔히 봐 왔던 수많은 보안상 위험하지만 어쨌든 무료로 인터넷을 퍼주는 바로 그 이름이고 후자는 아마도 설치 앱이 설치과정 전용으로 사용하는 네트워크인 모양입니다. 예상한 대로 후자는 초기 설정을 하면서 내가 설정한 이름으로 변경됩니다. 시작부터 리피터로 설정할 수 없어 일단 유선 인터넷을 무선으로 뿌리도록 설정한 다음 무선 웹으로 접근해서 설정을 변경했습니다. 다행히도 여기에는 리피터 설정이 있어 이걸로 설정했습니다. 리피터로 설정하면 단지 기존 신호 범위를 넓혀주는 역할만 하므로 네트워크상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아이피도 없어지고 전용 네트워크도 사라져야 합니다.
그런데 리피터로 잘 동작한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폰에서 와이파이 네트워크 리스트를 보니 익숙한 'iptime'이 남아있는 겁니다. 이게 뭐지 싶어 접근해보니 일단 보안설정도 없는데다가 라우터 주소를 웹브라우저에 넣어보니 메인 공유기 관리 페이지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제멋대로 'iptime' 네트워크를 없애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여기에 접속하면 기존 인트라넷에 그냥 접근할 수 있었던 겁니다. 이제서야 왜 한국 어디를 가든 보안상 안전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무료 인터넷을 제공하는 멍청한 'iptime' 네트워크가 널려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 네트워크는 내가 사용하기에도 보안상 위험하지만 그 네트워크를 호스팅하는 사람에게도 위험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 공유기는 초기 설정에 따라 네트워크 두개 중 하나를 변경해 내 요구사항에 맞춰주지만 나머지 네트워크 하나는 의식적으로 설정을 변경하지 않으면 초기설정 그대로 남아 아무에게나 인트라넷을 노출시키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 공짜 네트워크를 없애려고 무선으로 접근한 설정 웹페이지에서는 이 'iptime' 네트워크를 끌 수가 없었습니다. 버튼을 아무리 눌러도 먹통이었습니다. 이대로는 이 공유기를 사용할 수가 없다고 판단했는데 다행히도 다시 유선에 물려서 관리자 페이지에 접근해보니 어째서인지 무선으로 접근했던 것과는 다른 관리페이지가 나타났고 여기서는 'iptime' 네트워크를 없앨 수 있었습니다. 유선 관리 페이지에 접근하기 위해 다시 공유기를 뽑아 메인 공유기까지 온다음 전원에 연결하고 랜선을 연결하고 부팅이 끝날때까지 기다렸다가 다른 랜포트가 있는 기계를 물리고 나서야 이 작업을 할 수 있었다고 적는 사이에 화가 치밀어오르네요.
이 에피소드를 거치면서 이 공유기에 대한 신뢰는 한없이 0에 가까워졌습니다. 개방된 네트워크가 인트라넷을 그냥 노출시키는 꼴을 본 순간에는 돈 좀 아끼겠다고 내가 이걸 사서 이 짓거리를 하고있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한편으로는 전국에 널려있는 공짜 인터넷의 정체를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미 포장을 뜯었고 상자에 무시무시하게 '이걸 뜯으면 환불 불가!!' 스티커가 붙어있어 아마 환불은 안될거같아 일단 그냥 써보기로 했습니다. 다행히도 카메라 문제는 확실히 완화됐고 이정도면 일단 문제를 해결했으니 실패한것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회사 기계는 앞으로 절대, 실수로라도 구입하지 않을 겁니다. 싼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