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피스 고 필기 문제
사실상 필기가 불가능함
지금까지 '서피스 프로 4'를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상 작업을 매끄럽게 수행했습니다. 크롬 브라우저에 탭을 여러개 띄워도 괜찮았고 거대한 원노트 필기장도 별 문제 없이 열렸습니다. 자잘한 유틸리티를 띄워놓고 스위칭해도 버벅거림 없이 돌아갔고 좀 더 무거운 앱을 사용하고 싶으면 이미 떠 있는 앱을 좀 정리해주면 됐습니다. 태블릿으로 사용하다가 타입 커버를 붙여 랩탑으로 전환하는 경험도 괜찮았고 손으로 필기하기에도 훌륭했습니다. 다만 펜이 좀 무겁고 타입커버를 붙였다 땠다 하기가 좀 귀찮기는 했지만 이정도 사용경험을 제공하는 기계가 생각보다 드물었습니다.
서피스 고가 나온다길래 관심을 가졌습니다. 서피스 프로와 비슷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지만 물리적인 크기가 훨씬 작어 가볍게 들고다니기에 훌륭할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10인치쯤 되는 크기는 아무데나 쓱 밀어넣고 편하게 더니기 좋아 보였습니다. 사실 이번에 나온 아이패드를 함께 고려하긴 했는데 일단 가격이 굉장히 높고 세대 사이에 액세서리 호환이 '전혀' 안되며 태블릿의 주력 앱인 원노트앱이 충분히 구현되어 있지 않은 점에서 밀려났습니다. 상대적으로 성능이 떨어지고 태블릿으로 훌륭하지는 않은 서피스 고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배송받아 뜯어 충전하고 원노트를 설치하자마자 함께 주문한 신형 펜으로 선을 그어보고 생각했습니다.
“…… 이게 뭐야”
필기감이 형편없었습니다. 서피스 프로와 비교하기에 관측가능한 우주의 끝에서 끝까지 떨어진 느낌입니다. 과거 슬레이트PC에 가장자리 오차가 심한 와콤펜이나 터치로만 동작하는 두툼한 정전식 펜보다도 못했습니다. '갈고리 현상'이 너무 심했고 지터 역시 심했습니다. 지터는 글자가 제대로 완성되지 못하게 방해했고 갈고리현상은 다음 글자를 쓰기 시작할 때 이전 글자를 엉망으로 만들었습니다. 필기에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그제서야 제대로 검색하지 않고 서피스 프로의 경험을 믿고 구입한걸 후회했습니다. 이제서야 검색해보니 수많은 양인들이 작년 8월부터 몇달째 갈고리현상('Fish Hook')과 지터현상이 심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었고 윈도우 업데이트가 될 때마다 문제가 해결되었는지 확인했으며 서로 다른 세대의 서피스펜 조합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필기문제 완화 실험
서피스 고 + 신형 서피스 펜
갈고리 현상은 획 아래쪽에 오른쪽 위 방향으로 삐친 부분을 말합니다. 당연히 저는 획을 내리 긋고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에 펜을 들어올렸지만 갈고리가 생겼습니다. 애플펜슬 1세대에서 사실상 글씨를 쓰기 불가능하거나 초딩글씨체밖에 쓸 수 없도록 만들었던 바로 그 현상이 서피스에서도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글씨를 쓸 때는 이전 글자 위에 원하지 않는 갈고리 모양이 그려져 글자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듭니다. 이 조합으로는 필기가 불가능합니다.
서피스 고 + 신형 서피스 펜 + 윈도우 업데이트 1809
검색에 따르면 윈도우 업데이트 1809 이후에 소프트웨어 개선으로 이 현상이 좀 개선됐다고 합니다. 추청하는 원인으로는 서피스 프로 라인업에 있던 특정 하드웨어를 제거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만약 사실이라면 그런 의사결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작은 서피스라고 해서 필기에 사용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한 걸까요. 윈도우 업데이트 후에 테스트해봤지만 뚜렷한 차이를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갈고리가 좀 줄어든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습니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다면 구분하지 못할 수준입니다.
서피스 프로 + 신형 서피스 펜
서피스 고의 사실상 필기가 불가능한 상태가 신형 서피스 펜과도 관계가 있다는 글을 보고 나서 이번에는 신형 펜과 서피스 프로 조합을 확인해봤습니다. 뚜렷하게 갈고리 현상이 없어졌지만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신형 펜도 갈고리 현상을 만드는에 일조하고 있다고 추정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작은 서피스를 만들면서 펜 사용자들을 의도적으로 엿먹이려고 하지 않고서야 태블릿과 펜 모두를 이딴식으로 만들지 않았을 겁니다.
서피스 고 + 서피스 프로 펜
서피스 고에 서피스 프로 펜을 사용하면 상황이 개선된다는 글을 보고 실험해봤습니다. 과연 갈고리현상이 뚜렷하게 개선됐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뚜렷하게 지터 현상이 심해졌습니다. 원래 세로로 그냥 내리긋는 획에서는 잘 발생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냥 선을 내리그을 때도 마구 나타났습니다. 아마도 약간 느린 속도로 글씨를 쓰는데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순간순간 획이 사라져 신경을 긁겠지요. 마이크로소프트가 이 문제에 책임을 져 줄 것 같지도 않고 또 이전처럼 어처구니없는 문제를 소프트웨어로 수정하는데 몇 년씩 걸릴 겁니다. 그 사이에도 기계를 어쨌든 사용해야 할테고 그때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향한 적개심이 커질 겁니다.
역시 싼게 비지떡인가
느린 프로세서를 사용해 일상적인 작업이 무거워보인다든지 하는 문제는 좀 의문이기는 합니다. 작은 기계가 항상 더 낮은 파워로 돌아가야 한다는 선입견이라도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선입견을 깨기 위해서는 돈을 거의 4배나 주고 아이패드 프로를 선택하는 선택지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마이크로소프트가 지금까지 서피스 라인업으로 구축해 온 명성을 한방에 날려버리고 신뢰는 커녕 적개심만 생기게 만든 제품을 출시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서피스 라인업의 신뢰로 잘 알아보지도 않고 새로운 서피스를 구입했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다음에 서피스를 구입하려 한다면 대단히 까다롭게 결정할 겁니다.
참고로 얼마전에 안드로이드 게임 돌리려고 산 갤럭시탭 S3의 와콤 EDR 펜의 결과를 보여드릴까 합니다. 딱 한번 갈고리 현상이 나타났는데 꽤 가혹하게 그어댔으므로 어지간해서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