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 2077
이번달에 플레이했고 아직 플레이중인 게임은 사이버펑크 2077입니다.
온 인터넷에 이 게임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하니 게임의 특징이나 완성도 이야기는 잠시 접어 두고 두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하나는 이 게임은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공각기동대의 세계 그 자체라는 것, 다른 하나는 평소 오픈월드 게임을 매우 몹시 대단히 만들고 싶어하는 입장에서 이 게임이 준 교훈에 대해서입니다.
일단 이 게임은 공각기동대 그 자체입니다. 블레이드러너보다 공각기동대 첫번째 극장판을 먼저 보고 이 매력적인 세계관에 빠졌습니다. 기업의 네트가 별을 뒤덮고 전자와 빛이 우주를 흘러 다니지만 국가나 민족이 사라질 정도로 정보화되어 있지는 않은 가까운 미래. 사람들은 여전히 거리를 걸어다니고 우리들의 생활은 지금 세계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 사람들 하나하나는 전뇌 수술을 받아 지금에 비해 훨씬 더 정보화된 어느 미래. 전뇌화된 인간들 사이에 섞여 있는 의체를 사용하는 인간들. 이 설정만으로도 겉보기에 지금과 비슷한 세계 속에서 매력적인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지금까지 공각기동대를 소재로 한 게임들이 꽤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각적으로 그와 비슷한 배경과 소재를 만드는데는 어느정도 성공했지만 게임을 플레이해보는 순간 이건 어떻게 생각해도 공각기동대 세계를 깊히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사이퍼벙크 2077은 시각적으로 공각기동대에서 본 소재를 조금도 차용하지 않았지만 이 세계는 공각기동대의 배경 세계 그 자체입니다.
사람들은 신체의 일부에 임플란트를 이식하고 아담스매셔처럼 거의 전신 의체에 가까운 신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이들은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어 주인공의 네트워크 공격에 노출됩니다. 게임 속 여러 미션들을 수행하며 때로는 이전에 플레이하던 둠 이터널처럼 플레이하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카메라를 해킹해 모두를 조용하게 만든 다음 비무장으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가 당당히 미션을 완료하기도 했습니다. 엘리베이터에 타면서 솔리드 스테이트 소사이어티에 소령처럼 “엘리베이터를 타고 당당히 걸어들어가는 거야” 라고 말하면서요. 플레이하는 내내 소령의 메소드연기에 빠져 오랜만에 정말 즐겁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 머릿속의 공각기동대 세계에 대한 경험은 이제 어느 정도 사이버펑크 2077로 덧씌워졌습니다. 참고로 주인공의 아파트에서 나와 거리에 들어서자마자 하늘을 바라보며 카와이 켄지의 공각기동대 배경음악을 들어보세요. 지금까지 나온 어떤 게임보다도 그 세계와 어울릴 겁니다.
GTA 3를 플레이해보고 나서 이런 오픈월드 게임을 개발하는 욕망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이런 게임을 개발할 기회를 잡지는 못했지만요. 하지만 여전히 어지간히 유명한 오픈월드 게임을 플레이해보고 각자 오픈월드에 대한 접근방법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근본적으로 락스타가 만들어내는 오픈월드는 복제하기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들도 근 20여년에 걸친 경험을 기반으로 매 시리즈마다 노동계에 이슈가 될만큼 사람들을 갈아넣은 끝에 아슬아슬하게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가장 잘하는 이들조차도 이 모양이다 보니 오픈월드 게임을 개발하는 다른 팀들은 각자 다른 접근방식을 선택했습니다. 가령 고스트리컨 시리즈는 매 시리즈마다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사실상 개방된 공간에서 레벨디자인을 거의 포기했습니다. 또 메탈기어솔리드 팬텀페인은 공간을 열어뒀지만 지형 설계를 강하게 통제해 레벨디자인 요소를 유지하고 유의미한 지형 사이의 빈 공간의 비용을 의도적으로 줄였습니다. 이런 적당한 타협을 통해 락스타와는 다른 오픈월드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사이버펑크 2077은 락스타를 한번에 따라잡으려 노력한 시도의 결과입니다. 결과는 모두가 알고있다시피 아주 성공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이들도 락스타처럼 제한시간 안에 사람을 갈아넣어 2차원으로 넓고 다채로운 도시를 만들어냈고 여기에 이 게임만의 스타일인 세로로도 풍부한 오픈월드를 만들어냈습니다. 도시의 어디를 걷든 시청각적으로 독특하고도 풍부한 경험을 줍니다. 하지만 시스템 측면의 디테일은 안타깝습니다. 도시를 채운 사람들의 행동은 단순하고 거의 유일한 탈것인 오토바이와 자동차는 안쓰럽게 움직입니다. GTA에서 자동차를 관찰해보면 모든 자동차는 항상 플레이어의 시야 밖에서 생성되어 시야 안으로 들어오지만 사이버펑크에서는 플레이어 시야 안에서 생성되어 이 세계가 실제 세계와는 거리가 있음을 노출하고 맙니다. 락스타는 이런 세부 시스템들을 지독하게 잘 만들어내 이런걸 만들어볼 생각을 할 여지가 별로 없었지만 이 게임은 각각의 헛점들을 보며 이 헛점을 줄이려면 뭘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생각해보게 만들었습니다. 분명 나이트시티를 만드는 일은 정신나갈 정도로 복잡하고 어렵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MMO 게임을 만들며 겪는 온갖 황당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일과 별로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에 오가는 이야기들처럼 버그 투성이에 못할만한 게임이 아닙니다. 이들은 진짜 공각기동대에 어울리는 세계를 만들어냈고 락스타만이 할 수 있다고 여기던 장르의 요새에 커다란 균열을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