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서비스 종료
오래 전에 MMO 게임서비스가 종료된 후 남는 것들을 읽었습니다. 이미 그 시점에도 여러 번 개발이 중단되거나 서비스가 중단된 경험이 있었지만 이 경험을 그리 나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어제까지 내 인생의 시간을 갈아넣으며 만들던 프로젝트가 오늘은 더이상 접근할 수 없는 형상관리도구상의 바이너리 덩이라기 되었지만 어쨌든 나는 이 일을 한 댓가를 이미 급여로 지불 받았으니 프로답게 미련을 가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이 생각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몇 년 전에 런칭했던 게임이 서비스를 중단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연히 아직 거기에 남아계신 분들과 송년 인사를 하다가 알게 됐습니다. 슬슬 서비스를 접을 때도 됐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접힌 상태일 줄은 몰랐습니다.
현대의 게임은 서비스 기반이고 운영에 항상 사람이 필요합니다. 게임은 짧은 시간 안에 개발됩니다. 이전 시대에는 게임의 일부로 흡수했던 기능 상당수가 운영인력에 의해 게임 외적인 방법으로 처리될 것을 가정합니다. 때문에 어느 순간 매출이 손익분기점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하면 이전 시대처럼 가늘고 긴 서비스를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가령 매주 강력한 이벤트 부스팅을 통해 매출을 유지하던 상황이라면 이 이벤트 유지에 필요한 인력을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이 오면 게임은 한 순간에 멈춰버립니다. 서비스를 유지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매주 점검시간마다 인간이 수동으로 컨텐츠를 유지보수하고 불완전하게 개발된 코드가 일주일 내내 동작하며 만들어낸 잘못된 결과들을 정리해 왔습니다. 누군가는 점검 전날 저녁부터 점검을 마칠 때까지 일해야 하고 여기에는 돈이 필요합니다. 현대의 게임은 이전 시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돈을 더 많이 벌지만 그만큼 서비스에 더 많은 돈을 소모합니다. 그래서 게임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서비스가 종료됩니다.
서비스가 종료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단 게임 웹사이트에 접속해봤습니다. DNS_PROBE_FINISHED_NXDOMAIN
에러가 났습니다. 종료 공지를 한동안 걸어두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이미 퍼블리셔는 게임에 할당했던 서브도메인 자체를 제거해버린 모양입니다. 사실 현대의 게임 웹사이트는 게임을 소개하고 광고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아 웹사이트에 별 의미는 없습니다. 고객과 커뮤니케이션은 모두 네이버 카페를 통합니다. 그래서 다음은 네이버 카페에 접속해봤는데 이쪽 역시 카페 주소가 없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몇 년 동안 서비스한 게임이 종료되면 하루아침에 웹사이트도 네이버 카페도 사라져버린 겁니다. 이건 개발자의 언어이고 말을 바꿔 고객 입장에서 몇 년 동안 플레이하던 게임 서비스가 종료되고 나니 그 게임에 대한 흔적 대부분이 사라져버린 겁니다. 웹사이트도 없어졌고 계정이 정지될 위험에도 불구하고 어처구니없는 운영 결정에 항의하기 위해 게시판에 드러눕곤 하던 네이버 카페 역시 증발해버렸습니다. 사람들과 공략을 나누고 매주 공격적인 이벤트 부스팅의 홍수 속에 어떤 패키지가 그나마 가성비가 나은지 의견을 주고받거나 어떤 캐릭터의 궁스킬 비주얼이 예쁘다던 이야기를 나누던 그 모든 흔적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물론 개개인이 남겨둔 영상, 공략이 웹에 여전히 남아 한때 이 게임에 시간과 자원과 정렬을 쏟았다는 사실을 어떻게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이쯤 되면 이건 고객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나 싶었습니다. 고객들이 우리가 만들어 서비스한 게임에 관심을 보이고 긴 시간을 보내며 여러 에피소드를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서비스를 중단하게 되더라도 하루아침에 이 모든 흔적을 지우고 마치 없었던 것 마냥 행동하면 안됩니다. 미래에 같은 개발사나 같은 퍼블리셔가 새로운 게임 서비스를 시작할 때 고객들이 다시 지난번 게임 서비스가 종료되며 겪었던 일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고객들과 장기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데 지금보다 더 신경을 써야 하고 그 중 하나는 이런 식으로 마치 야반도주하는 마냥 모든 흔적을 지워버리지 않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고객들은 우리 게임에 관심과 시간과 자원을 쏟아부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고객들에게 무엇을 남겨주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