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근무 2일차

결론: 널리 알려진 것과는 약간 다른 도구와 환경을 사용합니다. 채팅회의는 실제 모여서 하는 회의와 약간 달랐지만 한편으로는 이전의 회의를 제어하는 방법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업무를 동기화할지 비동기상태로 처리할지를 결정하기 어려웠고 또 휴식을 취할 시간을 결정하기 어려웠습니다.

어제 이 업계에서 일하며 처음으로 겪어본 원격근무 경험을 이야기했었는데요, 뭐 그정도면 되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이틀째인 오늘도 일하면서 적어둔 메모를 보니 이야기할 거리가 있겠다 싶어 간단하게나마 정리해봅니다.

도구

제가 그동안 들어 온 원격근무 사례들은 구성원들의 기술수준이 높아 인터넷에 널리 알려진 협업도구들을 잘 활용했습니다. 가령 모든 사람들이 행아웃의 존재를 알고있었고 금새 사용했습니다. 제가 간과한 점은 이런 도구들이 인터넷에 널리 알려져있었다는 점입니다. 우리들은 망분리된 환경에서 일하고 있었고요.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구성원들이 그런 도구에 전혀 익숙하지 않다는 점, 다른 하나는 그런 도구들에 실제로 접근할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이런 상황에는 약간 다른 접근이 필요했습니다. 일단 인터넷이 없는 업무환경은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들 대부분은 게임을 제법 플레이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양산형 모바일 게임을 만들기는 하지만 구성원들 각각은 우리가 만드는 플랫폼을 포함한 다양한 장르와 플랫폼의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직접 대화하는데 행아웃을 갖추게 하기는 어려웠지만 디스코드는 훨씬 간단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사용중이었거든요.

환경

회사는 어느 정도 환경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다른 부서 사람들이 몰려와 회의실을 쓰면서 시끄럽게 굴면 영업용 표정을 무너뜨리고 밥버러지 바라보듯 해 주면 됐습니다. 하지만 집에서는 그런 식으로 환경을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집에선가 공사를 하는 모양인데 몇 시간 동안 드릴 소리가 이어졌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대충 지나친 공사인 모양입니다. 다행히도 아이패드에 달린 마이크는 내 목소리만 상대에게 전할 뿐 그 주변을 매운 멀리서 들려오는 드릴의 진동을 함께 전달하지는 않았습니다. 상대에게는 들리지 않았지만 제게는 계속해서 들려와 머릿속을 어지럽혔습니다. 게다가 집 근처에서는 동사무소에서 나온 차량이 의심증상이 있으면 전화하라고 확성기를 통해 방송하고 있었고 폰은 이따금씩 지역의 새로운 확진환자 안내를 반복했습니다. 일단 집에서는 드릴 소리를 포함한 어떤 소리도 제어할 수가 없었습니다.

회의

어제 밤에는 걱정이 꽤 됐습니다. 이유는 어제는 회의 일정이 없었지만 오늘은 있었거든요. 과연 팀 간에 회의가 잘 될지 의심스러웠습니다. 과연 채팅으로 잘 해낼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디스코드라도 모든 사람들에게 즉시 준비시키기는 어려웠거든요. 정확히 의도한 시각은 아니었지만 매터모스트 채널에서 관련 주제로 채팅이 시작됐습니다. 여느 회의 때와 마찬가지로 회의 자료를 위키에 기록해서 링크로 뿌렸습니다. 원격 여부와 관계 없이 어느 한쪽에서 첫번째 제안을 만들어 가면 회의가 빨라집니다. 아무것도 없는데서 결정하기보다는 제안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 제안에 동의하거나 씹고 뜯으며 다른 제안을 빨리 만들어낼 수 있거든요. 말로 하는 회의와 완전히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지금 채팅창에 집중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고 대화 사이에 몇 십 초씩 간격이 길어지면 여길 계속 보고있어야 할지 아니면 다른 일을 해야 할지 결정하기 어려웠습니다. 오늘은 계속해서 집중한 채로 위키 페이지에 거의 실시간으로 회의록을 정리해 대화 사이에 간격이 길어질 때마다 그 시점까지 정리된 결론 주소를 계속해서 던졌습니다. 그러면 다시 몇 초 지나지 않아 채팅창 아래에 '누구 님이 입력하고 있습니다' 메시지가 표시되고 회의가 진행됐습니다. 필요한 사람들을 그때그때 채널에 추가하고 회의록을 던지고 잠깐 기다리면 동기화됐기 때문에 걱정한 만큼 나쁘지 않았습니다.

동기화 결정

디스코드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망분리된 환경의 화면을 공유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전화요금 걱정 없이 이야기를 할 수는 있게 됐습니다. 그러자 어제는 없던 새로운 고민이 생겼습니다. 내가 지금 협의할 이 일을 어제처럼 비동기 상태로 진행할지 아니면 동기상태로 진행할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비동기상태로 일하는건 나쁘지 않습니다. 내가 담당할 부분을 진행한 다음 적당한 방법으로 다음 사람에게 공유하면 됩니다. 하지만 업무분장이 완전하지 않거나 내 일 자체가 그런 비정형 상태인 일에 파이프라인을 구성해 다음 사람들에게 넘기는 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내 이전 사람도 내 다음 사람도 확실하지 않았고 내가 그때그때 결정하는 파이프라인에 따라 앞으로의 양산이 달라집니다. 내가 지금 이 일을 비동기상태로 처리해 지연시키면 그만큼 내 다음 사람들의 양산시간이 줄어듭니다. 다만 가까이에 앉아서 일하고 있다면 상대의 상태를 보고 동기화해서 업무를 진행할 결정을 하기 쉽습니다만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없는 상태에서는 동기화한 업무를 결정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이 때 구글캘린더 따위를 사용해 동기화할 시각을 결정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지만 여전히 우리가 적용하기는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휴식

혼자 앉아 일하고 있으니 몸을 움직이거나 휴식을 취할 시간을 만들기가 어려웠습니다. 회사에서라면 점심을 먹고 자리에 돌아와 잠깐 눈이라도 붙이거나 산책을 나가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는데 집에서는 습관이 없어서인지 바로 컴퓨터 앞으로 돌아와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회사에서라면 다른 사람들 자리를 찾아다니느라 꽤 돌아다니곤 했는데 채팅이나 디스코드를 통해야 의사소통을 하기 시작하니 움직일 일이 전혀 없어졌습니다. 몇 시간이고 자리에 앉아 계속해서 일하다 보니 몸이 힘들어지고 나서야 몇 시간이나 한 자세로 앉아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리에서 잠깐 일어났지만 평소에 회사에서 일할 때와 비교해 훨씬 더 힘든 느낌이었습니다.

다음에 계속

그동안 읽어보고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던 원격근무를 아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막연히 우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만 하던 때에 비해 실제로 뭐가 어려운 점인지, 또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혹은 우회할 방법이 있을지를 직접 파악할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상태가 지속 가능한지는 의문이 있습니다. 아직 이야기할 주제도 남아있고요. 일단 금요일 일이 끝났으니 평소와 같이 토요일과 일요일은 쉴 겁니다. 평소처럼 일에 별로 신경쓰지 않고서 제가 하고싶은 일을 할 겁니다. 그러면 또 다음주에 계속해 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