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워크스테이션 요구사항
모바일 워크스테이션 요구사항:
운영환경 관리부담이 적어야 한다.
작업 각각이 더 예쁘고 우아해야 한다.
프로세서가 강력해야 한다.
팬이 없는 구조여야 한다.
펜이 강력해야 한다.
연결성은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다.
셀를러네트워크를 반드시 지원해야 한다.
화면이 밝고 뚜렷하고 프레임레이트가 높으면 좋다.
여러 사설수리점에서 취급해야 한다.
좋은 카메라와 사진 소프트웨어가 있어야 한다.
스토리지 암호화를 지원해야 한다.
새 아이패드가 발표됐고 아이패드를 못 사고 죽은 귀신이라도 붙어있는 것 마냥 행동하고 있었습니다만 새 아이패드는 평가가 별로 좋지 않고 근시일 안에 새로운 하이엔드급 모델을 출시할 계획이지만 올 초를 그냥 보낼 수 없어서 적당히 만들어 출시했다는 의견이 돌아다니는 가운데 잠깐 마음을 다잡고 이번 세대 아이패드를 사용할지 아니면 지금 가진 환경으로 좀 더 버틸지를 생각해보기 위해 아이패드를 왜 사려고 했는지 요구사항을 정리해보기로 했습니다.
관리부담이 적어야 합니다. 기계는 뒤로 사라지고 온전히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어야 합니다. 20년쯤 전의 윈도우 환경은 그와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항상 하드웨어는 문제를 일으켰고 수준 낮은 소프트웨어들은 저혼자 멈추기를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윈도우 환경은 더이상 그렇지 않습니다. 수준 낮은 소프트웨어가 문제를 일으키는 상황은 몇 년에 한번 일어날까말까하고 운영체제는 인스톨 해놓고 나서 시간이 제법 흘러도 처음과 비슷한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합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제 기준도 점점 더 올라가 더 적은 관리행동만으로도 잘 유지되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새 소프트웨어를 설치할 때 이 소프트웨어가 운영체제나 다른 소프트웨어의 동작에 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 좀더 확실하고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할 때 이 소프트웨어가 안전한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로 인해 모든 파일시스템을 직접 들여다보고 이들을 직접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이 조금 줄어들어도 괜찮습니다. 소프트웨어를 신뢰할 수 있고 이들이 정상적으로 동작하기만 한다면 관리행동을 더 줄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저는 더 제 작업 자체에 집중할 수 있을 거고요.
작업 각각을 좀 더 예쁘고 우아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같은 행동을 하는 소프트웨어도 아이패드에서는 좀 더 봐줄만한 모양인 반면 윈도우용은 상대적으로 조잡할 때가 있습니다. 비슷한 역할을 하고 기능 구성도 비슷한 마크다운 에디터가 윈도우에서는 10년 전에서 갑자기 워프해온 것 같은 인터페이스를 보여주는 반면 아이패드나 맥에서는 훨씬 더 예뻤습니다. 이유를 모르겠지만요. 이 경향이 계속되다 보니 서로 다른 기계 모두에서 같은 작업을 할 수 있다면 기왕에 가장 예쁜 모양으로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로세서가 강력해야 합니다. 이전 세대 아이패드 프로의 단점 중 하나는 프로세서가 강력한 것에 비해 매일매일의 작업은 그런 강력한 성능을 요구하지 않아 가격 대 성능비가 나쁘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프로세서는 무조건 강력해야 합니다. 작년에 서피스 고를 샀다가 이 교훈을 처절하게 깨달았습니다. 모바일기계라고 해서 항상 가벼운 웹브라우징만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현대에는 웹브라우징도 제법 무거운 작업입니다. 온갖 기능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웹사이트는 이전 시대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무겁고 이는 더이상 가벼운 프로세서만으로는 편안하게 작업할 수 없습니다.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는 행동들도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력한 프로세서를 요구합니다. 하다못해 아주 긴 PDF 문서를 열어놓고 옆에 손으로 메모를 하기만 해도 프로세서가 받쳐주지 못한다면 간단한 동작 하나하나가 버벅거립니다. 서피스 고가 그랬고 빠르게 핵심 작업에서 멀어졌습니다. 프로세서는 강력해야 합니다. 사용자가 그걸 사용할지 말지는 스스로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일단 프로세서가 강력한 다음 사용자의 작업이 그 위에서 부드럽게 돌아가면 강력한 프로세서를 활용하고 있는 것 맞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 교환이 잘 일어나 팬이 없는 구조여야 합니다. 강력한 기계일수록 강력한 팬과 히트파이트를 사용해 강력한 프로세서로부터 나오는 열을 식히곤 합니다만 모바일 워크스테이션은 그러면 안됩니다. 강력한 프로세서를 요구하지만 열 처리를 위해 물리적으로 회전하는 팬이 붙어있어서는 안됩니다. 일단 이 기계는 어디든 들고다닙니다. 더 자주 충격을 받고 더 많은 진동에 노출됩니다. 그런 기계에 움직이는 장치는 고장을 일으킬 가능성을 올려줍니다. 또 조용한 장소에서 기계를 사용하려고 할 때 팬 소음은 상당히 거슬릴 뿐 아니라 기계의 몇몇 작업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가령 얼마 전 사설수리해서 몇 년째 주력으로 사용하는 서피스 프로는 부하가 시작되면 팬이 돌기 시작하는데 이 팬 소음이 마이크에 녹음되어 곤란을 겪었습니다. 일단 마이크를 사용한 기능 전부를 활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요즘은 노이즈캔슬링을 통해 더이상 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만 근본적으로 팬이 없는 편이 더 좋습니다.
펜이 강력해야 합니다. 바로 위에서 이야기한 팬과는 다른 펜입니다. 서피스와 갤럭시탭, 슬레이트PC를 오랫동안 주력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펜이었습니다. 제 노트 대부분은 손글씨로 작성합니다. 손글씨 노트에는 너무 쉽게 옆에 그림이 들어가고 문장과 문장, 단어와 단어 사이를 연결하는 선이 들어갑니다. 손글씨로 작성하지 않는 어떤 텍스트 노트로도 이 방법을 재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텍스트에 링크를 걸거나 검색이 아주 원활하지는 않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손글씨 노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펜이 강력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휴대성을 높이기 위해 펜을 납작하게 만들어서도 안됩니다. 하루에도 수 십 페이지씩 노트를 작성할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휴대성이 뛰어난 납작한 펜은 제 손목을 파괴할 겁니다. 휴대성 좋은 펜은 먼 옛날 조나다 548의 끔찍함만으로 충분합니다.
요즘 세상에 수많은 포트를 통한 연결성은 예상만큼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포트가 너무 적은 기계는 그 자체가 단점으로 부각되곤 했습니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대부분의 연결은 무선 네트워크를 통해 처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 사이에 인터넷이나 인터넷 서비스가 끼어들 수도 있고요. 외장 스토리지를 기계에 직접 연결하거나 랜케이블을 직접 꽂거나 프로젝터에 직접 연결할 일도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또 USB-C 허브가 다양하게 개발되면서 이제 수많은 동글 대신 허브 딱 하나만 들고있으면 딱 하나뿐인 포트가 별로 불편하지 않은 시대가 됐습니다.
셀룰러네트워크를 반드시 지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작업하기 전에 항상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지에 신경쓰고 이 인터넷의 상태를 계속해서 확인하는데 정신을 빼앗겨 작업에 집중할 수 없을 겁니다. 처음에 환경을 관리할 필요가 거의 없어야 작업에 집중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셀룰러네트워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와이파이네트워크를 선택하고 카페 어딘가에 붙은 패스워드를 보고 타이핑한 다음 VPN을 켜는 등의 행동을 다 생략하고 그냥 켜고 너무 당연하게 아무 조작을 안해도 그냥 인터넷에는 접속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잘한 작업에 신경쓰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인터넷은 돼야 하고 기계는 그냥 켜져야 하며 환경은 항상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내 작업 요구를 즉시 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반드시 셀룰러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왕이면 화면이 밝고 뚜렷하고 또 프레임레이트가 높아야 합니다. 일을 시작하면 잠깐 사이에 끝나지 않습니다. 몇 시간을 바라보고 있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기왕에 그런 기계라면 스크린이 크고 밝고 뚜렷해야 합니다. 거기에 프레임레이트가 높아 화면이 부드럽게 움직인다면 더 좋고요.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기계라 여러 사설수리점에서 취급하는 기계이면 더 좋습니다. 얼마 전에 서피스 프로를 수리하려고 할 때 주변에 애플 기계 수리점이 많은데 비해 서피스를 취급하는 수리점은 거의 없다는 점에 약간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조사에서는 80만원을 내고 상위모델을 구입하라고 권했고 그 상위모델의 시중 가격에 비해 제조사의 저 제안이 나쁘지 않다는 것 또한 알고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설수리점에서 수리를 시도한 결과가 나쁘지 않음을 이미 몇 년에 걸쳐 알고있는 이상 굳이 새 제품을 구입할 필요는 별로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4년 된 서피스 프로는 여전히 잘 돌고 있고 그때 겪던 문제만 해결되면 또 한동안은 그 역할을 다할 수 있었습니다. 제조사의 1~2년 지원은 순식간에 끝나고 그 이후에도 이 기계는 제 작업을 계속해서 서빙할 겁니다. 하지만 기계는 반드시 고장나기 마련이고 제조사의 지원이 끝난 다음에도 비빌 곳이 있어야 합니다.
좋은 카메라가 달려있어야 하고 충분한 소프트웨어 지원이 있어야 합니다.저도 처음에는 태블릿 기계에 카메라가 과연 필요한지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태블릿 기계를 점점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해 결국 사진을 찍게 됐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제가 경험한 거의 모든 태블릿 기계의 사진은 끔찍한 수준이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칠판을 찍기에 시원찮았고 결국 주머니에서 아이폰을 꺼내 사진을 찍은 다음 이를 태블릿 기계로 전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태블릿 자체에 믿을만한 좋은 카메라와 좋은 사진 처리 소프트웨어가 있었다면 그러지 않아도 됐을 겁니다.
스토리지 암호화를 지원해야 합니다. 윈도우도 스토리지 암호화를 지원하지만 윈도우 홈 에디션은 그렇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에 스토리지 암호화는 교양입니다. 나는 숨길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암호화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면 이미 감시당하는 삶에 생각이 완전히 적응한 겁니다. 다시는 감시받지 않는 이전 상태의 사고회로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스토리지가 안전하게 암호화되는 기계라야 편안하게 모든 곳에 들고다닐 수 있게 됩니다. 만약 기계를 잃어버리거나 도난당했다면 기계 자체의 가격에만 억울해하면 됩니다. 그 안에 들어있는 데이터가 노출될 걱정까지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야 더 당당하게 기계를 여러 곳에 들고다니며 비싼 가격을 지불한 만큼 충분히 활용해 그 이상의 가치를 뽑아낼 수 있게 됩니다.
이 요구사항을 늘어놓고 보니 아마도 이번 아이패드를 사도 그리 크게 후회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왕이면 한번 샀으니 이 기계가 더 오랜 기간동안 최신인 상태라면 내 기분이 더 좋겠지만 새 모델이 출시된다고 해서 갑자기 내 기계가 성능이 떨어지거나 하지는 않으니까요. (종종 떨어진다고도 알려져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