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어스샘 4
시리어스샘은 처음 플레이한 때부터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요즘 세상에도 이런 플레이는 흔하지 않습니다. 그 당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딱히 레벨디자인이라고 할 것도 없는 냅따 넓은 레벨에 독특한 메커닉으로 만들어진 각각의 적들이 끝없이, 진짜 말 그대로 끝없이 쏟아져나오는 플레이는 깊히 생각하지 않고 거의 감각에 의지해서 움직이며 총을 쏘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이 플레이는 제게 굉장히 매력적이었고요. 이전에 플레이한 둠 이터널이 이런 감각적인 스타일만으로는 플레이하기 어려운 전략적인 게임으로 바뀐 마당에 시리어스샘 신작은 이전의 경험을 이어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시리어스샘4는 시리어스샘으로써는 괜찮지만 서기 2020년에 출시된 최신 게임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시리어스샘 특유의 있는 듯 없는 듯한 레벨디자인, 처음 본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딱 한 번만 보면 도무지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는 적들, 넓은 레벨에서 전투 밀도가 이렇게까지 높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어처구지없는 게임플레이는 여전합니다. 하지만 지금 나왔다고 보기엔 아무래도 속상한 그래픽, 어처구니없는 BGM 시스템, 요즘 세상엔 아무래도 부끄러운 스토리텔링, 투박한 가이드는 이 프랜차이즈가 앞으로 신작을 더 만들 수 있을지 좀 걱정스럽게 만듭니다.
한편으로는 미래를 기대할만한 부분도 있습니다. 카르카손에서 농기계를 타고 넓은 들판을 가로지르며 몬스터를 수확하는 플레이느 파파모빌레에 타고 지금까지 보던 적들의 스케일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놓고 싸우는 경험은 이번에는 거의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이들이 미래에 시리어스샘의 독특한 경험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게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아쉬운 것은 개발기간이 길어져 게임 곳곳이 서로 다른 시대에 개발된 냄새를 너무 강하게 풍기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 오래 개발한 것 같으면서도 레벨디자인은 투박하고 게임플레이는 다듬어지지 않았습니다. 개발기간이 길어지면 시대가 바뀌며 새로운 게임이 출시되고 이전에 개발해 놓은 부분이 낡아버립니다. 그러면 이어서 만드는 부분은 새로운 시대의 게임플레이를 반영하고 이전 스테이지와 그 다음 스테이지가 꽤 다른 느낌을 주게 됩니다. 이번 시리어스샘이 딱 그랬습니다. 어덯게 보면 각 스테이지가 서로 다른 독특한 게임플레이를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지만 제 촉은 어떤 이유로든 개발기간이 길어져 서로 다른 시대에 개발했을 거라고 예상합니다. 이 결과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게임 트레일러에서 강조하던 무지막지하게 많은 NPC들이 서로 공격을 주고받는 마지막 스테이지는 영상으로 볼 땐 꽤 그럴싸하지만 내가 그 안에 들어가 그들 중 한 명이 되는 순간 게임플레이를 가이드할 장치 하나 없이 그냥 수많은 NPC들 사이에 내박쳐진 느낌이었습니다. 보스를 상대하며 높은 곳에 올라가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NPC들의 거대한 전투장면은 한 5초 동안은 그럴싸하지만 이내 보스의 몸에 매달린 나와는 관계 없는 리얼타임으로 움직이는 비싼 컷씬이 되고 맙니다.
이 프랜차이즈의 신작이 나오면 아마 또 사겠지만 주변에 추천하지는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