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페이는 반드시 실패할 예정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누군가는 역사와 철학에 깊은 인사이트를 가지고 미래를 예상하기도 하는데 때때로 그 예상 대로 다가온 미래 덕분에 여러 기회를 얻기도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그런 수준에 도달하거나 도달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예측을 시도하는 행동 자체가 더 재미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글을 미리 작성해 놓은 다음 실제로 미래가 다가올 때 그 예측이 옳았는지 옳지 않았는지를 미래의 자신이 판단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남북통일에 앞서 애플페이가 한국에 출시됐고 그 동안은 신용카드와 신용카드를 랩핑한 소위 간편결제 서비스와 마그네틱 카드의 동작을 따라한 삼성페이만 있던 세계에 작은 변화를 일으킨 것 같습니다. 사실 애플페이가 갑자기 큰 변화를 일으킬 이유는 별로 없어 보입니다. 이미 신용카드 보급률이 아주 높아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행동이 별로 불편하지 않습니다. 카드 스키밍 같은 범죄가 아예 안 일어나지는 않는 것 같지만 다들 카드 스키밍에 별 걱정을 하지 않는 것 같고요.
가령 주유소에서 주유원 손에 카드를 넘기거나 음식점에서 계산원이 내게서 카드를 아예 가져가 결제한 다음 돌려주거나 5만원 이상 결제를 할 때 서명을 계산원이 대신 하는 행동을 보고 딱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을 보면 카드를 통한 여러 가지 범죄에 별 걱정을 하지 않는 것 같고 내 스스로도 딱히 이런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삼성페이가 이미 애플페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과 거의 같은 편리함을 제공하고 있고 한국은 삼성전자의 단말기 보급률이 굉장히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미 스마트폰 사용자의 절반 이상이 삼성페이를 통해 애플페이와 거의 같은 수준으로 편리한 결제를 하고 있는 이상 애플페이가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해서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재미 있는 점은 카드 회사나 소위 핀테크 회사, 그리고 밴 회사들이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슨 일이 일어난 것처럼 굴고 있다는 점입니다. 방금 설명한 것처럼 애플페이 보급률이 올라간다고 해서 갑자기 무슨 큰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겁니다. 삼성페이는 여전히 지금과 같은 방식을 통해 동작할 것이고 삼성페이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여전히 플라스틱 카드를 계산원 손에 쥐어 주고 서명을 대신 하게 할 텐데 이 과정이 보안 상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아주 불편하지는 않습니다. 삼성페이의 마그네틱 방식 결제 호환성을 유지하면서 스키밍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지만 운이 나쁜 소수의 문제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고 범죄에 노출된 개개인들의 운이 나빴을 뿐 나머지 대다수는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별 문제 없이 그리 불편하지 않은 결제를 계속할 겁니다. 하지만 카드 회사들은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처럼 서로 연합을 해 오픈페이 서비스를 만든다고 발표하고 여기 참여할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들이 나뉘고 있는 것 같아 보이고 이런 상황이 뉴스에 꽤 비중 있게 보도 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이제 미래를 예측할텐데 몇 달이나 몇 년 뒤에 이 예측이 옳았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를 확인해 보면 재미 있을 겁니다.
오픈페이 연합은 결제 시장 변화를 완전히 잘 못 읽은 데다가 연합 스스로가 사용자 경험을 개선을 의지도 없고 그럴 동기도 없으며 그럴 기술도 없기 때문에 시장에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하고 괜한 보도자료나 좀 뿌려 담당 임원의 목을 좀 뻣뻣하게 한 다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종료될 겁니다. 일단 오픈페이는 여러 신용카드 회사들이 모여 간편결제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건데 이 결과를 통해 구축될 새로운 간편결제 시스템이 어떤 모습일지, 기존의 어떤 과정을 대신하게 될 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미 신용카드를 랩핑한 간편결제 서비스가 여럿 있습니다. 삼성페이,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페이코 기타등등입니다. 키오스크에서 결제를 하려고 보면 신용카드를 랩핑한 구조로 동작하는 간편결제 서비스가 이미 굉장히 많이 있고 이들 전부가 거의 비슷한 사용자 경험을 준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중 그나마 삼성페이는 사용자 쪽 단말기를 생산해 사용자 경험 일부를 직접 통제할 수 있지만 나머지 회사들은 하드웨어를 직접 만들지 않아 사용자 경험 통제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픈페이 연합이 잘 동작해 뭔가를 만들어내더라도 결제 과정에서 기존의 여러 간편결제 목록에 버튼 하나를 추가하는 것 이상의 사용자 경험 개선을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오히려 오픈페이는 기존 간편결제 시스템들의 서로 다른 브랜딩과 비교해 기억에 남을 만한 브랜드를 쉽게 만들 수 없어 현금을 동원한 이벤트를 통해 일시적으로 사용자를 모을 수는 있겠지만 이들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는 없을 겁니다.
오픈페이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를 겉으로 보이는 사용 경험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성공적인 사용 경험을 만들 수 없을 겁니다. 아주 먼 옛날 아이폰이 다음달 폰으로 불리던 시대에 국내 단말기 제조사들이 갑작스레 ‘풀 브라우징’에 집중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 바깥에서는 아이폰이 널리 출시되어 애플의 첫 세대 제품이 얼마나 쓰레기 같은지 체험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 출시되지 않은 아이폰과 비슷한 풀 브라우징 경험을 주기 때문에 사실상 아이폰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 없을 거라고 예상한 여러 단말기들이 출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가 알다시피 아이폰의 핵심은 풀 브라우징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첫 아이폰 발표에서 소개한 대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를 직접 통제하는 회사만이 할 수 있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조화를 이룬 사용 경험이 아이폰의 핵심이었습니다. 하지만 몇 년 만에 아이폰이 출시된 다음에도 잘 동작하는 풀 브라우징 경험을 찾던 단말기들이 여전히 시장에 남아 있었고 이런 기계들은 현대에 그 시대를 떠올리게 만드는 아이콘으로나 회자될 뿐입니다.
오픈페이 역시 풀 브라우징과 비슷한 실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유는 애플페이의 컨텍리스 결제 경험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컨텍리스 결제 경험이 정말로 의미 있었다면 삼성페이가 간편결제 시장의 절반을 지배하고 있을 때야 말로 컨텍리스 결제 경험을 개선하기 위해 오픈페이가 나섰을 겁니다. 하지만 컨텍리스 결제 경험 측면에서 보면 삼성페이와 애플페이는 물론 기술적인 근간에 차이가 있지만 결제 경험 자체만 놓고 보면 별 차이가 없습니다. 삼성페이의 핵심은 하드웨어 전체와 소프트웨어 일부를 통제할 수 있는 회사가 하위 호환성을 극도로 중시하는 마이크로소프트와 비슷한 접근을 통해 널리 활용될 수 있는 편리한 결제 경험을 일정 수준 이상의 보안을 달성하며 만들어냈습니다. 애플페이는 기술적 기반이 다르고 또 마이크로소프트 스타일의 하위 호환성 접근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회사가 만들지만 편리한 결제 경험 측면에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완전히 통제하고 이를 바탕으로 신용카드 회사의 정책마저 통제할 수 있는 바탕에서 편리한 결제 경험을 만들었습니다.
반면 오픈페이는 이들 중 그 무엇도 통제할 수 없습니다. 신용카드 회사들은 간편결제 이면의 신용을 발생시키는 오히려 더 근본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이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과는 별개로 편리한 결제 경험을 제공하는 단계에 기여하기 위해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습니다. 이들은 직접 단말기를 만들지도 못하고 단말기에 설치할 결제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하지도 않습니다. 높은 확률로 그저 그런 외주 업체에 의뢰해 만든 소프트웨어는 잘 관리되지 않고 조잡한 인터페이스와 잘 동작하지 않는 사용 경험으로 외면 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소프트웨어 대부분이 비슷한 신세였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마치 ‘풀 브라우징’처럼 ‘컨텍리스’ 자체를 달성할 수는 있겠지만 컨텍리스를 통한 결제 경험 개선, 높은 보안 수준 달성 같은 그 뒤에 있는 목적을 달성할 역량도 없고 관심도 없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오픈페이가 필요한 이유를 고객 관점에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할 겁니다. 오픈페이는 그 스스로 이미 널려 있는 신용카드를 랩핑한 간편결제 서비스와 비교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위에서 잠깐 설명했지만 신용카드 회사가 간편결제 서비스를 직접 수행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신용카드 회사는 근본적으로 결제 과정 중에 담당하는 역할이 다릅니다. 신용카드 회사는 사용자가 직접 체감하는 예쁜 결제 과정보다는 그 뒤에서 일어나는 결제 정보 전달과 신용 발생 같은 보다 근본적인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갑자기 고객과의 접점에 직접 관여하기에는 이미 이 위치에서 오랫동안 압도적인 장점을 가진 플레이어들이 널려 있습니다. 삼성페이나 애플페이는 고사하고 오픈페이는 기존의 신용카드를 랩핑한 간편결제 서비스와 비교한 장점조차 가지기 어렵습니다. 고객 관점에서 카카오페이나 네이버페이 옆에 있게 될 ‘오픈페이’ 버튼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를 결제금액의 5%를 페이백 해 주거나 추첨을 통해 경품을 받을 수 있는 것 이외에 찾을 수 있을까요.
결론. 애플페이가 출기된 이후 자주 보도되는 오픈페이의 모습은 오래 전 풀 브라우징 단말기를 외치던 단말기 제조사들과 별로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신용카드 회사는 결제 과정에서 굉장히 중요하고 근본적인 역할을 담당하지만 사용자의 결제 경험에 직접 개입하는 단계에 개입하기에는 장점이 거의 없습니다. 오픈페이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통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고객 관점에서 이를 사용할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마케팅 관점의 이익 이외에는 제시할 수 없기 때문에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