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러 명일 때 생기는 도전거리
같은 몸을 여러 개 가지고 동시에 서로 다른 일을 하고 싶은 건 한번 쯤 해봤을 만한 상상일 겁니다. 이런 생각의 분야에는 공각기동대라는 걸출한 SF가 있어 이 시리즈를 책이나 영화, 그리고 TV 시리즈 등으로 본 적이 있다면 전뇌화나 의체화, 의체의 복제, 이들이 일반화된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나 철학적인 고찰에 가까이 가 볼 수 있습니다. 저 역시도 그런 사람인데 사람의 정신을 기계에 저장해 몸에 붙일 수 있으면 되게 안전하고 편할 것도 같고 다른 한 편으로는 그러면 사람이라는 존재는 그냥 컴퓨터 프로그램과 딱히 구분할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며 그렇다면 사람이 그토록 자신을 남들과 구분하는 의식이라는 건 무엇인가 싶은 고민에 빠져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번은 미키7이라는 가벼운 SF를 읽었는데 여기서도 정신을 포함한 신체 전체를 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이 특징을 부각할 만한 특수한 상황에서 겪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을 때는 마침 직전에 카리 모라를 읽어 여러 사람이 나오고 구조가 필요 이상으로 복잡한 이야기 때문에 살짝 지쳐 있었는데 마침 이야기 구조가 단순하고 전개가 뻔하며 결말을 예상할 수 있는 단순한 이야기라 쉽게 읽혔습니다. 게다가 평소 관심이 있어 하던 주제여서 주인공이 이런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하기도 해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다만 그 고민의 깊이가 충분하지는 않다고 생각해 쉽고 재미있게 읽었지만 그때까지 하던 신체와 정신의 복제에 대한 고민에 도움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한편 타임라인을 지나가다가 몸이 여러 개였으면 좋겠다는 글을 보고 마침 오후에 슬슬 집중력이 떨어지기 시작할 시간이 된 김에 곧바로 이 주제의 현실적인 측면을 생각해 보기 시작했는데 이 글의 나머지 부분은 이런 주제를 볼 때마다 항상 생각하곤 하는 ‘몸들 사이에 동기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입니다.
일단 기억은 어떻게든 동기화할 수 있다고 치겠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어떤 절차가 필요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공각기동대에서처럼 동기화에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 서로 멀리 떨어져 살며 몇 달에 한 번 서로 만나 기억을 동기화 하는 과정을 거칠지 아니면 꽤 간단히 파일을 복사하는 수준으로도 동기화가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일단 몸이 여러 개가 되면 정신 말고 신체 자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한 몸만 운동을 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몸을 동기화 할 수 있다면 운동하는 몸 하나가 운동을 하고 이를 동기화하면 되겠지만 만약 몸은 동기화할 수 없다면 운동한 몸이 가진 기억을 동기화 해야 할지도 문제입니다. 기억 상으로는 운동 했지만 몸은 운동하지 않은 상태인데 이 차이에 따라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몸이 여러 개인 상황을 인정한다 치겠습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각각이 입는 옷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위 바램에서처럼 몸이 네 개라면 각각이 입는 옷이 평소보다 네 배 속도로 쌓일텐데 그러면 세탁 부하도 최소한 평소의 네 배가 되어야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세탁하는 날 세탁기를 두 번 돌렸다면 이제는 일주일에 몇 번일 지는 모르겠지만 세탁기를 적어도 여덟 번을 돌려야 할 수 있고 이건 각자가 따로 처리하기에는 효율이 떨어지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세탁을 전담하는 몸을 따로 둬서 해결할 수 있겠지만 이 세탁 담당하는 몸이 추가됨에 따라 세탁 업무 부하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생깁니다. 또 이 세탁 담당은 기억을 동기화 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처지에 만족할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몸이 여러 개라면 당연히 먹을 것도 사람 수만큼 필요합니다. 네 명이 있다면 훨씬 많은 식비가 필요하며 세탁 같은 추가 업무를 담당하는 몸이 더 있다면 이에 맞춰 식비가 크게 증가합니다. 비용을 줄일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은데 기억을 빠르게 동기화할 수 있고 기억이 동기화된 상태가 마치 한 사람의 기억처럼 동작한다고 가정하면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 몸 하나를 두고 나머지 몸들은 생존을 위한 식단으로 연명하되 기억을 동기화 해서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은 몸으로부터 나온 기억을 동기화해 똑같이 살아있고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비용을 낮출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나리오를 달성하려면 기억을 선택적으로 동기화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생존을 위한 최소 비용으로 식사를 하는 몸들의 기억은 동기화하지 않고 가능하면 삭제하되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 몸 하나의 기억을 선택해 모두에게 동기화 해야 합니다. 기억의 외부화 및 동기화가 가능하다 하더라도 이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현대 사회에 폰 없이 살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각자가 가질 폰은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요. 서로 다른 번호를 사용해야 할까요? 아니면 국내법상 불법이기는 하지만 심카드를 복제해야 할까요. 만약 심카드를 복제한 폰 여러 대를 각자가 가지고 있다면 모두의 폰에 동시에 전화가 걸려올 때 누가 전화를 받을지 어떻게 결정해야 할까요. 전화를 받기 전에 기억을 동기화 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이동통신사에서 서로 다른 셀타워가 동시에 활성화 되는 것을 보고 심카드가 복제되었음을 눈치채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내 몸이 여러 개일 때 각자가 폰을 사용하는 것은 꽤 위험할 수 있습니다.
기억을 동기화 한다면 잠 잔 기록을 동기화할 수 있을까요? 가령 잠은 한 명이 잔 다음 자고 난 다음의 상태를 모두가 동기화 하면 모두의 뇌 혹은 전뇌가 잠 잔 상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만약 가능하다면 잠은 한 번에 한 명만 자면 됩니다. 혹은 잠자기 전용 몸을 따로 두고 이 몸은 규칙적인 수면과 휴식을 취합니다. 앞에서 잠깐 이야기한 몸을 동기화할 수 있다면 충분한 휴식을 취한 몸도 동기화할 수 있어 나머지는 잠을 자는 시간을 사용하지 않아도 됩니다. 한편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세탁하는 몸 외에도 잠 자는 몸이 추가로 필요하기 때문에 이를 관리하는 부담은 늘어날 겁니다.
잠을 어떻게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샤워는 따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근데 근본적으로 모두 같은 사람이니 그냥 한 번에 여러 사람이 들어가 샤워해 시간을 단축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화장실은 어쩔 수 없어 보입니다. 먹는 건 기억을 통해 어떻게 할 수 있다지만 화장실은 따로 가야 할 테고 그러면 사람 수에 맞는 화장실이 필요할 겁니다. 잠 자는 문제를 생각하기 전에는 몸이 여러 개일 때 잠을 위해 잠 자는 공간이 사람 수만큼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잠 자는 문제를 동기화를 통해 해결하면 잠 자는 공간은 하나만 필요하지만 화장실은 여전히 여러 개 필요합니다.
한편 글 쓰는 사람, 게임 하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이 서로 동시에 작업하려면 각자 서로 다른 컴퓨터가 필요할 겁니다. 식료품비를 어떻게 줄이긴 했는데 기계값과 전기요금을 줄이기는 어려울 것 같아 보입니다. 침대값은 잠 잔 기억을 동기화 해서 줄였고 식료품비도 선택적 기억 동기화를 통해 줄였지만 여전히 씻고 싸는데 추가로 드는 비용, 그리고 각자가 실제 각자 몸의 존재 이유인 작업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줄이는 것도 아직 까지는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각자의 샤워에 추가로 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샤워는 한 사람만 하고 나머지는 샤워한 사람의 기억을 동기화하는 방법을 생각해봤는데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한편 동기화 범위를 정신에서 신체로 확장한 다음에 생각해보니 공각기동대 극장판 1편 시작할 때 소령이 자고 일어나는 장면은 사실 불필요한 것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잠 자는 건 뇌를 축소해 뇌 사이사이로 림프액이 들어가 뇌를 세척하는 과정으로 알려져 있는데 전뇌는 그런 작업을 할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잠 잘 필요가 없는 건데 왜 자고 일어나는 장면이 있는 걸까요. 또 공각기동대 TV 시리즈 어딘가에서는 바토가 의체화한 사람에게는 필요 없는 운동기구를 사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운동기구는 기호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잠은 필요의 영역에 해당할 것 같은데 정말 잠 안 자도 되는 것 아닐까요?
그건 그렇고 여러 몸 중 누군가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병원에 간다 칩시다. 그러면 그 아픈 기억은 동기화 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안 하는 것이 좋을까요. 또 몸 수가 늘어난 만큼 아플 가능성이 올라가 병원을 각자가 찾게 될 텐데 그러면 의료보험공단으로부터 요주 인물로 찍힐 수 있지 않을까요? 또 우리들 중 하나가 죽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살인이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사체를 유기하는 것은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일단 정상적으로 경찰관 입회 하에 사망 신고를 하고 정상적인 사체 처리 과정을 거친 다음 부활신고서를 작성해야 하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분명 귀찮은 일일 겁니다.
또 동기화는 실시간이어야 할까 아니면 일정 시간마다 해야 할까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일단 실시간이면 엄청나게 혼란스러울 것 같기는 합니다. 가령 게임 하는 사람과 글 쓰는 사람이 실시간으로 동기화 하면 이건 글 쓰는 것도 아니고 게임 하는 것도 아니게 될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런 몸이 여러 개라면 실시간 동기화는 더 어려울 겁니다. 특정 액티비티가 끝날 때마다 각자가 원본에 동기화 하도록 하는 편이 나아 보입니다. 그러면 각자는 한 시점에는 서로 기억이 다르지만 각각의 액티비티가 끝날 때마다 나머지와 동기화 해 서로 적당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고 이 정도 수준이 각자의 집중을 위해 적당할 것 같습니다.
만약 우리들 중 두 명 이상이 각기 다른 직장에 취직하면 이 상태는 겸직 제한 위반일까 아닐까요? 또 각자가 동기화 하면 각 회사의 보안 서약 위반일까 아닐까요. 보안 서약은 내가 아닌 대상에 대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복제된 대상에도 적용되는 것일까요. 등등등.
이런 현실적인 고민을 하다 보니 내 몸이 여러개일 때 이들을 원만하게 관리하려면 계획을 잘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