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PvP를 만들기 위한 고민
모두가 온갖 이유로 게임에 PvP를 넣고 싶어합니다. PvP를 넣을 때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성장구간에서 캐릭터 간 상호작용을 최소화하는 추세이다 보니 실컷 MMO를 만들었지만 지속적으로 컨텐츠를 제공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PvP는 이런 상황을 돌파할 좋은 방법입니다. 평소에는 캐릭터 간 상호작용이 거의 허용되지 않지만 PvP는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껏 상호작용을 일으키고 전통적인 MMO에서 일어나던 여러 상황이 일어나 게임이 MMO 답게 동작하기 시작합니다.
개발팀이 컨텐츠를 상대적으로 덜 빠르게 공급해도 게임이 자생하기 시작합니다. MMO 게임에서 캐릭터 간의 강한 상호작용은 현대 MMO들이 고민하는 여러 장치를 필요 없게 만듭니다. 가령 커뮤니티 시스템과 강력한 채팅, 숙제, 이벤트 같은 장치들로 부족한 상호작용을 만들어내지 않아도 됩니다. 게임 스스로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냅니다. 이름이 이벤트인 사실상 업적 달성의 필요성이 줄어듭니다. 현대에는 이런 이벤트가 지속적으로 집행되지 않으면 게임이 죽어간다고 인식하는 고객들이 있기 때문에 필요 없다고 해서 이벤트를 안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벤트가 항상 유효한 보상을 제공하도록 만들기 위한 노력은 덜 해도 됩니다.
물론 유효한 PvP를 만드는 일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PvP를 고려하지 않고 개발하면 후반에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개발한 모든 스킬 효과들이 PvE만 고려한 나머지 PvP에 그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스포츠 PvP 모드를 개발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MMO-RPG의 RPG는 성장 경험을 요구합니다. 스포츠 PvP는 성장 경험을 주지 못해 인기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PvP 전용 스킬과 밸런스를 별도로 개발하기도 합니다. 성장구간에서 경험한 PvE 플레이와 PvP 플레이 경험이 완전히 달라 적응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PvP를 부스트 하기 위해 전용 보상을 제공하면 고객 이탈의 원인이 됩니다. 성장구간을 새로운 PvP 밸런스 기반으로 재개발하면 이전에 개발한 게임을 뒤집어 엎게 됩니다. 겉보기에는 똑같은데 왜 개발이 몇 달씩 지연되는지 경영진에게 설명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이 과정을 돌파해 PvP를 넣어도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MMO 게임은 싱글플레이에 비해 개발 비용이 높은 편입니다. 물론 현대에 이 생각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어지간한 MMO 장르보다 비용이 높은 싱글플레이나 유사 멀티플레이 장르 게임이 있습니다. MMO 개발 비용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전통적인 믿음에 근거해 이야기를 계속하면 개발비용이 높기 때문에 대부분 백화점 식으로 개발하게 됩니다. 특정 유형의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개발 계획은 경영진을 설득하기 어렵습니다.
백화점식 MMO에 PvP를 반드시 넣어야 하는 상황이 되는데 게임은 PvP를 선호하는 고객과 그렇지 않은 고객이 섞이게 되어 이들을 구분해야만 합니다. PvP를 선호하지 않는 고객이 예상하지 않은 시점에 죽음을 경험하면 영원히 이탈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PvP를 스포츠 타입으로만 개발하거나 완전히 격리된 형태로 만들면 PvP를 선호하는 고객들 입장에서 재미가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멍석을 깔아 놓고 하는 PvP는 PvP가 주는 긴장감을 없애버립니다. 리니지 스타일의 필드막피가 재미있는 이유입니다.
PvP 선호 고객과 비선호 고객을 같은 게임에서 서로 격리하되 분위기를 깨지 않을 방법이 필요합니다. 리니지 스타일의 필드막피를 그대로 복제하기는 어렵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백화점식으로 만들어 놓고 PvE 선호 고객을 이탈 시킬 수는 없습니다. 보상 기반의 접근을 하기도 합니다. PvP 가능한 필드를 구분한 다음 높은 보상을 지급하는 방식인데요, 높은 보상을 원하면 위험을 감수하게 하는 겁니다. 하지만 위험에 비해 높은 보상을 책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중간한 보상을 눈치챈 고객들은 그냥 안전한 필드에서 사냥하며 시간을 투입하는 전략을 선택합니다. PvP를 선호하는 고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한된 필드는 긴장감을 떨어뜨립니다. GTA에서 살인이 허용되는 별도 지역이 있다면 재미가 떨어질 겁니다.
모든 필드에서 PvP를 지원하되 게임에 충분히 익숙할 것으로 예상되는 특정 레벨 이상이 PvP에 참여하도록 하기도 하는데 고객들이 특정 레벨에 도달하면 게임을 그만 두거나 특정 레벨에 도달하지 않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특정 레벨 이후의 과금유도장치들이 잘 동작하지 않게 됩니다. 때로는 모든 필드에서 PvP를 허용하되 PvP를 선언하도록 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와 비슷한 이유로 긴장감을 떨어뜨립니다. PvP를 선언한 캐릭터를 찾아 다녀야 합니다. 서로 조용히 다가가 ‘S세요?’ 하고 물어봐야 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고 맙니다.
PvP를 특정 채널로 모아 놓기도 합니다. 이 방법은 위에 이야기한 모든 문제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지만 단순합니다. 다른 채널로 이동하기만 하면 되니 PvP 의사를 쉽고 명시적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일단 채널에 진입하면 리니지 스타일의 필드막피가 똑같이 동작합니다. 다른 채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리니지와 비슷한 재미가 있습니다. PvP를 원하지 않으면 그냥 다른 채널로 이동하면 됩니다. 똑같은 게임으로 PvE 선호 플레이를 똑같이 할 수 있습니다. 재접속 때 채널 선택을 유지해주면 같은 게임으로 완전히 다른 플레이를 원하느 고객들을 손쉽게 격리할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이 방법이 발전적인 방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개발비용을 통제해 어느 한 쪽 고객만을 받는 MMO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경영진에게 백화점의 일부 기능을 생략하고 특정 고객만 받는 전략을 납득 시킬 방법을 고안해야 할 겁니다. 다만 아직 그럴 방법을 못 찾았기 때문에 한동안은 싸고 이해하기 쉬운 채널 구분 방식이 유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