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테스트 동안 득템하는 느낌을 줄 수 있을까?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MMO 개발팀에서 가장 불쌍한 두 가지 직군이 있다고 말하곤 합니다. 하나는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하는데 연관된 모든 사람들입니다. 게임 소프트웨어를 만들다 보면 인터페이스를 설계하는 사람들과 인터페이스 에셋을 만드는 사람들, 그리고 이를 실제 게임 상에 구현하는 사람들로 구분되곤 합니다. 다른 업계에서는 이를 모두 한 직군이 담당하거나 설계와 에셋 제작을 한 직군이, 이를 구현하는 일을 다른 직군이 할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한때 게임 업계에서도 비슷한 체계를 사용했는데 모바일 게임을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하면서 게임의 여러 구성요소가 인터페이스 모양으로 만들어지면서 설계해야 할 인터페이스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인터페이스를 설계하는 직군과 이에 기반해 에셋을 제작할 직군을 구분하지 않고서는 물량을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인터페이스 제작에 관련된 직군이 불쌍한 이유는 인터페이스야말로 게임의 최전방에 노출되며 고객이 게임을 만져볼 때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부분이므로 개발팀 내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온갖 의견을 제시하는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밸런스를 책임지는 모든 사람들입니다. 밸런스는 아주 광범위한데 대략 게임의 여러 구성요소들이 의도에 맞게 동작하면서도 고객들을 화나게 하지 않고 또 고객들에게 적당한 수준의 경험을 주는데 관여하는 모든 숫자들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종종 전투 밸런스로 정의되는 분야에서는 MMO 게임에서 서로 다른 클래스가 단위 시간 당 어느 정도 효율을 낼 수 있는지를 결정하고 이 정의에 맞도록 게임의 다른 컨텐츠의 숫자를 설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초반에는 약한 몬스터가 나타나고 뒤로 갈수록 강한 몬스터가 나타나도록 하는 것 역시 또 다른 밸런스 디자이너의 역할입니다. 또 별 생각 없이 돌던 던전 역시 던전 클리어에 걸리는 시간 대비 보상을 적절하게 조절해야 하고 만약 던전 입장에 입장권 같은 별도 비용을 지불하도록 만들었다면 입장권의 가치와 던전 플레이에 투입한 시간에 근거한 합당한 보상을 주도록 설정하는 것 역시 밸런스 디자인의 역할입니다. 나아가 미래에는 상점에서 구입한 패키지 아이템의 주요 구성품들이 기존 인게임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에 비해 어느 정도 효율을 내야 하는지 결정하고 또 이 효율이 상점에서 물건을 구입하지 않은 다른 고객들과 비교해 그들을 화나지 않게 만드는 수준으로 조절하는 일 역시 이들의 역할입니다. 문제는 인터페이스가 최전방에 위치한다면 밸런스는 게임 전체에 걸쳐 마치 공기처럼 존재하고 있어 뭔가 긍정적이지 않은 경험을 하면 일단 밸런스 담당자를 탓하게 되는 것입니다.
밸런스 담당자가 의도를 가지고 게임의 첫 번째 허들을 만들었다고 해 봅시다. 기존에는 그저 퀘스트를 따라가며 성장을 겪다 보면 아주 자연스럽게 다음 퀘스트로 진행할 수 있었는데 어떤 던전 보스는 이보다 훨씬 강해 도통 클리어 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합니다. 밸런스 디자이너의 의도는 이 때 처음으로 대장간에 가서 게임의 성장 시스템 중 하나인 무기 강화를 해 더 강해진 다음 던전 보스를 공략하라는 것이었고 게임은 그에 맞춰 완벽하게 동작하고 있습니다. 캐릭터 정보 화면을 열어 보면 이미 무기에 빨간점이 찍혀 있어 눌러보면 대장간에 가라고 알려주고 심지어 모바일 게임이어서 버튼을 터치하면 대장간까지 자동으로 이동할 참이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팀에서 게임을 테스트하던 누군가가 무기 강화 없이 보스에 도전했다가 자기 캐릭터가 바닥에 누워 보스로부터 조롱 받는 모습을 보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확인하기 전에 일단 밸런스 디자이너를 찾고 보게 됩니다. 만약 이 분이 팀에서 목소리를 좀 낼 수 있는 분이라면 밸런스 디자이너는 아주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그 분께 이 상황은 의도에 따른 동작이며 이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지금 저기 빨간 점이 떠 있는 무기를 터치해 대장간으로 이동한 다음 무기를 강화하고 돌아오면 클리어 할 수 있을 거라고 설명해도 웬만해선 말이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 분들의 주장 역시 일리가 아예 없지는 않은데 예고 없이 자기 캐릭터가 차가운 던전 바닥에 누웠으니 이는 밸런스가 잘못 되었다고 판단하고 있고 이는 평범한 고객들의 시각과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대에 인터페이스 관련 직군은 그 중요함을 인정 받아 더 많은 인력을 뽑을 수 있고 또 팀에서 더 높은 지위를 획득해 가고 있지만 밸런스 디자이너들은 아직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는 인터페이스가 겉으로 드러나 직접 만져볼 수 있는데 비해 밸런스는 마치 공기처럼 모든 곳에 존재하지만 그 실체를 시각적으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새로운 캐릭터를 투입하거나 기존 캐릭터에 새로운 스킬을 추가하거나 또 던전을 만들며 그 안에 등장할 몬스터들의 공격력을 설정하고 보스의 전투 패턴과 각 패턴의 대미지 따위를 설계하며 상점에서 판매하는 물건들의 가격을 조정하고 각 강화 단계마다 필요한 비용 대비 증가하는 효과를 설정하는 그 모든 과정에 밸런스 디자이너의 개입이 필요하지만 정작 이 모든 것들이 완성되어도 밸런스 디자이너는 그 최종 결과물이 빛나는 그 순간에 초대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산수, 통계학 따위에 지식과 감각이 필요하고 동시에 게임 플레이를 숫자로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므로 이제 가장 훌륭한 사람들은 떠나고 없는 성숙기에 접어든 시장에서 이런 사람을 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구인 공고를 살펴보면 밸런스 디자이너를 찾는 프로젝트는 많지만 정작 구인에 성공하는 프로젝트는 많지 않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설명한 대로 밸런스 디자이너는 그 역할에 비해 저평가 되어 있고 또 업무 난이도 역시 높아 쉽게 밸런스 디자이너를 하겠다고 손 들 용기를 내기 쉽지 않습니다.
결국 팀에 숫자에 감각이 있는 사람들을 차출해 밸런스 디자인 업무에 투입해 바닥부터 업무 경력을 쌓게 만들거나 시스템 디자이너를 채용한다고 한 다음 조금씩 밸런스 디자인 업무를 밀어 넣는 약간의 의도적인 사기에 가까운 행동을 통해 팀 내에서 밸런스 디자이너를 육성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시스템 디자이너는 종종 그들의 산수 성적과는 별개로 숫자에 감각이 있을 때가 종종 있고 또 논리적으로 말하고 생각하는 습관을 가진 경우가 많아 이들을 슬쩍 밸런스 디자이너로 전직 시키는 모험을 감행하더라도 이 시도가 성공하곤 합니다. 지금도 밸런스 디자이너를 구할 생각을 하고 있고 또 정식으로 공고를 올리기 전에 주변의 네트워크를 통해 적당한 사람을 찾아보고 있지만 늘 그렇듯 단번에 생각나는 가장 괜찮은 사람들은 이미 각자의 프로젝트에 고용되어 일하는 중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추천을 할지 말지 고민하게 만듭니다. 그렇다고 팀 내에서 밸런스 디자이너를 육성하자니 그 사람이 이전에 담당하고 있던 업무에 공백이 생기고 그 자리를 다시 다른 사람으로 채우기에도 비용이 높고 또 앞에 설명한 약간의 기만을 통해 밸런스 디자인 업무를 할 거라고 예상하지 않고 입사한 분을 밸런스 디자이너로 육성하는 일 역시 종종 성공하기는 하지만 이 과정은 결코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단 명시적인 밸런스 디자이너가 없는 상태에서 프로젝트 구성원 전체를 대상으로 한 테스트를 준비하면서 우리들이 밸런스 디자이너를 대신해 게임의 각 부분에 의도를 부여하고 의도에 맞는 숫자 뭉치를 설계하며 이들을 실제 집행해야 하는 상황에 처합니다.
이전에 여러 다른 프로젝트에서 큰 테스트를 준비할 때 받는 요구 중 하나는 테스트 도중 내부 고객들에게 득템의 재미를 줄 수 있는 밸런스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괴물과 맞서 싸워 보상으로 아이템을 얻고 이를 통해 강해져 더 강한 괴물과 맞서 싸우기를 반복하는 게임에서 득템은 게임이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경험 중 가장 중요한 경험입니다. 득템은 곧 나 자신의 성장을 의미하고 나 자신의 성장은 게임의 더 많은 괴물과 싸울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하며 내가 지금까지 게임에 쏟아 부은 시간과 열정을 게임이 인정해 주는 이벤트이기도 합니다. 이 득템의 순간은 실제 아이템을 장착하거나 강화에 사용해 그 효과를 얻기 전이라도 그 순간이 주는 감정이 대단하기 때문에 왜 자동획득 옵션에 전설템이 없나요?에 설명한 것처럼 나머지 순간들과는 구분해 특별한 경험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다만 아직 게임을 개발 중인 우리들은 그런 경험을 줄 재료가 충분하지 않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상황에서도 프로젝트 구성원 전체를 대상으로 한 테스트를 수행해야 하고 그런 상황에서도 득템의 재미를 줄 수 있도록 만들라는 요구를 받아 뭐라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합니다. 그런데 아직 개발 중인 게임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개발해 놓은 기능 범위 안에서 이 목표를 달성하기는 정말이지 쉽지 않습니다.
장비를 파밍해 성장하는 게임에서 득템의 감정은 이미 고객이 여러 가지를 알고 있다는 전제 하게 성립합니다. 일단 고객은 게임 상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더 강해지며 더 강해질 때 앞으로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캐릭터 레벨이 오르면 알아서 강해져 다음 사냥터로 이동해 게임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즉 레벨업 자체가 강해짐과 같은 의미여서 고객이 알아야 할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레벨업 사이의 기나긴 시간 동안 고객들에게 성장 경험을 줄 다양한 방법이 필요하며 이를 성공적으로 게임에 실행하면 고객들이 지속적으로 다양한 방법을 통해 성장 경험을 반복하며 게임에 더 오래 머물고 또 더 만족스러운 경험을 하게 할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전 시대에는 그저 레벨업과 바로 장착할 수 있는 장비를 파밍하는 수준으로 성장 경험을 설계했다면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성장 행위 자체를 자동에서 수동으로 바꾸고 또 레벨업 중심의 계단식 성장 위주에서 계단 성장, 선형 성장, 그리고 비효율 성장으로 구분해 각각을 서로 다른 방법을 통해 직접 조작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가령 이전 시대에 레벨업을 하면 알아서 주요 스테이터스가 올라가 바로 더 강해졌지만 지금은 스테이터스를 직접 올리도록 만들고 이를 올리지 않으면 레벨은 올랐지만 실제로는 강해지지 않는 상태에 머무르게 만들고 또 무기 강화 재료를 득템했더라도 직접 마을의 대장간에 찾아가 무기를 강화해야만 강해지도록 만들어 고객이 직접 강해지는 순간을 명시적으로 맞이하도록 했습니다.
이는 곧 득템의 재미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고객들이 무엇을 해야 강해지며 득템할 때 이 득템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고 있을 때 비로소 득템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위에서 무기 강화를 목적으로 한 허들을 의도적으로 배치할 때 무기 강화의 필요를 인지하지 못한 내부 고객이 밸런스에 문제를 제기한 사례와 비슷하게 만약 고객이 잘 드랍 되지 않는 귀한 강화 재료를 먹었을 때 이 순간이 기쁜 경험이 되려면 기 재료가 얼마나 귀하고 또 어디에 사용하는지 이미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느 잡템을 먹은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경험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무기를 장착한 채로 전투하면 무기 경험치가 오르고 경험치가 가득 차면 재료를 투입해 다음 레벨로 올리도록 만들어 지식이 필요한 이전의 계단 성장과 비슷하지만 그 사이 구간을 경험치가 차는 방식의 시각적 선형성적으로 바꾸기도 하고 또 이전 같으면 대장간에서만 할 수 있었던 강화를 강화 재료를 먹으면 인벤토리에서 바로 강화 할 수 있도록 바꾸기도 했습니다. 어느 방법이 더 올바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게임이 온갖 시도를 하고 각각이 시행착오에 의한 교훈을 얻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목표로 한 모든 기능을 갖추고 출시한 다음에도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마당에 아직 필요한 기능 대부분이 개발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득템의 재미를 줘야 하는 요구를 받아 이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 업무는 앞에서 설명한 대로 처음부터 밸런스 디자인을 할 거라고 예상하지 않은 주니어 디자이너님께 할당되었는데 이 작업을 진행해 가는 모습을 보니 그냥 등 뒤에서 머리 위를 바라보기만 해도 고통이 머리 위로 스멀스멀 기어오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정된 기능, 한정된 테스트 시간, 그러면서도 실제 고객과 흡사하게 행동하는 프로젝트 구성원들. 이런 상황 속에서 득템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적당한 시점마다 더 강한 무기를 드랍하고 또 성장 재료를 드랍 하며 정식 출시된 게임에 어울릴 밸런스를 설계하고 있었지만 과연 고객들이 이 드랍 아이템들의 의미를 이해할지, 또 올바른 시점에 명시적인 성장 행동 - 가령 강화 - 을 통해 성장을 해낼 수 있을지, 이를 제대로 가이드 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습니다. 튜토리얼을 통해 무기 강화나 레벨업 같은 메커닉을 가르치려고 해도 아직 튜토리얼 기능은 존재하지 않으며 튜토리얼 기능이 있다 하더라도 실제 고객처럼 행동하는 내부 고객들은 실제 고객들과 마찬가지로 튜토리얼을 완전히 무시하고 자기 캐릭터가 보스 앞에서 차가운 던전 바닥에 누우면 바로 밸런스 디자이너를 탓할 것이 뻔합니다. 이 문제 뿐 아니라 밸런스 카테고리에 포함된 온갖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일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모른 상태로 달려들었다가 만신창이가 되어 가고 있는 주니어님을 그대로 뒀다가는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 같아 제 방식의 무식한 해결 방법을 제시하기로 합니다.
일단 우리는 이미 출시된 게임과 비교해 고객들에게 성장 경험을 주고 또 득템의 재미를 부여하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장치가 아예 존재하지 않으며 이 사실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우리들이 무슨 맥가이버도 아니고 이렇게 제한된 상황에서도 실제 출시된 게임과 비슷한 수준의 경험과 재미를 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고든 램지가 와도 냉장고에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소리 지르는 일 밖에 없을 거고 우리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들이 고든 램지처럼 소리를 질렀다간 인사팀에 불려가 무서운 분들과 마주할 수도 있으니 뭔가 방법을 찾기는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고객들이 한정된 시간과 한정된 기능에 기반한 게임으로부터 성장의 필요성과 방법을 올바르게 인지할 수 있을지 부터 생각해야 하는데 냉정하게 내부 고객들에게 이를 제한된 시간 안에 주입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특히 현대 MMO 게임은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이후 아주 많은 부분을 퀘스트에 기반해 가이드 받는데 퀘스트는 다른 부서에서 만들고 있어 퀘스트를 통해 고객들에게 이런 정보를 의도에 맞춰 주입하기는 아주 어렵습니다. 퀘스트 보상을 우리가 설정할 수는 있겠지만 퀘스트 내용을 내부 고객들에게 득템의 즐거움을 느끼는데 필요한 정보로 채우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일단 고객들은 한정된 테스트 시간 동안 퀘스트를 따라 가며 전투 경험을 할텐데 이 상황 속에서 고객들을 학습 시키지 않고서도 득템 했다는 기쁨을 느낄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상황에서 우리는 고객들이 우리들과 같은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사실로부터 힌트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몬스터가 드랍한 처음 보는 ‘빛나는 가루’가 무기를 강화하기 위한 중요한 아이템이라는 사실을 고객들에게 게임 속에서 아직 개발되지 않은 기능에 기반해 학습 시키기는 어렵지만 이미 현실에서 귀금속이나 현금이 값어치 있는 물건이라는 사실은 질리도록 학습한 상태일 겁니다. 만약 이들이 돈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학습하지 않았다면 아마 회사에서 일하지도 않고 있을 테니 확실히 현금, 금괴, 금화 같은 물건들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가정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테스트 빌드에서 실현 가능한 득템의 재미는 ‘빛나는 가루’를 낮은 확률로 드랍 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실제 세계에서 학습한 맥락에 기반해 게임 상에서 비슷한 것을 드랍하는 것입니다. 빛나는 가루는 인게임에서 강화하는데 사용할 수 있지만 이는 그저 머나먼 수직 성장의 일부라는 사실을 내부 고객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물론 더 강해질 수 있겠지만 내부 고객들이 테스트로부터 득템의 기쁨을 느끼게 만들기에는 부족하며 우리들 스스로도 이 사실을 알기에 이 요구를 수행하는데 커다란 고통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골드는 아직 상점도 없는 인게임에 거의 쓸모가 없지만 대량의 골드가 드랍되는 모습을 보면 실제 세계의 맥락의 연장에서 이거야말로 득템의 기쁨을 줄 수 있는 방법입니다.
말이 길었는데 득템은 두 가지 방법을 함께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수직 성장의 일부를 미리 체험해볼 수 있도록 캐릭터, 무기, 장비 따위를 성장 시키기 위한 장비 자체의 드랍, 이들을 강화하기 위한 강화 재료 드랍을 의도에 맞게, 그리고 퀘스트 시점에 맞게 배치해 게임이 요구하는 만큼 캐릭터가 서서히, 그리고 명시적으로 강해지도록 합니다. 이런 형태는 근미래에 숫자 상으로는 분명 강해지고 있지만 캐릭터가 위치한 필드 자체가 더 높은 강함을 요구함으로써 성장 감각을 너무뜨리도록 동작하며 이는 별도의 방법으로 해결해야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될 때 해 보겠습니다. 이것 만으로도 게임에 지식이 있는 내부 고객들은 분명 득템의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나머지 내부 고객들을 목표로 한 장치 역시 준비하는데 이는 인게임에 아직 큰 쓸모는 없지만 대량의 골드를 화끈하게 드랍하는 것입니다. 아직 쓸모는 없고 이 골드가 아직 강함에 영향을 줄 별다른 방법은 없지만 몬스터가 쓰러지며 돈을 화끈하게 토해내는 모습을 보면 수직 성장이고 뭐고 이 장면을 보고 즐거워하지 않을 고객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물론 그 돈이 쓸모 없다는 사실을 알면 조금 실망하겠지만요.
이런 경험을 잘 만들어낸 메커닉에는 마비노기의 휴즈 럭키 피니시가 있습니다. 캐릭터의 스테이터스에 따라 확률이 조절되는데 몬스터의 막타를 칠 때 낮은 확률로 발생하며 평소 몬스터가 드랍하던 골드 뭉치의 몇 배를 한 방에 드랍합니다. 사실 이 때 몬스터가 골드를 아무리 많이 드랍해도 확률 자체가 낮아 전체 게임에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지만 그 특유의 효과음가 함께 바닥에 골드가 수북이 쌓이는 모습을 보면 그 액수가 얼마이든 꽤 좋은 감정을 줍니다. 운이 좋아 골드를 많이 드랍하는 몬스터의 막타를 칠 때 휴즈 럭키 피니시가 뜨면 더 기쁘고 또 지나가다가 약한 몬스터를 툭 쳤는데 휴즈 럭키 피니시가 뜨면 웃픈 상황이 되곤 했습니다. 이건 현대의 명시적인 성장 방식과 이에 필요한 드랍 아이템을 몰라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득템의 재미를 훌륭하게 구현한 사례입니다.
이렇게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과연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른지 장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만 아직 기능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고객들에게 성장이나 득템의 재미를 주기는 아주 어려우며 특히 득템의 재미는 고객들이 이미 게임이 요구하는 성장 시스템을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여야만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불가능한 문제를 붙들고 한없이 고통 받기를 반복하다가 밸런스 디자이너는 내 갈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포기하지 않기 위해 이런 점들을 염두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