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 중량보다 더 무겁게 들면 천천히라도 움직이도록
아침에 일어나 폰을 집어 들어 보니 스팀 봄 세일 메일이 와 있었습니다. 이미 스팀 앱으로부터 노티피케이션이 와 있었기에 봄 세일을 한다는 사실을 메일을 열기 전에 알고 있었는데 메일에는 어떤 게임들이 할인하고 있는지 대략 나타나 있다는 점이 달랐습니다. 잠이 덜 깬 채 링크를 터치하자 스팀 앱으로 연결되었는데 이번에는 이번 세일에 할인하는 게임 목록을 계속해서 스크롤 해봤고 그 안에서 바로 얼마 전 구입해 플레이 하기 시작한 팰월드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얼리 액세스 단계로 공개된 게임이어서 여느 풀 프라이스 게임의 반 값 정도로 책정되어 이미 그 가격 역시 비싸지 않은 수준이었지만 얼마 전에 구입한 게임이 봄 세일에 포함되어 할인 중인 것을 보니 아주 조금 착찹한 기분이 듭니다. 이 할인 폭 정도면 밥 한 끼 정도는 먹을 수 있었을텐데요. 하지만 그 돈 만큼 개발팀에 조금 더 지불되어 이들이 게임을 계속해서 발전 시킬 동력이 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한창 팰월드를 플레이 하고 있습니다. 실은 한바탕 팰월드 유행이 지난 다음에야 이 게임의 존재를 알게 됐고 이로부터 한동안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구입해 지금은 거의 아무도 플레이 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가족과 데디케이트 서버를 열어 조용히 플레이 하고 있습니다. 데디케이트 서버를 열 때는 관심 있어 하시던 분들 대부분도 게임에 대한 인기가 사그러들자 함께 플레이도 시들해져 24시간 돌아가는 서버에 항상 띄워져 아무도 오지 않는 세계에서도 팰들이 계속해서 자원을 모으고 있고 어쩌다 한 번 씩 사람들이 나타나 플레이 하기를 반복하는 상태가 됩니다. 아마 이 글을 쓰는 어느 토요일 밤에도 가족과 함께 팰월드를 플레이 하게 될 것 같은데 그 때를 대비해서 얼른 글을 마무리 지어야 즐거운 멀티플레이 경험을 뒤로 미루지 않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스팀을 통해 배포되는 데디케이트 서버를 직접 구동할 생각이었는데 온프레미스 서버가 맥미니인데 배포된 서버는 윈도우 실행파일이어서 데디케이트 서버를 돌릴 수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팰월드 데디케이트 서버를 도커로 예쁘게 포장해 배포하고 있었고 이를 사용해 손쉽게 맥미니 서버에 팰월드 서버를 돌릴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자동 업데이트, 크래시 될 때 재시작 같은 기초적인 운영 기능을 포함하고 있어 가끔 서버가 크래시 되더라도 알아서 재시작 되고 또 아무도 접속해 있지 않을 때 업데이트가 있으면 알아서 적용되어 그냥 띄워 놓기만 하면 되어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한편 팰월드를 플레이 하며 게임을 만드는 동안 계속해서 떨어진 자신감이 아주 조금 회복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는 전에 실패할 수 없는 목표와 어쩔 수 없는 개발에 가볍게 소개했는데 우리들이 개발하다가 종종 아주 작은 기능 하나에 엄청나게 민감하게 굴며 여러 사람들을 고통 받게 만들어 결국 그럭저럭 괜찮게 돌아가는 결과를 내기는 하지만 결과에 비해 우리들이 들인 시간과 노력, 이 과정에서 소모된 정신력 따위를 감안할 때 그리 좋은 개발 방법이 아닐 수 있고 팰월드처럼 일단 미션 크리티컬 하지 않은 부분은 마치 쿨한 길찾기 궤적처럼 적당히 넘어가더라도 아무도 깨닫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팰월드는 게임이 동작하기는 하지만 곳곳에 미래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이상한 밸런스, 다듬어지지 않은 기능, 서로 다른 시점에 만들어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 플레이 요소들이 부대찌개처럼 마구 뒤섞여 있고 이들을 아우르는 인터페이스는 한없이 조잡해 아주 사소한 버튼 위치 하나 가지고 한 시간 동안 이야기 해야 하는 바퀴벌레 같은 회의 경험을 떠올리다가 우리는 왜 이렇게 쿨하지 못할까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습니다. 이런 여러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게임을 공개했고 고객들을 만났으며 고객들은 게걸스럽게 컨텐츠를 모두 먹어 치웠지만 이 게임이 미래에 분명한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플레이 하며 느낀 ‘이거 나중에 어쩌려고 이렇게 만들었지?’ 싶은 부분들을 분명 이들도 모르지 않을 테고 시간이 지나며 수정될텐데 이런 상태로 얼리 액세스 단계에 진입해 성과를 내는 모습을 보며 우리도 이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조금 회복됩니다.
이 게임이 한참 널리 유행할 때 바로 뛰어들어 플레이 하지 않은 이유는 마침 이 즈음에 권고사직을 겪어 이력서를 쓰고 또 리퍼 체크 대상이 되는 과정을 지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음 잡고 어떤 게임에 집중하기에는 마음이 그리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편안하지 않은 상태로 백수 생활을 하다가 명시적으로 유년기를 마무리하기로 확정한 다음에야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편해진 다음에는 더 오래 전부터 미뤄 온 세 가지 신화를 마무리하는데 시간을 크게 사용하느라 팰월드를 시작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팰월드를 이미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 짠 다음 정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는 그 순간까지 플레이 하고 더 이상 아무도 조용히 우리들 끼리 모여 놀 수 있는 팰월드 서버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된 다음에야 팰월드를 시작하게 됩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 게임에 크게 끌리지 않았는데 일단 게임의 첫인상이 그리 잘 다듬어지지 않은 ㅍ켓몬 짝퉁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냥 포ㅋ몬 잡는 게임이라면 여전히 포켓몬 고가 널리 플레이 되고 있었고 기왕 정식 게임을 플레이 할 수 있는데 뭐하러 이런 게임을 플레이 할까 하는 생각 때문에 그리 좋지 않은 첫인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플레이를 시작해 보니 이 게임은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실제 게임 플레이가 완전히 다른 어처구니 없이 이상한 경험을 하게 해 줬습니다. 게임을 구입하고 설치하는 동안 스팀 라이브러리 페이지에 머물러 있었는데 포켓ㅁ 짝퉁처럼 보이는 여러 캐릭터들이 늘어서 있는 그림까지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림 구석에 튀어나온 미니건을 인식하자 이게 도대체 뭐 하는 게임인지 헛갈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ㅍ켓몬 비슷한 몬스터들이 모여 있을 때 느끼던 게임에 대한 선입견은 같은 그림 안에 포함된 미니건을 보며 상당히 불안하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설마 저 미니건을 들고 포ㅋ몬들에게 갈기는 부분이 들어 있는 것인지 심각하게 상상하며 느린 다운로드 시간을 견딥니다. 게임은 완전히 평화롭게 시작되어 추운 밤을 견디고 주변의 자원을 채집해 이 세계에서 어쨌든 버틸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한 다음 주변의 팰들을 수집하는 과정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거점을 만들고 팰을 거점에 스폰 시켜 놓기 시작했는데 팰을 거점에 풀어 놓고 뭘 하나 했더니 갑자기 게임은 자원을 채취해 거점을 건설하는 게임에서 순식간에 상황에 맞는 팰들을 수집하고 배치해 더 높은 효율로 목적을 달성하는 최적화 게임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나무 방망이로 팰을 두들겨 팬 다음 팰스피어를 던져 포집 할 때까지만 해도 나중에 이런 무기가 활로 바뀌고 또 미니건이 튀어나오는 순서로 진행되는 게임인가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정신 차려 보니 거점에는 여러 팰들이 각자의 일을 하고 밤이 되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힘들면 온천에 가서 휴식을 취했지만 이들이 각자의 일을 수행하기 위한 경로 상에는 비록 게임 상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다른 게임에서 본 컨베이어벨트가 깔려 있는 것 같아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이전에 아주 많은 시간을 투자해 플레이 한 팩토리오, 그리고 처음에는 팩토리오 짝퉁이라고 생각했다가 비슷하기는 하지만 상당히 다른 경험을 하게 해 준 다이슨 스피어 프로젝트 같은 본격적인 최적화 설계 게임이 ㅍ켓만 비슷하게 생긴 팰들의 얼굴을 한 채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팩토리오는 자원을 채집하고 정제한 다음 이를 재료로 사용하는 시설에 보내 제품을 만들고 또 이 제품을 재료로 사용하는 또 다른 상위 제품을 생산하는 시설에 보내기를 반복하며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자원을 자동으로 채집한 다음 이를 필요로 하는 올바른 시설까지 컨베이어벨트를 잘 연결해야 합니다. 또 땅은 한정되어 있고 그 위에 여러 사실을 건설하되 이들 사이에 입력 자원과 출력 제품이 이전, 다음 단계로 잘 연결되도록 해야 했기 때문에 컨베이어벨트를 잘 배치해야 함은 물론 한 컨베이어밸트 위에 한 종류의 물건만 이동하게 할 것인지, 아니면 한 컨베이어벨트 위를 다양한 물건이 이동하게 하되 이들을 조건에 따라 들어 올리는 별도의 분류 시설을 통하게 할지 고민해야 했습니다.
종종 그렇게 자동화 공장을 만들고 시설이 쉼 없이 돌아가도록 최적화 하는데 열중하고 있으면 그 별에 원래 거주하던 외계인이 나타나 시설을 공격했는데 이를 방어하기 위해 터렛을 세웠고 터렛에 필요한 포탄을 생산하는 시설을 건설했으며 이 시설로부터 터렛까지 자동으로 포탄이 이동해 장전되도록 컨베이어벨트를 설치하고 또 포탄 생산 시설에 필요한 여러 자원을 또 다른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연결하기를 거듭합니다. 결국 이 거대한 공장은 별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채집해 온갖 시설에 공급하고 시설 각각은 온갖 물건을 만들어 외계인을 몰아내고 결국 주인공이 그 별을 떠나는데 필요한 각종 시설과 기계 장치를 만드는 역할을 완전히 자동으로 수행하기에 이릅니다. 처음에는 각 시설과 이들 사이의 연결을 최적화할 필요를 크게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르며 좁은 땅 위에 시설을 건설하고 또 가동률이 높은 컨베이어벨트와 가동률이 낮은 컨베이어벨트를 그대로 두는 대신 비용 및 시간 최적화 하다 보면 땅 위에 건설된 거대 공장 지역이 잘 파악하고 있는 코드 뭉치 또는 잘 파악하고 있는 회로처럼 다가와 이를 새로운 요구사항에 따라 유지보수하고 상황에 따라 큰 규모로 수정하는 등 프로그래밍과는 분명 다른 경험일 것 같지만 만약 제가 직업 프로그래머였다면 이런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싶은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이슨 스피어 프로젝트 또한 팩토리오와 비슷했는데 팩토리오는 2D 그래픽에 탑뷰로 진행되는 게임이었던데 비해 다이슨 스피어 프로젝트는 3D 게임이었고 카메라 이동이 보다 자유로웠습니다. 초반의 여러 경험은 팩토리오와 비슷해 그저 팩토리오 복제 게임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져 구형의 별 전체에 접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삼차원 공간에서 컨베이어벨트를 건설하고 이들을 최적화 하는 과정은 또 다른 도전이었습니다. 또한 팩토리오와 달리 다이슨 스피어 프로젝트에서는 같은 위치에 시설을 여러 층으로 쌓아 모두가 동시에 동작하도록 구성할 수도 있는데 이 때 여러 층에 걸쳐 쌓은 모든 시설이 동작하도록 하고 각 시설이 서로 다른 위치로 산출물을 보내도록 하기 위해 삼차원 공간에 컨베이어벨트를 건설하고 이들이 서로를 잘 피해 동작하도록 하는 일은 팩토리오와는 또 다른 재미였습니다. 게다가 아마도 제작자가 예상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 헛점을 사용해 원래 게임이 허용하는 가장 작은 건설 단위의 절반에 해당하는 공간에 시설을 욱여 넣을 수 있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모든 시설들을 더더욱 공간 효율적으로 건설하고 각 시설 사이의 거리를 최적화 할 수 있는 여지가 늘어나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각 시설에 전력을 공급해야만 하는데 그저 시설들 사이의 재료와 완제품의 이동 경로만을 신경쓰는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시설들 사이의 컨베이어벨트 회로와 완전히 분리된 저력 공급망 역시 효율적으로 설계하고 설치해야 한다는 점 역시 단순히 팩토리오의 복제 게임이라고 말하기에는 완전히 새로운 재미가 있었습니다.
또한 팩토리오가 별을 떠나는 순간까지 게임을 계속했다면 이번에는 주변에 여러 다른 별들이 있고 기술을 발전 시켜 다른 별로 이동해 그 별에도 똑같이 자원 채집과 생산 시설을 건설할 수 있으며 행성과 행성 사이에 자원을 주고 받을 수 있게 되고 이를 행성계 전체로 확대해 결국 다이슨 스피어를 건설하는 단계에 도달하는 스케일 역시 팩토리오와 비교하기 어려운 완전히 새로운 차원을 경험입니다. 팩토리오와 다이슨 스피어 프로젝트에 한창 인생을 태우고 있을 때 눈을 뜨고 있을 때는 일도 하고 밥도 먹었지만 잠 들어 있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 눈을 감으면 어둠 속에 거대한 공장의 회로가 나타났고 어제 밤 플레이 하다가 포탄 공장으로 들어가는 철 컨베이어벨트가 포탄 공장이 요구하는 용량보다 더 많은 철을 보내 공장으로 향하는 컨베이어벨트 위에 쌓여 있어 전체 공정의 흐름에 방해를 일으키는 상황을 떠올린 다음 이를 해결할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포탄 제조 시설을 추가해 컨베이어벨트 위에 적체된 재료를 사용하게 할 수도 있었지만 이렇게 하면 포탄 생산량이 늘어나 이를 발사할 터렛 역시 늘어나야만 해 문제를 필요 이상으로 확장하게 될 수 있었습니다. 이 때 남는 철을 이를 필요로 하는 거대한 공장 회로 내 다른 시설로 보내면 굳이 이미 충분한 포탄을 추가 생산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적체된 자원과 이를 필요로 하는 시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이들 사이를 이미 연결하고 있는 다양한 컨베이어벨트 네트워크를 어떻게 경유해야 할지 고민하고 또 아예 완전히 새로운 컨베이어벨트 네트워크를 구축해 잉여 자원이 컨베이어벨트 위에 적체되어 전체 네트워크의 흐름을 지연시키지 않는 구조를 상상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떠 일상 생활을 하다가 집에 가자마자 게임을 실행하고 하루 종일 생각한 컨베이어벨트 네트워크를 건설하고 새로 생긴 문제를 해결하고 예상과 달리 동작하는 부분을 보완하는데 열중합니다.
나중에 셴젠 IO 같은 본격적인 회로 만드는 게임이 나오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팩토리오와 다이슨 스피어 프로젝트만큼 강하게 이입해 플레이 하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팰월드 역시 그저 무기를 업그레이드 해 가며 미니건으로 팰들을 겨누고 난사해 팰을 쓰러뜨리거나 수집하는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문명 수준의 시설을 건설하며 이들 사이에 팰들을 배치하는 방법에 따라 생산 일부를 자동화 할 수 있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팰들은 직접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시설 사이를 컨베이어벨트로 연결하고 컨베이어벨트 네트워크를 구축해 거점 전체에 자원이 필요한 곳에 원활하게 순환되도록 할 필요는 없습니다. 팰들은 알아서 작업을 하고 그 결과를 아직 정확히 설정할 수는 없지만 예측은 가능한 위치에 내려 놓는 식으로 컨베이어벨트 없이도 자원 순환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었습니다. 컨베이어벨트 네트워크를 만들 필요도 없고 만들 수도 없지만 각 시설 사이의 위치와 거리를 조정해 팰이 최소 거리만 이동하며 작업하게 만드는 식으로 최적화 할 여지가 있었는데 특히 밤에 팰들이 잠 을 자는 침대, 팰이 지치면 가서 쉬는 온천 같은 시설을 여러 시설 사이의 최적 경로에 배치하면 팰들이 잠자거나 쉴 때 걸리는 시간을 최소화 해 자원 생산 효율을 올릴 수 있습니다.
이런 플레이를 제작자들이 처음부터 의도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의도했다고 하기에는 깊이가 너무 얕고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기에는 분명히 이 규칙이 앞으로 더 발전할 여지가 충분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2024년 초봄 현재 팰월드의 생산 최적화 플레이는 가능하기는 하지만 의미 있는 수준은 아닙니다. 오히려 몇몇 팰의 행동은 아무리 생각해도 효율이 너무 좋아 게임의 지속 가능성을 무너뜨리는 수준이기도 해서 이런 점들이 개선되지 않으면 고객들은 새 컨텐츠가 나올 때마다 순식간에 이를 먹어 치우기를 반복하고 게임에 오래 머무를 이유를 만들기 어려울 것 같아 보입니다. 팰들의 기능을 조정해 장기적인 밸런스를 구축하고 또 만약 생산시설 최적화 플레이를 의도했다면 이 역시 좀 더 깊은 수준으로 파고 들 여지를 개발하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팩토리오나 다이슨 스피어 프로젝트처럼 본격적인 최적화 플레이를 대놓고 드러내 놓으면 이런 경험을 썩 즐기지 않는 사람들을 처음부터 쫓아내 버리지만 팰월드처럼 그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사람들을 끌어 모은 다음 본격적인 생산 최적화 요소를 드러내면 이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도 이 플레이에 빠져들게 만들 가능성도 있습니다.
한편 이 글의 제목은 소지 중량보다 더 무겁게 들면 천천히라도 움직이도록인데 이번에도 제목과 별 관계 없는 이야기를 7천글자 가까이 하고 있었는데 이제부터는 팰월드를 플레이하다 느낀 점 하나를 제목과 관계 있는 이야기로 만들어 소개하겠습니다. 위에서 팰월드를 플레이 하며 이들이 쿨하게 넘긴 미션 크리티컬하지 않은 기능과 의사결정은 제 자신감을 회복하게 하는데 도움을 줬다고 소개했는데 이런 특징 중 하나는 캐릭터가 소지 중량 한도보다 더 많은 물건을 들고 있을 때 아주 천천히 걷는 동작의 어처구니 없음 역시 자신감을 회복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오래된 게임에서 너무 무거운 물건을 들면 제자리에서 아예 움직일 수 없거나 별도로 만들어진 무거운 물건을 들고 있을 때 걷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낮은 효율로 이동하며 소지 중량을 늘리거나 뭔가 다른 방법을 사용해 이 상태를 탈출하기를 요구합니다. 팰월드 역시 너무 많은 물건을 들어 무게 표시가 빨간색으로 바뀌면 그 순간부터 점프를 할 수도 달릴 수도 없고 걷는 애니메이션을 아주 천천히 재생하며 천천히 움직이는데 이 상황을 위해 그럴듯한 별도 애니메이션을 사용하는 대신 그냥 걷는 애니메이션을 느리게 재생해 어기적거리며 걷는 모습을 보자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어디까지 미션 크리티컬하지 않은 부분에 신경을 끊을 셈인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나마 이렇게 아주 느린 속도로 어기적거리며 걷는 동작은 얼마 전에 수정된 것이고 그 이전에는 아예 너무 무거운 물건을 들면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사실 아예 움직이지 못하는 동작은 오래된 게임에서 흔히 사용하곤 해서 짧게 생각하면 이상하지 않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객들은 이 동작에 당황했고 강한 피드백을 보내 무거운 물건을 든 상태에서 느리게라도 이동할 수 있도록 게임을 바꿨는데 이 과정은 개발자들의 생각과 플레이어들의 생각이 너무 확실하고 뚜렷하게 이해 되어 상황을 상상해 보니 너무 웃깁니다. 일단 개발자 입장에서 너무 무거운 물건을 들고 있을 때 아예 움직일 수 없다는 규칙은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우며 확실한 패널티를 통해 고객에게 이 상황을 겪지 않도록 잘 관리하라는 메시지를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실제 세계에서도 너무 무거운 물건을 들면 움직일 수 없을 뿐 아니라 다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많은 물건을 들어 무게 표시가 빨간색으로 바뀌면 제자리에서 아예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데 이 상태를 벗어나려면 인벤토리를 열어 물건을 버리거나 물건을 파괴해 무게를 줄이면 됩니다. 이전부터 무게 제한이 있는 게임들은 이렇게 행동해 왔고 이 설명만 봐서는 그리 이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객들은 근본적으로 지독한 욕심쟁이일 뿐 아니라 일단 인벤토리에 들어온 물건에 대한 강한 소유욕을 느기며 이를 포기해야 할 때 아주 강한 고통을 느낍니다. 분명 이런 심리 상태를 가리키는 정확한 용어와 이 상황을 재현하는 정확한 사회과학 실험도 있을 겁니다. 마치 지금 당장 지갑에 5만원을 가지고 있는데 5만원을 잠깐 다른 사람에게 주면 24시간 뒤에 10만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이 상황에 대한 완벽한 신뢰가 없으면 많은 경우 미래에 10만원을 받는 대신 지금 이미 가지고 있는 5만원을 가지는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미래의 10만원을 위해 지금 5만원을 내놓는 행동은 이 결정을 하는 사람에게 큰 고통을 줍니다. 무게 제한을 초과한 인벤토리를 정리하는 행동 역시 고객에게 똑같은 고통을 줍니다. 무거운 금속을 채광하는 상황에서 이런 고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초반에 아직 팰을 사용해 금속 채광을 자동화 할 수 없을 때 직접 곡괭이를 들고 금속을 채집해야 하는데 금속은 무겁기 때문에 순식간에 무게 제한을 초과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때 인벤토리를 열어 너무 무거운 금속을 바닥에 버린 다음 거점에 돌아와 금속을 보관하고 다시 돌아와 바닥에 떨어진 금속을 다시 집어 들어 거점으로 돌아오면 상황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상황에서 캐릭터를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를 적극적으로 아이템을 버려 벗어나는데 큰 고통을 느끼며 이런 게임의 패널티에 분노합니다.
결국 게임 규칙이 바뀌어 너무 무거운 물건을 들고 있는 상태에서도 캐릭터는 아주 천천히 움직이게 됐고 인벤토리에 물건을 바닥에 버린 다음 빨리 거점으로 이동해 보관한 다음 다시 돌아와 남은 물건을 회수하는 것 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인벤토리에 들어있는 이미 내가 가진 물건을 바닥에 내려 놓는 고통을 감수하지 않는 쪽을 선택합니다. 저 자신, 그리고 함께 같은 서버에서 게임을 플레이 하는 가족 역시 금속을 인벤토리에 가득 채운 다음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기적은 오직 어기적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아는 것처럼 순간이동 위치까지 어기적거리며 아주 천천히 걸어가 물건을 그냥 버린 다음 거점에 다녀오는 것보다 더 긴 시간을 사용하면서도 물건을 버리지 않고 한 번에 모든 물건을 가지고 거점으로 이동하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팰월드를 플레이 하는 고객 입장에서 이 상황이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여느 게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제작자들은 분명 이 상황에 패널티를 강하게 줘 고객들이 무게 관리에 더 신경 쓰기를 바랬겠지만 그들은 결코 이미 소유한 물건을 일시적으로 포기하는데서 오는 강한 고통을 참을 수 없어 패널티를 거의 없는 것과 다름 없이 만드는 느린 이동으로 만들었을 상황의 흐름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옵니다.
너무 무거운 물건을 들고 있을 때 상황에 맞는 적당한 애니메이션도 없이 그저 걷는 애니메이션을 느리게 재생하며 천천히 이동하는 이 어처구니 없는 동작은 애초에 계획에 없었을 겁니다. 그러니 어울리는 애니메이션도 없고 이 상태의 플레이 역시 의도를 가지고 정립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플레이가 들어간 이유는 분명 이미 인벤토리에 담아 소유한 물건을 바닥에 버리기를 거부하는 고객들의 심리적 반응과 이로 인한 강한 피드백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대에 게임을 플레이 하는 고객들을 위해서는 이런 생각의 변화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실제 세계와 비슷하게 동작하고 또 이해하기 쉽고 상황을 돌파하는 방법 역시 명확하지만 그 방법을 수행하는 고객에게 심리적 고통을 주는 것은 썩 좋은 방법이 아닐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