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파크라이는 흉한 3컷 튜토리얼을 쓸까?
저는 파크라이 시리즈를 좋아합니다.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 파크라이 시리즈를 좋아한다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많지 않은 게 아니라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이는 유비소프트에서 꽤 빠른 주기로 출시하는 여러 오픈월드 게임에 대한 높지는 않은 평가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게임들이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아쉬움에 세계를 떠나지 못하다 같은 아주 인상 깊은 경험을 한 적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게임들을, 특히 파크라이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 시리즈가 만들기 쉽지 않기로 악명 높은 오픈월드 게임이면서도 너무 길지 않은 기간마다 새 시리즈를 출시하고 있어 분명 내부에 아주 잘 관리되는 개발 환경이 갖춰져 있으리라 예상하고 이를 동경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꽤 훌륭한 결과를 만들면서도 비슷한 오픈월드 게임인 GTA 시리즈처럼 게임 전체가 놀라울 정도로 일관된 경험을 주고 그 수준이 훌륭해 비슷하게 만들 엄두가 안 나며 도저히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반해 파크라이 시리즈는 게임 내 경험이 일관되지 않고 또 어떤 경험은 분명 한국의 수도권에서 주로 일하는 우리들이 회사에서 내리는 일상적이고 또 세계 수준에 비해 수준이 높지는 않을 것 같은 수준의 의사결정과 별로 다르지 않은 의사결정에 의한 결과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마치 우리들이 만들었을 것 같은 뭔가 엉성하고 정겨운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한편 파크라이 시리즈는 대대로 거의 비슷한 시스템에 기반해 상당히 다른 오픈월드를 만들어 이들을 스토리로 잘 이어 붙인 결과를 게임으로 묶어 출시하곤 하는데 여러 시리즈를 거치면서 새로운 시스템이 추가될 때마다 시스템 소개를 이런 흉하기 짝이 없는 튜토리얼 화면을 통해 설명하고 이 설명이 충분한 것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설명은 말도 안 될 정도로 부실한데 먼저 이 튜토리얼은 시스템에 따라 처음에 단 한번만 볼 수 있어 그 때 숙지하지 않으면 영원히 볼 수 없는 경우도 있고 또 이 시스템이 게임 플레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잘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며 인터페이스의 복잡도에 비해 설명이 너무 단순해 튜토리얼을 봤지만 여전히 어떻게 조작하는 건지 잘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대로 이런 보조 시스템들은 나름의 재미가 없지는 않지만 게임 핵심과 약간 동떨어져 있고 이런 시스템에 관심을 가지고 플레이 하면 그 나름의 재미가 있고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해 그냥 무시해도 게임 진행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아 딱히 부담스럽지는 않습니다.
한편 비슷한 오픈월드 게임인 GTA 시리즈에도 이런 보조 시스템이 여럿 채용 되어 있는데 기억이 흐릿해지기는 했지만 GTA 시리즈에는 꽤 복잡한 시스템을 설명할 때도 파크라이 같은 흉한 튜토리얼 화면을 함부로 보여주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기억에 남는 튜토리얼은 GTA 3에서 택시를 처음 빼앗아 탔더니 화면 구석에 작게 택시 미션 방법이 표시되던 것과 GTA 5에서 처음으로 습격 미션을 할 때 습격 미션의 구성과 진행에 대해 화면 전체를 사용해 설명한 것 정도입니다.
이에 비해 파크라이에서는 자잘한 보조 시스템을 설명할 때도, 무기를 개조하는 핵심 성장 시스템을 설명할 때도 똑같이 이런 흉한 3컷 튜토리얼을 사용하고 또 이런 방법을 사용하면서도 설명이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은데 이유가 뭘까요.
먼저 파크라이 시리즈에는 게임 전체의 일관된 경험 수준을 관리하는 광기에 찬 개인 또는 광기에 찬 아주 작은 그룹이 없는 것 같습니다. 게임 소프트웨어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관여해 개발하는 노동 집약적인 결과물이기 때문에 게임의 각 구성요소는 최소한 개발에 참여한 사람 수만큼 일관되지 않은 경험으로 완성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완화하거나 개선하는 방법은 게임 전체의 비전을 깊이 이해하고 이를 추진할 수 있는 광기 어린 개인이나 작은 그룹이 게임 전체를 극도로 까다롭게 물고 늘어지며 요구사항을 남발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 밖에 없습니다. 마치 극도로 까다로운 감독 한 명의 무리할 수도 있는 요구를 제작팀 전체가 수용해 완성도 높은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가 유비소프트에서 개발하는 오픈월드 게임을 공장식 오픈월드 게임이라고 부를 때 사용하는 이 공장이라는 표현에는 이렇게 광기에 찬 책임자의 부재를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광기에 찬 개인을 확보하는 것은 극도로 어려운데 애초에 이런 사람이 시장에 거의 존재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이런 사람이 온전히 역할을 수행할 환경을 회사 차원에서 만들어 주기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게임의 비전을 제시하고 개발이 진행되어 감에 따라 광기에 가득 차 게임의 온갖 자질구레한 부분을 뜯어 보며 부족한 경험을 주는 부분들에 대한 가혹한 평가와 난처한 요구사항을 남발하기도 하고 또 이전에 제시했던 요구사항과 충돌하는 새로운 요구사항을 말하기도 하는데 이들과 개발팀 사이에서 광기를 제어해 이를 실행 가능한 계획으로 바꾸고 이 개인과 팀이 서로 직접 부딪쳐 다치지 않는 역할을 할 사람이나 부서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GTA는 그런 광기를 포함해 개발하는데 성공했고 파크라이는 그렇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그런 광기가 항상 올바른 방향으로 작용하지는 않습니다. GTA 개발팀으로부터 들려오는 온갖 흉흉한 소문은 그들이 만들어낸 광기 어리도록 훌륭한 결과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이 결코 인간적으로 납득할 수 있지 않았으리라는 짐작을 하게 만듭니다.
다시 파크라이로 돌아와 파크라이 시리즈에서 대대로 채택한 저 보기 흉한 튜토리얼은 이를 개선할 의지를 누군가는 가지고 있었겠지만 오랫동안 오픈월드 게임을 개발하며 구축한 개발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면 어쨌든 게임이 나오는 상황에서 게임의 특정 부분을 개선하려고 하면 개발 시스템 일부 또는 전체를 함께 개선해야 하는 부담을 아무도 지려고 하지 않는 상황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저 흉한 화면을 개선할 방법은 있고 또 파크라이 시리즈는 충분한 가능성도 있습니다.
가령 여느 1인칭 게임처럼 무기를 포함한 여러 도구를 장착하고 장착한 도구의 특성에 따라 상호작용 가능한 대상과 상호작용 방법이 알아서 결정되는 특징 덕분에 보조 시스템 대부분은 이전에 비슷한 장르를 플레이 해 본 사람이라면 굳이 설명 없이 직관적으로 방법을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가령 낚시나 사냥은 분명 다른 시스템이지만 핵심 규칙과 똑같이 만들어져 있고 다만 상호작용 가능한 대상과 위치가 서로 다를 뿐이어서 경험을 다듬으면 튜토리얼을 아예 생략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결론. 개인적으로 파크라이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 시리즈가 오픈월드 게임으로써 훌륭하게 잘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게임 곳곳의 경험이 일관되지 않고 가끔은 꽤 삐걱거리는 느낌을 주는데 이런 특징들이 마치 수도권에서 게임을 만들고 있는 우리들이 만들어낸 결과 같은 정겨운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결과는 어쩌면 이미 여러 차례 성공적으로 게임을 출시한 잘 구축된 오픈월드 게임 개발 시스템을 함부로 손대기 어려운 상황 때문일 수도 있고 또 개발팀에 현대 인력시장에서 구하거나 운용하기 아주 아주 어려운 비전을 가진 광기 어린 개인의 부재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