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잠시 떠나는 의식
지난 민간인에게 총을 쏠 수 있나요에서 파크라이 6을 시작했습니다. 한참 재미있게 수 십 시간을 들여 플레이 하고 있지만 여전히 풀 프라이스를 주고 샀으면 조금 덜 재미있었을 것 같습니다. 색다른 분위기의 오픈월드는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여러 가지 할 것으로 가득하지만 대략 어떤 부분을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들었을지 짐작할 수 있게 만드는 완성도가 일관되지 않거나 서로 제작 방식이나 성격이 너무 다른 요소들이 바로 옆에서 눈에 띄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게임을 하는 입장에서 이런 요소는 일관되지 않은 경험을 주기 때문에 그리 달가운 요소가 아닐 수 있지만 게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팀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지, 또 이런 일관되지 않은 경험이 완성까지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지 같은 주제를 생각할 기회를 줘 나쁘지 않습니다.
1인칭 오픈월드 게임을 좋아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이 오픈월드가 실제 세계와 비교해 조금 삐걱거리는 요소에 크게 불만을 가지지 않기로 합의하고 나면 이 세계에 훨씬 더 감정적으로 이입해 플레이 하며 훨씬 더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오픈월드 게임이지만 3인칭이라면 게임을 대하는 자세가 좀 달라지는데 가령 GTA에서 트레버를 조종하는 나는 터레버의 감정 상태에 이입해 트레버로 전환할 때마다 마주치는 괴상한 상황에 이입하려고 노력해 보지만 결국 이 세계에서 나는 내가 아니라 트레버를 조종하고 또 나머지 두 캐릭터를 조종하는 게임 바깥에 있는 사람을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GTA를 좋아하고 또그 어떤 개인의 광기어린 집착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일관된 경험을 주는 오픈월드에 깊은 감명을 받고 또 게임을 즐겁게 플레이 하지만 결코 감정적으로 이입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파크라이 6은 기본적으로 1인칭이지만 캠프에 진입하면 갑자기 3인칭으로 바뀌는데 이렇게 만든 이유를 아예 예상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1인칭으로 실컷 이입해서 플레이 하다가 캠프에만 들어가면 갑자기 시점이 바뀌며 일시적으로 속이 울렁거리고 또 분명 똑같은 조작 방식이지만 조작 집중도가 미묘하게 바뀌어 실망 스런 경험을 줍니다. 이렇게 만든 이유는 파크라이 뉴던에서처럼 캠프를 발전시키는 요소를 집어넣고 또 캠프 자체가 굉장히 공간 집약적으로 만들어져 있어 1인칭으로 플레이 하는 경험이 나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1인칭 게임에 갑작스레 이런 3인칭 요소를 집어넣고 3인칭이 핵심이 아니기 때문에 잘 다듬어지지도 않은 캠프 경험은 게임 전체 경험을 깎아내리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캠프 플레이는 최대한 빨리 끝내고 탈것을 호출하러 캠프 바깥에 나오면 갑자기 꽉 막혀 있던 속이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탈것을 타고 다시 오픈월드로 출발하곤 합니다.
1인칭 오픈월드 게임에 감정적으로 이입하며 플레이 하기 위해 게임 상에서 빠른 이동 기능을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현대의 오픈월드 게임은 세계 안에서 점진적으로 이동하는 동안에는 내 눈에 띄지 않도록 점진적으로 지역을 로딩해 거대한 월드를 플레이 하면서도 로딩은 맨 처음 게임을 시작할 때 한 번만 겪으면 됩니다. 하지만 한 번에 먼 거리를 이동하는 빠른 이동 기능을 사용하면 이런 점진적인 로딩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빠른 이동에는 로딩이 필요한데 주로 빠른 이동 위치까지 게임 내 수단으로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보다 로딩 시간이 더 짧기 때문에 빠른 이동 기능이 성립합니다.
하지만 빠른 이동 기능 없이 이 세계가 제공하는 방법으로 이동하려고 노력하는데 대략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1인칭 오픈월드 게임을 플레이 할 때 감정적으로 최대한 이입해서 플레이 하려고 노력하는데 빠른 이동은 그런 세계에 대한 이입을 깨는 게임 외적인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게임 상의 규칙을 깨지 않는 선에서 플레이 하면 플레이 할수록 세계의 제한이나 실제 세계보다 덜한 복잡성, 사실성 따위를 납득하며 플레이 하게 되는데 게임 바깥의 빠른 이동 기능은 이런 이입과 몰입 상태를 약하게 만들어 게임을 재미 없게 만들고 또 게임 속 세계의 일관되지 않은 완성도를 보이는 요소와 마주칠 때 이 세계에 이입한 주민 중 한 명에서 순식간에 게임 만드는 직업을 가진 21세기 지구에 사는 사람으로 돌아와 버리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현대 오픈월드 게임은 계속해서 월드가 넓어져 이전 시대처럼 오픈월드 지리에 익숙해져 마치 그 도시에 오랫동안 거주한 사람처럼 도시 곳곳의 지리에 익숙해지는 경험을 하기 쉽지 않습니다. 가령 GTA 3나 Vice City 수준의 오픈월드 게임이 주류이던 시대에는 오픈월드가 그리 넓지 않아 한참 플레이 하다 보면 지리에 익숙해져 택시 미션이나 패러메딕 미션을 수행하며 지리에 익숙한 자신이 거리를 질주하는 쾌감을 느끼기 상대적으로 쉬웠습니다.
하지만 오픈월드는 턱없이 넓어져 어지간해서는 이전 시대처럼 지리를 잘 익히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빠른 이동 기능 없이 이 세계에서 지원하는 탈것을 이용해 지점 사이를 이동하며 그나마 이 세계의 지리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합니다. 모든 길을 구석구석 알 수는 없지만 대략 큰 길 정도는 익숙해져 미니맵을 덜 보고 돌아다니고 공략 포인트로 통하는 뒷길을 알고 있는 식으로 세계에 조금 익숙해진 자신을 통한 이입은 큰 즐거움을 줍니다.
그래서 당장 세이브를 해야 한다든지 게임을 꺼야 하는 등의 상황이 아니면 빠른 이동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또 현대의 오픈월드 게임은 세계 자체가 너무나 아름답게 잘 만들어져 있어 자동차를 타고 거리를 달리기만 해도 펼쳐진 자연과 새벽, 아침, 한낮, 오후 저녁과 밤으로 이어지는 색깔의 변화가 서로 어우러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전에 아쉬움에 세계를 떠나지 못하다에서 어쎄신크리드 오딧세이를 플레이 하며 그 세계의 아름다움에 빠져 깊이 이입해 플레이 하다가 할만한 컨텐츠를 모두 플레이 한 다음에도 한동안 아쉬워서 세계를 떠나지 못하곤 했습니다. AI가 하도 멍청해 적 병사의 행동을 보고 있으면 웃기기까지 했던 고스트 리컨 와일드랜드 조차도 자동차를 타고 늦은 오후의 들판 옆에 난 길로 운전하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고 그 사이사이에 강과 폭포가 나타나면 잠깐 차를 세우고 손에 총을 든 채로 주변을 둘러보기도 하고요.
이런 맥락에서 오픈월드 게임을 플레이 하다가 그 날의 플레이를 마무리할 때 이 세계를 떠나는 의식을 합니다. 이건 빠른 이동을 사용하지 않는 행동과 비슷하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파크라이 6은 아무때나 세이브 할 수 있지 않습니다. 반드시 캠프에 돌아가야 하는데 이 때 빠른 이동을 하게 되고 빠른 이동을 마친 시점에 세이브 됩니다. 그런데 앞에서 빠른 이동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게임을 끝내기 위해서는 이 세계의 규칙을 따르는 탈것을 타고 가까운 캠프까지 이동해야 합니다. 종종 게임을 끝낼 생각으로 탈것을 타고 이동하다가 나타나는 조그만 미션을 수행하기도 하며 어쨌든 캠프에 도착해 주차 장소에 탈것을 주차한 다음 거기서 내려 게임을 종료하는데 게임을 종료하기 전에 캠프까지 탈것을 타고 이동하며 주변을 둘러보며 이제 곧 이 세계를 잠깐 떠날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행동은 일종의 세계를 떠나는 의식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일인칭 오픈월드 게임을 플레이 하며 최대한 감정적으로 이입해 플레이 하는 입장에서 그 세계에 들어갈 때는 갑자기 뚝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거기서 나올 때는 게임 세계에서 제공하는 탈것을 타고 목적지에 도착해 마치 집에 돌아와 주차장에 차를 대고 차에서 내려 이제 집에 돌아가는 느낌과 비슷한 행동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 바이크를 타고 집에 돌아와 캠프에 바이크를 대고 내려 게임을 종료하고 윈도우로 빠져나와 21세기 지구로 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