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런 경기 스타일을 좋아할까
지난 아홉 번째 뉴스레터의 모나코 똥 참기 게임에서 F1 그랑프리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다가 암만 생각해도 이건 분명 재미 없는 것 같은 모나코 그랑프리가 F1 일정에서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개인적으로는 좀 거친 언어를 사용해 ‘똥 참기’와 비슷해 보인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꼭 모나코 그랑프리가 아니더라도 올해 처음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가 아니라 2023년 올해 진행 중인 그랑프리를 지켜보며 뭔가 미묘하게 재미 없게 느끼고 개인적인 취향에 잘 맞지 않는 지점들이 있어 생각을 좀 정리하고 나면 왜 F1 그랑프리를 썩 재미있게 느끼지 않는지 역시 정리해 볼 작정입니다.
한편 2023년 여름 현재 뚜르드프랑스도 진행 중인데 개인적으로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고 또 장거리 라이딩을 좋아해 선수들이나 팀 이름을 아주 잘 알지도 못하고 또 특별히 응원하는 팀이나 선수가 있지도 않지만 몇몇 자전거 레이스는 챙겨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뚜르드프랑스는 실시간으로 보기에 생각보다 재미있지 않았고 오히려 소위 ‘원데이 클래식’으로 분류되는 레이스가 훨씬 재미있다고 느꼈는데 오늘은 왜 뚜르드프랑스나 지로디탈리아 같은 스테이지 레이스는 실시간으로 보기에 생각보다 신나지 않은 반면 론데 반 플랑드르나 파리 루베 같은 원데이 클래식을 더 신나게 보는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당연히 이건 개인 취향이어서 제가 재미 없게 느낀다고 해서 뭔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직업적인 관점에서 뭔가를 재미있다거나 재미 없다고 느끼면 왜 그런지 생각해 보고 이걸 정리해낼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시도해 봅니다.
자전거 레이스는 자동차와 달리 사람 힘으로 달리기 때문에 선수들 사이의 격차가 엄청나게 크지 않습니다. 같은 이유로 결국 사람이 페달을 굴려야 앞으로 나가므로 장비의 차이가 엄청나게 큰 차이를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스테이지 레이스에서는 작은 장비의 차이가 몇 주에 걸친 차이를 누적해 큰 차이로 돌아오기도 하고 또 파리 루베는 새로운 자전거 장비의 시험장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더 좋은 자전거를 탄다고 해서 압도적으로 빨라지지 않습니다. 이런 대회에 참가하는 최상위 선수들의 기량은 사실 엄청나게 차이 나지는 않아서 정말 천재적인 소수의 선수들을 제외하면 나머지 선수들은 극도로 상향 평준화 된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런 대회는 상향 평준화 된 선수들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코스를 달려야 하는데 극 소수의 천재가 아니라면 혼자서 제한시간 안에 완주 자체가 어려운 수준인데 선수들은 ‘펠로톤’을 이뤄 코스 전체를 완전히 자력으로 달리는 대신 다른 선수들 뒤에서 공기 저항을 줄여 가며 달려야 합니다.
자동차에서 슬립스트림은 잘 알려져 있지만 자전거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은데 자전거에서는 사람의 힘만으로 달리므로 오히려 자동차에 비해 공기역학적 효과가 더 크게 작용합니다. 펠로톤에서 달리는 효과는 굉장해서 뚜르드프랑스 같은 스테이지 경기 중 험난할 것이 분명한 산악 스테이지 직전 평지 코스로 이루어진 스테이지에서 경기하는 날은 선수들 대부분이 몸을 사리며 무난한 완주를 목표로 달리는데 이런 날 중계를 잘 보면 펠로톤 맨 앞에서는 꽤 힘 내서 달리고 있지만 펠로톤 뒤쪽으로 가면 같은 속도로 달리는데도 선수들은 가끔 다리를 쉬기도 하고 옆 사람과 이야기를 주고 받을 정도로 힘을 덜 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전거 레이스는 상위권을 노리는 선수들의 이탈과 나머지 선수들이 펠로톤을 이뤄 완주를 노리는 정도로 구분되는데 펠로톤이 크면 클수록 개인적으로 경기를 보는 재미는 점점 떨어집니다.
선수들 대부분이 펠로톤을 이뤄 한 덩어리로 달리더라도 결국 누군가는 우승을 하고 또 상위에 올라야 하는데 코스 대부분을 펠로톤에서 느긋하게 달려 힘을 비축한 다음 마지막 몇 백 미터 안에 들어가 갑자기 엄청나게 페달을 밟아 앞으로 튀어나가 우승을 차지하는 것을 스플린트 피니시라고 하고 어지간한 평지 레이스에서는 항상 게임이 이렇게 끝납니다. 200킬로미터를 다섯 시간에 걸쳐 주행하는 원데이 레이스라면 4시간 45분까지는 다들 평화롭게 달리는 장면만 나오다가 마지막 15분 동안 펠로톤을 빠져나온 선수들이 앞치락 뒷치락을 반복하다가 마지막 몇 백 미터를 앞두고 선수들이 갑자기 자전거를 거의 부숴버릴 것처럼 좌우로 흔들어 대며 엄청난 힘을 발휘해 결승점에 들어오는 가장 재미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렇다 보니 스테이지 레이스에서도 산악 코스 직전 평지 코스를 주행하는 날은 경기를 아예 안 보거나 맨 앞 한 10분 보고 맨 뒤 한 10분만 나중에 보곤 합니다.
문득 2023 뚜르 드 프랑스 스테이지 6 서머리 영상을 보다가 스테이지 레이스라도 코스가 험난해 상향 평준화 된 선수들 안에서도 기량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해 펠로톤이 찢어져 여러 조각이 되면 물론 선수들은 고통스럽고 또 중계진들도 여러 팩 사이를 오가며 중계하느라 힘들어질 뿐 아니라 팀카들도 여러 조각으로 나뉜 선수들 사이를 오가느라 일이 복잡해지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한 펠로톤만 달리는 경기에서는 나중에 치고 나갈 예정인 선수들이 미리미리 앞에 나와 자리 싸움을 하는 정도가 몇 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게임에 거의 유일한 볼거리이지만 일단 펠로톤이 박살 나면 메인 뒤쳐진 선수들이 펠로톤을 따라잡기 위해 애쓰는 모습, 펠로톤보다 앞에 있었다면 계속해서 힘을 쓰며 선두를 유지할지 아니면 펠로톤으로 돌아갈지 고민하는 선수들, 팀원들과 떨어져 다른 선수 뒤에 붙지 못한 채 홀로 맨 앞에서 팩을 끄는 선수들, 혼자서 오르막을 오르다가 녹아내려 걷지도 못하는 꼴이 되고 마는 선수들을 비롯해 순식간에 맨 앞부터 맨 뒤까지 볼거리가 펼쳐집니다. 자전거 레이스가 재미있기는 한데 스테이지 레이스의 모든 스테이지를 다 챙겨 보는 입장은 아니지만 이런 게임이라면 재미있게 볼 만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레이스는 원데이 클래식 중 파리 루베인데 직접 비포장 도로나 코블스톤 위를 달리기를 원하지는 않지만 선수들이 그 코스를 달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확실히 재미있습니다. 게다가 파리 루베는 전체적으로 길이 좁고 험해서 기제 고장이나 낙차 같은 돌발사고가 일어나기 쉽고 앞 사람 뒤에 바짝 붙어 달려야 힘 손실을 줄일 수 있어 다 같이 펠로톤을 이뤄 달리는 자전거 레이스의 특성 상 누군가 돌발 상황에 빠지면 함께 달리던 사람들이 한 번에 같은 상황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 조차 레이스의 일부이기 때문에 선수들은 펠로톤에서 힘을 아끼기도 해야 하지만 동시에 웬만하면 앞쪽으로 나가 다른 선수의 낙차에 휘말리지 않기도 해야 하며 충분히 시간을 확보해 기제 고장으로 시간을 잃을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하는 등 아주 복잡한 상황에 놓입니다. 그래서 파리 루베 레이스는 펠로톤이 있기는 하지만 메인 펠로톤은 주로 완주를 목적으로 하는 선수들이고 여기서 떨어져 나온 다양한 그룹이 각자 자기 목적에 맞춰 달리며 한 게임 안에서 다양한 상황을 만들어내 실시간으로 지켜볼 때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한편 파리 루베는 코스가 하도 험해서 매년 자전거 회사들이 저마다 신박한 신기술을 도입해보는 실험장이기도 하고 또 젊은 선수들이 힘으로 찍어누르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아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 노장들이 힘을 발휘하기도 하는 게임이어서 이를 알아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가령 코스가 워낙 험해 선수들의 신체적 부담을 줄여주는 다양한 시도가 일어나는데 여기에는 로드바이크에는 잘 적용하지 않는 서스펜션을 적용한 자전거가 등장하거나 고장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온갖 방법이 동원되며 펑처에 대비한 신기술이 등장하고 또 선수들은 달리다가 헐거워진 안장이나 스템을 조이기 위해 육각렌치를 들고 다니다가 달리면서 안장을 조이거나 달리면서 신발을 갈아 신는 묘기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정리하면 스테이지 레이스의 펠로톤을 통한 안정적인 주행과 스플린트 피니시가 일어나는 스테이지는 실시간으로 보기에 썩 재미있지 않고 중간에 산악 지형이 있어 상향 평준화된 선수들의 기량 차이가 드러나며 펠로톤이 찢어지는 상황이 일어날 때 한 게임 안에 다양한 상황이 일어날 때 이를 즐기는 것 같습니다. 같은 관점에서 레이스 한 번으로 승패가 결정되고 펠로톤 안에 마무르기에는 위험 부담이 있는 상황에서 비슷하게 펠로톤이 여럿으로 찢어질 수밖에 없는 게임을 더 선호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뚜르드프랑스 같은 스테이지 레이스 전체를 실시간으로 보거나 여러 스테이지로 구성되어 1년 내내 레이스를 하는 F1 같은 게임은 그날 그날의 레이스가 드라마틱한 결과의 변화로 연결되지는 않으므로 상대적으로 덜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정리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점이 있는데 F1에서는 아주 작은 실수로도 순식간에 뒤쳐져 스테이지가 끝날 때까지 복구할 수 없는 점이 썩 재미있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전거 레이스에서는 단 한 번의 실수나 불운이 바로 DNF로 연결되는 원데이 클래식은 또 재미있어하는 이중적인 면이 있다는 점.입니다. 왜 두 게임의 서로 비슷한 면을 한쪽은 싫어하고 다른 한쪽은 좋아하는지는 좀 더 생각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