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홀더 테스트를 마쳤습니다 (1)
1년 전 서기 2022년에 한동안 시장에 그 무엇이라도 가격을 오르게 만들던 유동성 공급이 여러 사건들과 함께 마무리 되고 순식간에 겨울이 시작됩니다. 마치 2천년대 닷컴 버블 시대에는 카페에서 냅킨 뒤에 휘갈겨 쓴 메모 만으로도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오던 시대와 아주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한동안 크게 각광을 받았을 뿐 아니라 어떤 큰 회사의 이름마저 바꾸게 만든 키워드와, 이 키워드를 항상 따라 다니던 나머지 키워드들 모두 눈을 감았다 뜨는 사이에 냅킨 뒷장의 메모의 경지에서 모두의 비웃음을 사도 억울하지 않을 법 한 사기성 단어가 되었습니다.
이전 프로젝트를 떠나기 직전에 하던 고민 중 하나는 이제 게임을 도대체 누구에게, 또 어떻게 팔아야 할 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2014년 경 도탑전기로부터 시작된 소위 수집형 게임 형태는 이제 모두가 우려 먹을 만큼 우려 먹은 상태였고 또 삼평동 668번지에서 고안한 비즈니스 모델은 엄청난 경제적 성공을 이뤘지만 업계 전체에 복제되어 고객들에게 큰 불신을 심어 우리들 스스로의 평판을 떨어뜨렸습니다. 고객들이 즐기는 대단한 게임들을 만드는 경쟁자들에 비해 태생적으로 아주 적은 예산 만으로 개발할 수밖에 없었고 예산으로 인해 제한된 기간 안에서 할 수 있는 일 역시 극명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상황 속에서 디아블로 이모탈은 대단한 게임 프랜차이즈와 동아시아에서 아주 집중적으로 연구한 유료화 모델을 합친 훌륭한 시도라고 생각하지만 고객들로부터의 평가는 그렇지 않았고 미래에 다시 이런 기회가 생길지 역시 미지수 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고객들로부터 신뢰를 잃은 우리들이 이 제한적인 상황 속에서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 지 판단하기 어려웠습니다. 당시 프로젝트를 지원하던 회사는 다른 프로젝트가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덕분에 돈이 없어서 개발을 중단하거나 출시 당하지는 않을 수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회사의 포커스가 우리들을 어떻게든 시장으로 밀어내려는 관점에서 어차피 회사 사정은 넉넉해졌으니 천천히 최대한 잘 만들어 나가라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이건 만드는 입장에서 결코 좋은 신호가 아닙니다.
예산이나 개발 기한 제한이 약해지면 개발팀에서 그 동안 게임과 어울리지 않는 온갖 이상한 요구사항이 개발팀에 그냥 접수되지 않도록 하던 단단한 둑의 한 기둥이 무너지는 것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어차피 기간 제한도 느슨하고 비용 제한도 느슨해졌는데 하고 싶은 것 다 해야 하는 상태가 되는데 이 때 팀에 광기를 지닌 개인이나 그룹이 없다면 이제부터 팀은 팀을 둘러싼 모든 사람들로부터 들어오는 나름 ‘좋은 아이디어’를 정신 없이 수습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시장에는 종종 거의 10년 가까이 개발한 다음 출시해 고객들의 평가를 받고 참여한 사람들의 이력서에 유효한 한 줄 짜리 기록을 만드는 프로젝트도 있지만 십 수년 동안 개발했지만 여전히 출시하지 못해 참여한 사람들의 이력서에 유효하지 않은 한 줄 짜리 기록을 만드는 프로젝트도 있습니다. 한번은 삼평동에서 출시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이미 그 프로젝트는 수 년 째 연기되고 있었고 내부 상황으로 미루어 출시 일정을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유명한 게임이 출시될 때마다 게임의 목표가 계속해서 바뀌어 게임 구성은 엉망이었고 또 스탭들의 사기도 높지 않았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본 무서운 상황은 회사에 공채로 입사에 이 프로젝트에서 업무를 시작해 이제 과장급으로 승진했지만 여전히 같은 프로젝트에서 일하며 출시작이 없는 상태인 분들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세월이 흘러 어지간한 분들은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눈치채고 다른 회사로 도망쳐 정상적인 이력을 구축해냈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은 단지 성실하다는 이유만으로 이력에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진 예산과 시간 제한이 약해진 프로젝트는 광기에 찬 누군가의 분탕질 없이는 동력을 확보하기 쉽지 않았고 이미 그 없는 동력을 끌어다가 시시각각 달라지는 현재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미래의 요구사항에 스탭들은 이미 너덜너덜해진 상태였습니다. 저 역시 그런 너덜너덜해진 스탭 중 하나였고 이 상태로 계속해서 변경되는 요구사항에 대응한 시스템을 고안하고 개발하기를 반복하느냐, 아니면 뭔가 돌파구를 마련하느냐 사이에 고민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고민을 할 시점까지는 앞에서 말한 그 단어들이 아직 지금 만큼의 사기성을 가지지 않는 시점이었고 게임 시스템 설계하는 사람 입장에서 게임 경제를 외부에 노출 시키는 건 뭐 그리 대단하고 새로운 개념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넥슨캐시가 거의 20여년 동안 그렇게 해 오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회사가 구축한 멀쩡한 IP 기반의 모바일 MMO 게임 만드는 팀에서 소위 블록체인에 기반한 경제시스템을 갖추고 NFT에 근거한 상호운용성을 제공하는 메타버스 프로젝트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릅니다.
이미 당시에 NFT는 반복되는 규칙에 따라 생성한 이미지에 일련번호를 매긴 다음 블록체인에 등록 - 이를 ‘민팅’이라고 함 - 한 다음 각각을 블록체인 상에서 주고 받거나 거래하고 있었는데 이들 중 시장 초반에 판매된 몇몇은 그 의미와 쓸모의 불명확함에도 불구하고 높은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보고 후발 주자들이 정말 수없이 등장했는데 이런 상황이 된 이유는 진입 장벽이 없다시피 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이미지를 규칙에 따라 조합해 수 많은 다양한 이미지를 만들고 이들을 블록체인에 등록해 판매할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누군가가 도대체 그 블록체인에 등록된 이미지의 쓸모가 무엇인지 의문을 가지기도 했지만 시장에 공급된 유동성이 그 무엇의 가격이라도 끌어올리던 시대에는 이런 의문은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몇몇 플레이어들은 너무 낮은 기술력과 너무 안일한 대응으로 결함이 있는 NFT를 출시하기도 했는데 한 번 등록되고 나면 수정이 아주 어려운 NFT의 특성 상 결함이 있는 것으로 판명된 NFT는 순식간에 가격이 폭락해 거의 아무런 가치가 없게 되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근본적으로 ‘메타버스’라는 일종의 MMO 게임을 만드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당장 NFT를 만들어야 할 이유는 별로 없었습니다. 이전 우리들은 생각보다 잘 하고 있다에 설명했듯 NFT를 팔아 개발자금을 확보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초기에 게이밍 NFT가 판매될 수 있었던 이유는 플레이어들이나 구매자들 양쪽 모두 자신들이 주고 받는 돈이 어처구니 없이 적은 금액으로 게임 비슷한 것을 만들기도 어렵다는 사실을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미 우리들은 훌륭한 기회를 얻어 이미 스폰서의 지원을 받고 있어 종종 회사에 커피가 떨어지는데 불만은 있었지만 NFT를 팔아 돈을 만들 아무런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MMO와 비슷하다 하더라도 일단 블록체인을 연동해 경제시스템의 일부를 개방할 작정인 이상 이 시장에 형성된 일종의 전통에 따라 게임을 ‘광고’하고 지속적으로 우리가 여기에 있고 계속해서 개발하고 있으며 시장의 다른 플레이어들에 비해 솔직히 ‘압도적인’ 우위에 있음을 광고할 필요는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들은 크게 세 가지 요소에 포커스를 두고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전통적인 크립토 게임 고객들에게 여기 자신들의 평생에 걸쳐 MMO 게임을 만들던 사람들이 모여 NFT에 근거한 상호운용성을 제공하는 메타버스 프로젝트를 만드는 곳이 있고 이 곳이 전통적인 크립토 게임의 문법을 따른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NFT 세일, NFT의 쓸모를 만들고 우리들이 시장에 널린 말만 하고 실제로 동작하는 빌드를 내놓지 못하는 플레이어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플레이어블 빌드, 그리고 이들의 서비스를 뒷받침하기 위한 웹사이트입니다. 우리는 이들 모두에 전문적인 조직이 아닌 데다가 각자가 평생에 걸쳐 게임을 만들어 왔지만 그런 각자가 모여 하는 개발은 처음인 상황인 데다가 익숙하지 않은 NFT 세일 준비, 그리고 웹사이트 개발을 함께 같은 우선순위로 수행해야 했기 때문에 전혀 만만하지 않은 나날을 보냅니다.
NFT 세일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빌드를 개발해 양쪽에 서로 호환되는 NFT를 만드는데까지 상당한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고 또 기존에 널리 판매되던 2D 일러스트레이션 기반의 생성형 이미지는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낮았지만 인게임에 호환되려면 3D 기반이어야만 했고 3D 기반의 생성형 이미지를 우리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수준으로 만들고 또 이 이미지가 거의 그대로 게임에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훨씬 높은 기준이 요구되었습니다. 한참 고생하며 누군가가 ‘아무도 이렇게까지 하지 않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했을 때 사실 우리들이 하는 일의 난이도에 살짝 질린 상태이기도 해서 적당히 타협할 생각을 1초쯤 했지만 제 머릿속의 이런 생각과는 달리 입으로는 ‘우리가 이걸 해내면 3D 기반 생성형 이미지 NFT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버렸습니다. 그러지 말걸 그랬습니다.
여러 이상하고 신기하고 또 재미있지만 한편으로는 고통스러운 여러 에피소드를 겪은 다음 내부 빌드를 냈고 또 핵심 플레이를 체험할 수 있는 빌드를 만들어 다양한 분들에게 시연했습니다. 사실 전통적인 시장에서 게임 만들다 온 우리들에게 이 정도 시점에서 이 정도 수준의 빌드를 가지고 잠재적인 고객들에게 시연한다는 것 자체가 용납하기 쉽지 않은 행동입니다. 여태 까지 우리들이 주로 하던 경험은 회사가 자금을 지원해 프로젝트를 시작한 다음 실제 고객들에게 제시 가능한 수준까지 개발한 다음에야 공개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만든 빌드는 비록 우리들의 아이디어를 담았고 또 우리들이 이 기술로 우리가 말한 미래의 목표를 달성하기에 충분함을 주장할 수는 있었지만 기존에 고객에게 공개하던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어서 이를 시연하면서도 한동안은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미 개발 자금을 확보한 회사가 아닌 이상 처음에 이런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는 시연에 조금 더 당당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꽤 긴 기간에 걸쳐 준비한 NFT와 이를 서비스 하기 위한 웹사이트를 준비해 세일을 진행했는데 이 사이에도 온갖 이상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전 시대에는 어떤 새로운 NFT 컬렉션을 민팅 한다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판매되고 가격이 오르던 시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결코 그렇지 않으며 NFT 자체의 효용이 종종 의심 받는 상황에서 아무리 크립토 게임의 전통에 따른다 하더라도 NFT를 민팅하는 행동은 굉장히 부담스러웠습니다. 미래에 우리가 계속해서 빌드를 만들어 NFT에 효용을 부여하고 이전 시대에 조금은 무책임하게 뿌려진 NFT들의 쓸모를 바로 우리가 만들어낼 작정이지만 정작 우리들 스스로가 판매한 NFT가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면 잠재적인 고객들에게 관심을 받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이런 시장 상황 속에서 세일을 실패하지 않기 위해 정말 정말 정말 정말 다양한 준비와 노력을 했습니다. 그냥 NFT 생성해 민팅하고 빌드 만들 생각만 했다가 아주 호된 경험을 했는데 현대에 성공적인 NFT 세일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비개발 측면에서 정말 대단한 노력이 필요하고 그런 노력을 옆에서 본 것 만으로도 배울 점이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현대의 NFT는 이제 생성형 이미지나 어떤 쓸모를 제시하는 텅스텐 큐브 사례의 연장으로 쓸모를 제공해야 했고 우리는 NFT 세일 후 내부 마일스톤이 종료되는 대로 NFT 홀더를 대상으로 한 소규모 빌드 공개 행사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처음부터 NFT 세일을 포함한 마일스톤 계획은 마일스톤이 끝나면 NFT 세일이 끝나 있을 예정이니 이에 맞춰 홀더를 대상으로 빌드를 공개하는 겁니다. 이번 마일스톤 마감은 지난번과 기능 상으로는 크게 차이 나지 않았지만 지난번에는 시연 수준에 대응했다면 이번에는 서비스 수준에 대응해야 했기 때문에 겉모양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이를 준비하는데 든 비용은 훨씬 높았습니다.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개발 시간에 근거해 이전 마일스톤과 비교해 보면 같은 한 마일스톤임에도 훨씬 높은 비용이 소요되었습니다.
자. 여튼 그래서 이런 생각과 준비 끝에 NFT 세일이 끝났고 한국 시간으로 홀더 테스트 전 날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