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워페어 싱글플레이

(2019-11-30)

사실 이번 모던워페어는 그냥 넘어갈 작정이었습니다. 그들이 일인칭 슈터 게임의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낸 것은 맞지만 이제 오래전 이야기이고 지난 10년 이상을 지나오면서 싱글플레이 기준으로는 배경과 이야기가 바뀌는 것 이외에 - 물론 이것도 굉장하지만 - 주목할만한 점은 적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다가 추천을 보고 그래도 한번은 해보고 지나가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풀 프라이스 치고는 예상보다 훨씬 싼 가격 - 4만5천원 - 을 보고 해보고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모던워페어가 일인칭 슈터 장르에 만들어냈다고 생각하는 새로운 규칙 몇 가지가 있습니다. 단순한 싱글플레이 레벨과 동선, 계속해서 공격이 일어나는 전장의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 뉴스에서 삼인칭으로만 보던 일이 나에게 일인칭으로 일어나는 경험 같은 것들입니다. 이들이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건 아니고 모던워페어라도 어쨌든 그 앞에 시리즈가 몇 개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일입니다. 결론 먼저 이야기하면 이번 모던워페어는 이전 모던워페어가 구축해낸 이 특징을 빠짐없이 잘 이어받았습니다.

단순한 싱글플레이 레벨과 동선

일인칭 슈터 장르가 처음 생길 때는 크게 두 가지 플레이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압도적으로 강력한 적들을 피해 레벨 곳곳으로 숨어다니며 점점 강해지는 것, 다른 하나는 압도적으로 강력한 내가 레벨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적들을 쓸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레벨은 넓고 복잡한 여러 구획으로 나눠져 있었으며 공간 하나하나를 놓치고 지나치지 않도록 퍼즐 역시 넓은 레벨의 구석구석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적들을 다 처치하고 나가는 문에 도달했지만 레벨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열쇠가 없으면 다음 레벨로 진행할 수 없는 식입니다. 내가 다 쓸어버려 아무도 없는 레벨을 여기 저기 헤매며 내가 놓친 장소를 찾아다니는 플레이는 방금 전까지의 격렬한 전투에 비해 외로움마져 느껴졌습니다.

이에 비해 모던워페어의 레벨은 훨씬 단순합니다. 모던워페어 이후의 일인칭 슈터 게임의 레벨디자인을 비꼬는 단일 동선과 컷씬으로 구성된 레벨디자인 이미지가 돌아다니곤 하는데 오래된 시대의 같은 장르 게임과 비교될만 하지만 이 게임이 플레이어들에게 주고자 하는 경험이 뚜렷한 관계로 그리 비꼬기만 할 특징은 아닙니다. 플레이어는 전장의 분위기를 느끼며 전진하기만 하면 됐습니다. 적들은 항상 진행방향에서 나타나고 AI 플레이어들이 서로 충알을 주고받으며 상황을 만들어냅니다. 이번에는 AI 플레이어들의 전투 속에 전투 양상이 바뀌기도 합니다. 내가 힘을 보태지 않으면 좁은 골목의 전선이 점점 내 쪽으로 밀려오기도 하고 처음부터 내가 적극적으로 강하게 나가면 아예 전선이 골목으로 들어오지 않기도 합니다.

이런 경험을 하는데 동선이 복잡해지거나 동선에 따른 전략적 선택을 요구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나침반을 보고 방향에 맞춰 길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게임이 진행되면 됩니다. 목적에 충실하고 그 이외에 신경을 끄게 만들어줬습니다.

일인칭으로 겪는 경험

일인칭 게임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항상 삼인칭으로 보던 경험을 일인칭으로 하게 해줍니다. 이런 경험을 잘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충격적으로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가령 전작에서는 시작부터 자동차에 실린 채로 끌려가 총살당하는 체험이나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가족들을 찍어주다가 폭탄테러의 희생자가 되는 체험, 한명씩 확인사살하며 내게 다가오는 압도적이고 또 나에게도 원한이 생긴 적을 무력한 상태에서 바라보고 또 구덩이에 던져져 불타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험은 뉴스에서 카메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것을 아예 지리적으로도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거나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다른 게임에서도 내가 대상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는 내가 바로 그 대상이 될 뿐 아니라 그 경험을 일인칭으로 체험시켜줍니다.

이번에 기억에 남는 체험은 러시아군에게 밀리다가 트럭 뒤에 실려있던 익숙한 통 그림을 내가 트럭 뒷문을 직접 열어 보게 만들기, 집안을 찾아다니는 학살자를 피해 침대 밑과 환기구를 기어다니는 경험, 도살자의 자백제에게 빈 총을 겨누고 있었지만 막상 나는 빈 총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방아쇠를 당기도록 유도되지만 실은 위협 이상의 행동을 할 수 없던 장면, 감옥에서 탈출하다가 화장실 칸막이 아래 숨어 한 칸 한 칸 수색해오는 병사를 피해 바닥을 기어다니는 장면 등입니다. 마지막 사례와 비슷한 경험은 이전에 팬텀 페인에서 겪었었는데 그쪽도 훌륭하지만 이쪽의 일인칭 경험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자백제에게 권총을 겨누는 장면은 이 게임의 싱글플레이에서 줄 수 있는 가장 극적인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이 게임이 이런 장치를 대표적으로 사용한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확실히 이런 체험을 여전히 훌륭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세련된 튜토리얼

한동안 타임라인에 모바일 게임의 한심한 튜토리얼 이야기가 지나가는 것을 봤습니다. UI를 다 막아놓고 버튼 하나만 하이라이트하는 식의 튜토리얼이 불편할 뿐 아니라 플레이어에게 제대로 정보를 전달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첫 모던워페어에서는 튜토리얼 스테이지에서 난이도를 결정하는 과정, 칼을 쓰는 방법 등을 세련된 방법으로 알려줬습니다. 거기에 튜토리얼의 일부를 게임에서 밈으로 사용하기도 하고요.

이번 모던워페어에서 인상에 남는 점은 하디르가 만든 스나이퍼라이플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부분이었습니다. 조준경을 통해 표적을 바라보는 방법, 바람 방향에 대응하는 방법을 게임 오브젝트만으로 훌륭하게 설명해줍니다. 표적 역시 레벨에 원래 배치되어 있던 것 이외에도 무전을 통해 사람이 표적을 들고 이동하는 장면을 보여줘 조작에 익숙해지게 만들고 또 무전을 통해 말로만 표적을 언급하지 않고 직접 표적을 눈으로 보고 익숙해지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실제 전투가 시작된 뒤에도 무리 없이 플레이를 할 수 있었고 잠깐이나마 내가 좀 잘 쏘는건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는데 세련된 튜토리얼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쉬운 점

개인의 즉각적인 경험에 집중하는 게임의 특성 상 단순한 동선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또 단점이기도 합니다. 게임은 멀티플레이가 핵심이기 때문에 싱글플레이에 이 이상의 비용을 사용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싱글플레이의 다시 플레이할 이유는 적은 편입니다. 난이도를 올려 적들이 더이상 나를 봐주지 않게 하고 나중에는 인터페이스를 숨겨 남은 탄환 수를 세며 플레이하는 정도가 한계입니다. 단순한 레벨이라도 이전과 다른 경로를 시도해볼만한 요소는 없거나 거의 없습니다.

그런 간단한 레벨이지만 진행방향을 지시하는 요소가 무전과 나침반 뿐이라는 점은 아쉽습니다. 가령 언처티드 시리즈에서 플레이어를 무의식적으로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는 몇몇 장치를 사용했습니다. 모든 플레이어들이 이런 장치에 잘 반응한 것은 아니었지만 게임을 어느 정도 플레이해본 사람들은 곧잘 이런 장치를 눈치챘습니다. 멀리 보이 첨탑, 도로시가 따라가야만 할 것 같은 노란 벽돌길 같은 것입니다. 물론 실제 세계에는 이런 장치가 없고 전장에서 병사들은 길을 잃기 쉽다고는 합니다. 하지만 이런 장치가 거의 없는 환경에서 나침반마저 사용할 수 없는 레벨에서는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제 경우에는 늑대를 잡으로 동굴에 들어갔다가 병사들이 동굴에 불을 질러 여기로부터 탈출하는 부분이 훌륭하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지금까지와 달리 레벨은 수평방향이 아니라 수직방향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나는 연기가 차오르는 압박에 응해 위쪽으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게임은 이런 레벨 구성에 대한 힌트를 충분히 주지 않았고 잠시 헤매야만 했습니다. 나에게 타오르는 불길과 연기가 다가오는 압박 외에 이 레벨이 상하로 길게 구성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장치가 있었으면 덜 불편했겠단 생각입니다.

굳이 하나 더 트집을 잡자면 어린 파라 집에 쳐들어온 러시아군을 피하는 장면. 이 공간은 주인공의 집입니다. 바깥의 가스 공격을 피해 집에 돌아온 겁니다. 제 기준에서 집은 익숙한 공간이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군인을 피해 바닥을 기어다니며 제가 느낀 감정은 이 공간은 전혀 익숙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러시아군은 이런 비슷한 집 여러 곳을 같은 방법으로 돌아다녔기 때문에 오히려 플레이어인 나보다 공간에 익숙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플레이어인 나는 이 집에 처음 와봤고 내 집이라는 느낌을 아예 받지 못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적을 피하는 경험을 했고 이 경험이 제작자들이 의도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결론

이 게임은 일인칭 슈터 장르에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낸 바로 그 게임의 후속작입니다. 전작이 새롭게 만들었던 규칙들을 잘 이어받았고 현대에 요구할만한 수준까지 잘 끌어올렸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전작으로부터 1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면서 이제 저기도 사람이 게임 만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