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가는 인상적인 경험

어느 날 좋아하는 게임 인트로를 듣다가 이를 공유하고 영상을 찾아 봤습니다. 살아 오면서 여러 게임을 플레이 하며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책이나 영화 같은 매체 역시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직접 하기 쉽지 않거나 경험을 했을 때 그 책임이 너무 큰 일들을 대신 체험할 수 있게 해 줍니다. 하지만 책은 머릿속 상상으로, 영화는 모니터나 스크린 안쪽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 체험하게 해줄 뿐입니다. 이와 비교해 게임은 역시 영화와 비슷하게 모니터 안쪽에서 사건이 일어나지만 그 세계 속의 저 자신을 간접적으로 조종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고 조종 결과에 따라 모니터 속 세계가 반응하는 방식을 통해 간접적이고 또 직접적으로 게임 속 사건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바이오쇼크 인피니트는 게임을 통해 경험한 여러 세계에 대한 체험 중에서도 기억에 남을 만 한 강한 인상 깊은 체험을 하게 해 주었습니다. 우선 이 게임은 바이오쇼크 시리즈의 세 번째 게임으로 이전 시리즈에서도 독특한 세계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바이오쇼크 인피니트에서도 이전 게임에서 봐 온 세계와 약간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배경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체험하게 해 주었을 뿐 아니라 여느 게임에서 경험하기 쉽지 않은 스토리를 통해 게임을 플레이 해 감에 따라 누군가 제 뒤통수를 노리다가 진실을 알게 된 순간 바로 그 뒤통수를 갈겨 버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 게임은 전작들에서 슈터의 핵심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는 나름은 새로운 시도였겠지만 핵심으로부터 멀어질 때마다 게임이 플레이어를 귀찮게 한다는 느낌을 종종 받았는데 그런 부분을 효과적으로 제거해 장르의 핵심에 집중한 것처럼 보인다는 점 역시 마음에 듭니다. 전작들에는 종종 퍼즐 메커닉이 등장하는데 게임 진행 상 퍼즐의 등장이 납득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종종 급한 진행 앞에 퍼즐이 나타나면 귀찮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이오쇼크 세 번째 게임에서는 이런 퍼즐을 들어내고 마치 사이버펑크 2077의 패치에서 BD 플레이를 제거해버린 것처럼 만들었는데 이 사실을 게임 상에서 표현하는 방식 역시 훌륭합니다. 고장난 엘리베이터를 고치기 위해 제어판을 뜯자 전작에서 봐 온 익숙한 퍼즐이 나타났는데 실망한 마음으로 그 퍼즐과 다시 상호작용 하면 그 퍼즐 패널을 떼내고 그 안에 있는 선을 연결해버리며 이 게임에는 더 이상 이런 퍼즐이 없음을 유쾌하게 선언해 버립니다.

이 게임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받아 이후 비슷한 고민을 해야 할 때 기준이 되어 준 부분은 바로 게임을 처음 시작해 몇 분에 걸쳐 이어지는 경험입니다. 게임마다 자신들의 가상 세계에 사용자를 진입 시키기 위해 여러 방법을 사용합니다. 게임에 따라서는 오프닝 영상을 통해 어떤 사건을 보여주고 그 사건에 주인공이 휘말리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사용자를 게임 속으로 끌어들이는가 하면 어떤 게임에서는 게임이 진행될 마을로 가는 탈것 안에서 다른 등장인물과 대화하는 장면을 통해 사용자를 게임 속으로 안내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모던 파크라이 시리즈를 생각해보면 5편에서는 경찰의 체포 작전이 실패하고 정신없이 도망치다가 물에 빠져 죽을 뻔 하지만 누군가의 도움으로 다시 깨어나 게임을 시작하기도 하고 6편에서는 독재자의 인간 사냥으로부터 도망친 주인공의 배가 침몰하고 간신히 해변으로 밀려와 살아 남은 주인공이 정신을 차리며 게임을 시작합니다. 이런 비슷한 장치들은 사용자를 갑작스레 게임 속 세계로 떨어뜨려 급하게 적응하도록 만드는 대신 심리 상태를 준비 시켜 게임 속 세계에 떨어뜨려도 자신의 역할을 이해하고 게임 속 세계의 규칙에 따라 행동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바이오쇼크 인피니트는 처음에는 아무 설명 없이 어느 밤 바다 위를 나아가는 나룻배 위에 탄 주인공에게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들려주며 시작하는데 이 상황 자체만 놓고 보면 그리 친절하지 않은 진입 방법이라고 생각할 만 합니다. 물론 이 시점에 이미 여러 트레일러 영상을 통해 이게 무슨 게임이고 어떤 세계가 기다리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세계에 들어가는 방법은 그리 세련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배에서 내려 등대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부터 이 생각은 꽤 성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바이오쇼크 인피니트의 인트로를 체험해 보면 처음에는 배 위에서 앞으로 잠깐 동안 해야 할 일을 게임 속 등장인물을 통해 설명해 주고 배에서 내려 등대 안에 들어가는 행동을 통해 여기부터 뭔가 시작될 거라는 느낌을 받게 해 줍니다. 등대 안에는 전작들을 플레이 해 봤다면 익숙할 만한 상징들이 늘어서 있지만 한 층 씩 위로 올라감에 따라 앞으로 뭔가 큰 일이 일어날 거라는 힌트를 서서히 추가하고 등대 정상에 올라간 순간부터 게임은 아직 주인공을 게임의 주요 사건이 일어날 세계로 아직 데려가지 않았으며 지금부터 그 세계를 등장 시키겠다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게임의 핵심으로부터 종종 멀어지는 경험을 하게 만드는 퍼즐 요소를 이번에는 배제하겠다는 선언을 위에서 설명한 고장 난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등대를 작동 시키는 장면에서 이미 선언한 것 같기도 하네요.

등대를 작동 시키고 온 세계가 등대의 부름에 응답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순간에도 뭔가 거대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아직 게임 속 상황은 그럴 것 같아 보이지 않는데 의자에 앉는 순간부터 이야기 전개가 갑자기 빨라지며 주인공을 한 방에 두꺼운 구름에 가린 별로 대단할 것 없는 세계에서 순식간에 찬란한 태양이 빛나는 놀라운 세계를 향해 말 그대로 ‘날려' 보냅니다. 여러 게임이 게임 속 주인공을 게임 속 가상 세계로 이동 시키고 사용자로 하여금 이 상황을 납득하고 동의하게 만드는 장치를 갖추고 있지만 바이오쇼크 인피니트 처럼 주인공을 순식간에 말 그대로 하늘로 쏘아 올려 게임 속 세계로 이동 시키고 이 상황을 납득 시키며 이 세계의 주요 규칙을 처음으로 주인공 캐릭터를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만들 때까지 효과���으로 주입하는 게임은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어두운 등대 위에서 말 그대로 하늘로 쏘아 올려진 주인공은 순식간에 콜롬비아에 도착하고 게임 속 세계에 도착했음을 정확히 알려주는 소리, 그리고 상승이 멈추고 아래로 떨어지며 세계의 핵심 메시지를 게임 속 장식을 통해 받아들이게 됩니다.

일단 콜롬비아와 마주한 순간부터 게임은 다시 두 단계에 걸쳐 게임 속 세계를 주인공 앞에 펼쳐 놓는데 우선 등대에서 발사된 주인공이 처음으로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움직일 수 있게 되는 순간 눈앞을 장식한 컴스탁의 말로 시작한 다음 예배당에서 또 한번 죽을 위기를 거쳐 예배당 안뜰에서 다시 깨어나 예배당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여는 순간에서 다시 한 번 시작해 게임 속 세계를 펼쳐 놓습니다. 이 수법은 게임 역사상 어느 게임과 비교해도 마땅한 사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한데 종종 그저 게임 속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보여주고 알아서 그 사건에 이입할 것을 요구하는 방식의 시작에 익숙해져 있다가 이렇게 한 단계 씩 감정을 고조 시켜 그 절정에서 이제 게임 속 가상 세계에 도착했음을 이 정도로 정교한 체험을 통해 말하는 경우는 정말 드뭅니다.

개인적인 게임 경험 안에서는 둠 리메이크 도입부에 뚜껑이 열린 관 안에 누워 있던 주인공이 화들짝 놀라 깨어나 주변에 있던 괴물을 대강 손으로 찍어 죽인 다음 슬레이어의 수트를 발견하고 마지막으로 헬멧을 손에 들어 가볍게 뒤집어 쓰는 장면과 함께 브금이 바뀌는데 이 순간 모니터 밖에서 주인공의 행동을 구경하고 그 일부를 조작한 저 역시 헬멧에 비친 숫자가 사라지고 화면이 다시 밝아지며 브금이 바뀌자 마우스를 쥔 손을 다시 확인하고 자세를 고쳐 앉았으며 얼굴을 약간 찌푸리며 슬레이어가 하고 있을 법한 표정을 지었는데 이 경험 정도를 제외하면 화면 바깥에 있는 사용자를 가장 훌륭하게 게임 속 세계로 옮기고 이를 사용자에게 확실히 인식 시키고 또 동의를 얻는 훌륭한 사례입니다.

자기 전에 들은 음악 하나 가지고 갑자기 주절거려 버렸는데 혹시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기억에 남는 게임 인트로 경험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