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게임 경험과 현재 게임 경험의 차이
어느 날 타임라인을 훑다가 오래된 게임 경험을 추억 하는 글을 봤습니다. 게임으로부터 마치 그 세계에서 내가 살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죽음과 세금은 로드 브리티시가 해결해 주지만 그 이외의 모든 것을 내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세계였습니다. 마을 밖에 나가는 순간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위협적으로 변해 세계 속에서 내가 차지한 위치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나를 세계의 영웅으로 칭송하지 않았습니다.
마을과 마을 사이를 오랜 시간을 들여 직접 걸어가며 날이 저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불을 피워 주변만 간신히 밝힌 채로 야영하고 밤길에 등불을 든 다른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는 감정을 느끼던 세계였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그 불빛이 과연 사람인지 아니면 나를 위협하는 다른 누군가인지 확실하지 않아 어둠 속의 상대에게 긴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UO를 플레이 하며 느낀 여러 경험과 감정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경험을 했던 사람들은 여러 감정을 현대에 다시 추억하는 것은 꽤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그 추억은 분명 지금보다 더 즐겁고 따뜻하고 애틋하며 그리운 그 뭔가가 있었습니다.
현대에 느끼는 비슷한 장르 게임들은 어떨까요. 같은 장르가 아니더라도 비슷한 경험을 주는 게임들이 간간히 나타났습니다. 테라리아에서, 마인크래프트 자바 버전 초기에, 노맨즈스카이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오랜 시간 플레이 하지 않아 이 목록에 넣을 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발헤임도 비슷한 경험을 줬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과거 UO와 같은 장르는 아닙니다. UO와 같은 장르 게임들은 어떨까요. 모바일 환경으로 넘어오면서 이 장르 게임들은 이전의 복잡도를 유지하지만 조작은 훨씬 단순하게 만든 형태로 변했습니다. 시간이 흐를 수록 고객들이 게임으로부터 주로 원하는 감정 역시 앞에서 이야기하던 경험에서 성장 경험과 성장에 의한 세계 속에서 효용을 중시하는 형태로 변했습니다.
마을과 가까운 어두운 숲에서 몬스터와 싸우며 점차 강해지지만 이 숲은 그다지 위험한 곳은 아닙니다. 몬스터는 끊임 없이 나타나지만 위협적이지 않고 나와 같은 행동을 하는 다른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몬스터와 싸우고 있습니다. 내가 때릴 몬스터를 멀리서 공격하는 다른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만난 빛처럼 반가운 존재라기보다는 내 플레이를 방해하는 귀찮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아예 없어서는 안됩니다. 이들은 세계 속에서 성장의 효용을 담당합니다.
모바일 환경에서 복잡도를 유지하되 조작을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 처음으로 중국에서 시작한 자동전투와 자동퀘스트는 이 장르 게임 플레이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우리가 게임에 요구하는 것은 경험 자체인가 아니면 경험에 의한 결과인가를 놓고 오랜 시간 토론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도 상업용 게임을 개발하는 입장에서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냈는데 이 게임들은 비슷한 장르이지만 이전의 게임 경험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전 시대에는 경험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성장의 결과로부터 얻는 감정이 더 중요합니다. 이전 시대 게임 경험이 있는 고객들은 현대의 게임 경험을 받아들이지 못하곤 합니다. 당연합니다. 경험을 중시하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끔 이전 시대에 플레이 하던 경험을 중시한 게임으로부터 느끼던 감정과 경험을 현대에 다시 느낄 수 없을지 생각해 보곤 합니다. 누군가는 이를 과거의 그 게임을 다시 플레이 해 보거나 비슷한 게임을 현대에 다시 만들려는 시도를 하기도. 하지만 이런 시도는 항상 실패로 끝납니다. 과거의 게임 경험은 그 게임, 그 게임을 플레이 하는 나, 나를 둘러싼 환경이 합쳐진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이들 중 게임만 가져오거나 현대 기술로 재해석한 비슷한 게임을 만든다 하더라도 그 게임을 플레이 하는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을 재현할 수 없기 때문에 과거의 그 경험과 감동을 재현할 수 없습니다.
이전 시대의 나는 게임에 집중할 체력과 시간이 있었고 게임에 집중할 멀티태스킹이 거의 불가능한 게임 환경과 게임에 집중을 방해할 다른 요소가 훨씬 적었습니다. 현대의 나는 여러 알림으로부터 방해 받고 Alt+Tab을 눌렀다 돌아와도 게임이 뻗을 걱정이 별로 없는 환경을 사용할 뿐 아니라 메신저, 영상, 책 등 집중을 방해할 요소가 널려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과거의 환경과 과거의 나 자신을 요구하는 게임을 현대에 다시 플레이한다고 해도 이전과 같은 감정을 느낄 가능성은 없습니다.
고객들은 과거를 추억하고 현대의 개발 회사들을 욕할 수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우리들 스스로도 고객 입장에서는 똑같이 행동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을 개발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시각을 가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과거의 경험은 게임 그 자체, 게임을 플레이 하는 나 자신, 나를 둘러싼 환경 세 가지 요소가 관여하며 이들 중 하나일 뿐인 게임을 현대 관점과 기술로 개발하더라도 예상하던 감정을 줄 수 없습니다. 현대에는 현대의 고객으로부터 요구 받는 결과를 개발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