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아는 말로 설명하지 말아요
지난 파크라이5 플레이에 이어 파크라이 뉴던을 플레이 하고 있습니다. 평이 썩 좋지 않아서 각오했지만 게임의 이곳 저곳은 기대와 상당히 달랐습니다. 특히 게임의 주요 행동들을 특성으로 분류한 점은 마치 MMO 팀에서 주니어 게임디자이너에게 플레이 시나리오 디렉션 없이 특성 시스템을 디자인 시키면 나올 것 같은 결과였습니다. 문서 상으로는 그럴 듯 하지만 실제로 플레이 해보면 어처구니 없을 때가 많습니다. 가령 전작에서 그래플은 고저차가 큰 지형을 빠르게 이동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이 그래플이 특성으로 분류되어 특성을 찍지 않으면 사용할 수가 없는데 레벨디자인은 여전히 그래플을 사용할 것을 예상해 디자인 되어 있습니다. 또 눈앞에 그래플을 사용하라는 시각적인 신호가 있는데 이 앞에서 인터랙션을 해도 그래플이 사용되지 않을 때 진행을 극도로 불쾌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이 특성은 오늘 이야기하려는 불쾌한 경험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늘은 파크라이 뉴던의 퀘스트를 진행하며 느낀 ‘게임이 저 혼자 흥에 겨운’ 경험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퀘스트를 만들 때 퀘스트 목적을 설명하는 글은 모니터 밖의 유저가 모니터 안의 게임과 인터랙션 하는 언어를 사용해서 설명해야 합니다. 가령 정해진 장소까지 이동하라, 아이템을 집어라, 정해진 인물과 이야기하라, 대상과 전투해서 승리하라, 대상이 죽지 않도록 해라 등이 있습니다. 간단해 보이지만 퀘스트를 검수하다 보면 이 규칙을 간단히 무시하는 경우가 나타납니다. 가령 ‘누구와 대화하라’ 대신 ‘무슨 일인지 알아보자’ 같은 목표가 무심하게 사용됩니다. 전자는 사용해도 괜찮지만 후자는 저렇게 써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없다면 사용해선 안됩니다. 퀘스트 목표를 읽고 뭘 하라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자’라는 텍스트는 모니터 밖의 유저가 이 퀘스트의 내용을 퀘스트를 작성한 본인만큼 집중해서 잘 이해하고 있으며 퀘스트를 작성한 본인이 가진 사고의 흐름을 그대로 따르고 있을 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퀘스트를 작성하는 입장에선 모니터 밖의 유저가 그렇게 퀘스트에 관심을 가져 줄 거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심지어 퀘스트에 신경 쓰는 유저 조차 잠깐만 집중을 잃으면 게임과 인터랙션 하는데 사용하는 언어가 아닌 언어를 사용하면 목표를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누구와 대화하라’라고 써야 합니다.
파크라이 뉴던 퀘스트는 이를 지독할 정도로 무시하는데 오늘 경험한 것 중 최악은 ‘알맞은 위치를 발견하고 부적과 연관시키십시오’였습니다. 여태까지 모니터 밖의 제가 이 게임과 인터랙션 하는 방법은 주로 누굴 죽여라, 어디까지 이동해라, 누구와 대화하라, 탈것을 어디까지 운전하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위치를 발견’하고 ‘부적과 연관’시키라는 말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제가 이 게임의 스토리 진행에 완전히 몰입해 핵전쟁 이후 17년만에 만난 조셉 시드의 환영이 나에게 건네준 빛나는 조각 - 부적 - 을 어둠속에 저 멀리 빛나는 상징의 빈 공간에 맞춰 온전한 문양으로 만들라는 퀘스트 제작자의 목적을 쉽게 이해했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퀘스트 제작자가 의도한 만큼 게임에 몰입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 시점까지 게임의 어느 부분에서도 ‘무엇과 연관'시키라는 인터랙션 방법은 나온 적이 없었습니다. 게임 상에서 이것 저것 만져보다가 힌트를 얻기는 했지만 퀘스트 제작자가 자기 혼자 흥에 겨워 모니터 밖의 나에게 충분한 설명 없이 혼자 흥에 겨워 만든 퀘스트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불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