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중간한 간편설정
전통적인 모바일 튜토리얼과 인터페이스의 충돌 사례에서 리니지W 인터페이스 디자인 철학과 전통적인 모바일 게임 튜토리얼이 이 철학을 고려하지 않아 생긴 결과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간편설정도 비슷한 문제가 있는데 한창 리니지 시리즈를 복제하려고 할 때는 잘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한동안 모바일 게임을 쉬었다가 다시 시작해보니 이런 점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제 관점에서 리니지W의 간편설정은 편리하지도 않고 또 안전하지도 않은데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간편설정은 근본적으로 게임의 ‘설정’ 메뉴까지 가지 않고서도, 또 설정의 수많은 탭 중 원하는 탭을 찾고 또 그 안의 수많은 설정을 스크롤 하는 일을 좀 줄이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 하면서 자주 변경할 것 같은 설정을 모아 놓은 곳입니다. 이 곳에 모인 설정을 살펴보면 물약을 자동으로 사용할지 여부, 자동으로 사용한다면 어느 시점에 사용할지 설정, 자동사냥을 돌릴 때 주변의 어느 정도 범위 안에서 적을 검색할지, 다른 캐릭터가 이미 공격 중인 몬스터를 공격할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고 또 절전모드 시작 버튼이 이 안에 있습니다.
뒤쪽부터 설명하면 절전모드 시작 버튼은 바깥에 있으면 안되기 때문에 이 안에 있습니다. 절전모드 버튼이 인게임 HUD에 붙어 있으면 필드 PvP를 할 수 있는 이 게임에서 잠깐의 실수로 치명적인 결과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온 감각을 동원해 남은 체력을 살피며 한 손을 순간이동 주문서 위에 올려놓고 있는데 옷자락이 스쳐 절전모드 버튼을 터치하는 순간 나는 이미 죽어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절전모드 버튼은 자주 사용하지만 절대 바깥에 나와 있으면 안됩니다. 이는 절대로 전투 화면을 가리면 안된다는 리니지의 UI 설계 철학과도 일치합니다. 하지만 물약 설정이나 매너모드, 탐색거리 옵션은 의문을 품게 만듭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 물약 사용 시점을 달리 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만만한 필드에 돌아가 자동사냥을 돌린다면 굳이 물약을 타이트하게 사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한 50% 정도에 걸어놔도 웬만해서 물약 쓸 일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보다 타이트한 상황이라면 물약 사용 시점을 조절해야겠죠. 그런데 최고로 타이트한 상황에 대비해 ‘PvP 시 물약 자동사용 조건 100%’라는 옵션이 분리되어 있습니다. 이 옵션이 있는 이상 물약 사용시점 설정은 한 번 설정해 놓으면 영원히 손 댈 일이 없는 옵션으로 바뀝니다. 나머지 옵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간편설정은 도입 초기에는 분명 복잡한 설정 안에 들어가지 않고서도 주요 전투 설정을 바꿀 수 있는 인터페이스였을 겁니다. 리니지의 UI 설계 철학에 따랐을 거고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 자동전투 및 자동퀘스트 메커닉이 발달하고 또 절전모드가 필요해지는 시점을 지나며 이 옵션들은 한 번 설정해 놓으면 더 이상 손 댈 일이 없는 옵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자주 열 필요가 없어졌고 동시에 절대로 화면을 가리지 않도록 설계할 필요도 줄어들었습니다. 여기에 자주 사용하는 절전모드 버튼을 큼직하게 붙여 지금의 어중간한 간편설정 팝업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간편설정은 더이상 간편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한번 설정해 놓으면 영원히 손 댈 일이 없습니다. 마지막 남은 의미 있는 메뉴는 절전모드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