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동이동 메시지에 남은 거리를 표시하나요?
바로 이전 인터랙션 버튼의 위치와 비슷하게 디아블로 이모탈을 하다가 리니지W를 시작했더니 또 금새 눈에 띄는 특징이 있습니다. 디아블로에서는 자동퀘스트를 통해 이동할 때 이동중이라는 메시지만 나타나지만 리니지에서는 남은 거리가 함께 표시됩니다. 실은 남은 거리를 표시하는 쪽이 국내에서 모바일 MMO를 개발하고 플레이 하는 입장에서는 더 익숙하고 디아블로에서 이를 표시하지 않는 쪽이 더 특수한 사례로 느껴집니다. 어쩌면 디아블로에서는 지난번에 이야기한 쿨한 길찾기 궤적 사례처럼 남은 거리 표시 역시 쿨하게 처리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특히 존 방식 게임에서 남은 거리를 표시하는 것은 꽤 골치아픈 문제입니다. 심리스 게임이라면 약간 부담 될 수 있지만 그냥 목적지까지 거리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존 방식 게임에서는 같은 존 안에서만 그럴 수 있습니다. 퀘스트 대부분은 같은 존 안에서 플레이 하도록 디자인하지만 썩은 습지에서 플레이하던 퀘스트를 가진 채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다음 퀘스트가이드를 터치해 자동이동을 시작하면 목적지까지 거리를 계산하기 아주 까다롭습니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지금 메모리에 올라와 있지 않은 존에 대한 거리 계산을 시도해야 합니다. 존 방식 게임들은 꼼수를 쓰는데 다른 존에 있는 대상을 향해 자동이동을 할 때는 거리를 표시하지 않다가 대상과 같은 존에 도착한 시점부터 거리를 표시합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현재 플레이어의 위치에서 현재 존 출구까지의 거리와 목적지까지 이동하는데 거쳐야 하는 모든 존의 입구 및 출구까지의 거리의 합계, 그리고 마지막 존에서 최종 목적지까지의 거리를 합친 숫자를 보여주는 방법이 있습니다. 경로 상에 있는 존의 입구에서 출구까지의 거리는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미리 측정한 값을 가지고 있다가 요청을 받으면 거리를 계산하는 대신 미리 측정한 값을 사용합니다. 레벨디자이너의 작업에 따라 이 값들이 바뀔 수 있어 CI를 통해 빌드할 때 이 값들을 새로 구합니다.
그건 그렇고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를 표시하지 않는 게임은 그렇다 치고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를 미터 단위로 세밀하게 표시해 주는 게임은 왜 이 숫자를 표시하는 걸까요. 이 숫자가 있으나 없으나 결국 목적지에는 도착할 테고 퀘스트를 진행하는데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요.
이 숫자는 목적지에 도착하는데 남은 시간을 갈음한 것입니다. 여러 상황에 따라 게임 상에서 다음 이벤트가 일어날 때까지 남은 시간을 정확하게 표시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동 시간입니다. 특히 필드에서 이동 시간은 온갖 이유에 의해 부정확해지기 쉽기 때문에 목적지에 도착하는데 걸리는 남은 시간을 표시하는 대신 약간 오차가 생겨도 큰 무리가 없는 남은 거리를 표시합니다. 이 값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게임에 따라서는 목적지에 가까워지면 남은 거리 표시를 없애기도 합니다.
그러면 다시 의문이 생길 겁니다. 시간을 거리로 갈음한 표시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러면 애초에 왜 이 값을 표시하는가. 이 장르는 투입한 시간이 곧 성장의 척도이기 때문에 시간에 민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게임에서 가장 이상적인 자동퀘스트 플레이는 퀘스트가이드에 별도로 분리된 순간이동 버튼을 사용해 퀘스트를 진행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목적지에 따라 항상 순간이동을 사용할 수 있지도 않고 플레이어캐릭터의 상황 상 순간이동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도 있습니다. 이때는 목적지까지 직접 걸어가야 하는데 이 상황에서 시간에 민감한 플레이어들에게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남은 시간을 거리로 갈음해서 표시해야 합니다.
이전의 다른 설명에서도 조금씩 언급했지만 강한 경쟁을 유발하는 현대 모바일 게임의 플레이어들은 시간에 민감하며 게임의 여러 구성요소는 이 특성을 감안해 설계합니다. 남은 거리 표시는 작은 예일 뿐이지만 게임의 다른 구성요소를 설계할 때도 이 원칙에 기반해서 설계하면 게임 전체가 플레이어에게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목적에 맞는 플레이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