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MMO UI 설계의 어려움
대충 아이팟 터치를 한국에서 구입해 사용하기 시작한 시대부터 지금까지 시간이 꽤 흘렀고 모바일 앱 인터페이스를 제법 많이 보고 또 제법 많이 사용해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앱을 사용해보고 공부하고 또 내 일에 반영하려고 노력해봐도 모바일 게임 인터페이스를 만들기 어려웠습니다. 이전부터 어려웠고 지금도 한창 어려워하는 중입니다. 미래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남들이 만든 앱을 보면 꽤 많은 정보를 한 화면에 잘 구겨넣기도 하고 또 굳이 한 화면에 보여줄 필요가 없는 정보를 상황에 따라 잘 정돈해서 보여주곤 하는데 우리가 만들고 있는 게임은 항상 이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들이 정보디자인 능력이 딱히 떨어지는 것 같지도 않은데 왜 그들이 만드는 앱은 비교적 잘 정리돼 보이는 반면 우리들이 만들고 있는 게임은 런칭이 다가올수록 엉망진창이 되어 가는가, 또 단 한번도 엉망진창인 상태로부터 벗어난 적이 없는지를 생각해봤습니다.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는 우리들이 개발하는 게임 장르가 맨 처음 PC에서 시작되어 발전했는데 이를 모바일에 거의 그대로 가져오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MMO 장르는 처음 여러 사람들이 서버에 접속해서 타이핑하며 플레이하는 텍스트 어드벤처로 시작했습니다. 화면엔 텍스트로 구성된 맵 뷰와 현대에는 채팅창으로 남아있는 조작 인터페이스로만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에 그래픽이 추가되고 맵은 내 아바타를 표시하는 월드 뷰와 이를 간소화한 미니맵으로 분리되었습니다. 여기에 NPC와 대화, 플레이어가 사용하는 스킬, 재화, 플레이어의 성장 현황, 보유한 아이템, 즉시 사용 가능한 아이템 목록, 퀘스트, 엔드컨텐츠 등이 차례로 추가되며 인터페이스는 조금씩 더 복잡해졌습니다. 여기에 더 높은 수준의 플레이를 원하는 고객들은 이전에는 개발자의 정보디자인에 의해 같은 화면에서 볼 수 없었던 정보를 한번에 펼쳐서 보여주는 별도의 프로그램을 사용하기에 이르렀고 개발자들은 이런 형태를 게임 내에 직접 구현했습니다.
이제 웬만한 MMO 게임에서 고객이 동시에 받아들여야 하는 정보는 여러 레이어에 걸쳐 표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인게임에 등장하는 나 자신과 다른 플레이어들의 현재 상태, 그들이 사용하는 스킬, 스킬의 범위와 효과, 지금 받고 있는 대미지와 부가효과들, 바닥에 깔리는 장판, 플레이어들의 움직임과 그들이 걸치고 있는 장비의 종류와 등급들이 모여 한 레이어를 이룹니다. 이 위에 인터페이스가 한 겹 깔려있습니다. 이 장르의 기원으로부터 지금도 이어지는 채팅 메시지, 이 안에 함께 표시되는 게임 내 상황설명, 내 상태와 내가 사용 가능한 각 스킬의 현재 상태, 보유한 아이템, 경험치, 지금 진행되는 컨텐트 이름에 이르기까지 위쪽에 이야기한 인게임 위에 한 겹 덮여 동시에 인식해야 게임을 온전하게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 위에 한겹 더해 이제는 게임 자체에서 지원하는 기능 이상으로 디스코드같은 별도 프로그램을 사용해 함께하는 다른 유저들과 직접 대화하며 정보를 받아들여야 경쟁력 있는 플레이를 할 수 있기에 이릅니다. 이미 이 장르의 게임은 동시에 적어도 세 가지 레이어로 구성된 복잡한 정보를 동시에 인지하며 플레이하기를 요구받습니다. 여기까지는 이 장르 게임을 PC에서 플레이하던 시대까지의 발전사이고 이제부터 이 장르 게임을 모바일에서 플레이하고 싶은 고객들을 위해 게임을 모바일로 옮기면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이 시작됩니다.
모바일 기계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이 기계는 고객이 어딜 가든 따라다닙니다. 화면이 좀더 작고 별도의 입력장치가 없는 모양이 거의 대부분이며 대부분은 꽤 괜찮은 데이터 통신 기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멋진 그래픽을 처리할 수 있는 강력한 프로세서가 들어있고요. 이런 특징 중 위에서 이야기한 세 가지 정보 레이어 중 두 가지 레이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화면 크기입니다. 현대의 모바일 기계는 이전 시대의 PC에 비해 훨씬 해상도가 높지만 실제 크기는 훨씬 작습니다. 이 크기에 적당한 수준의 시력을 가진 사람이 원활하게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수준으로 화면을 구성하면 이전 시대에 화면에 표시하던 정보를 모두 표시할 수 없습니다. 이전에 있던 정보들을 그대로 옮겨오기만 해도 이미 좁은 화면이 완전히 가득 차는데 이 상황도 모자라 모바일에서는 별도 입력장치가 없어 화면을 직접 입력장치로 사용해야 합니다. 여기서 MMO 장르 게임들의 화면이 어느 정도 비슷해졌습니다. 오른손 위주로 사용하는 고객들 위주로 주요 버튼들이 오른쪽 아래에 위치하고 왼손으로 조작할 수 있는 퀘스트, 미니맵, 파티, 채팅 기능이 반대쪽에 배치됩니다. 양 손으로 가리지 않는 화면 중간과 윗부분에는 인게임 플레이와 아이템, 성장 정보, 현재 상황과 미니맵, 채팅을 표시하고요. 이렇게 작은 화면에 이전에 사용하던 ‘거의 모든’ 기능에 더해 입력수단까지 밀어넣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모바일 MMO 게임 인터페이스는 고안하기 어려운 수준을 넘어 구성이 거의 불가능해집니다.
상황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는 고객들이나 우리의 스폰서들이 모바일 기계에서 동작하는 게임의 특성에 맞는 새로운 정보디자인과 이에 따른 게임의 변화를 받아들이는데 큰 부담을 느낀다는 점입니다. 이 장르 게임들은 개발비용이 크고 프로젝트가 실패할 때 견딜 책임의 크기도 큽니다. 때문에 PC 시대부터 오랜 기간에 걸쳐 검증된 모습을 그대로 반복하려고 하고 이는 모바일 기계에서 돌아가는 인터페이스를 구성하기 위해 이전에 검증된 기능과 구성들 중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없는 상태가 됨을 의미합니다. 한동안 출시된 이 장르 게임들은 그 전까지 그나마 지켜오던 가장 작은 텍스트의 한계를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화면 크기가 작은 모바일 기계를 넘어 해상도가 충분하지 않은 기계에서는 아주 작은 글자가 뭉개집니다. 이전 같으면 이런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그나마 가장 작은 인터페이스나 가장 작은 텍스트 크기에 제한을 뒀지만 이제는 더이상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고객들이 실제로 읽을 수 있든 그렇지 않든 화면에 모든 정보를 표시해버리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이런 화면을 만들며 우리들 스스로가 이 화면을 읽기 아주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작게 표시할 정보라면 이제 모바일 기계에서 동작하는 게임의 특성과 이 장르의 게임에 고객들의 요구를 반영해 정보디자인을 조정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전 시대로부터 검증된 MMO 게임의 그 어떤 요소 하나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을 우리들 각각이 가진 작은 권한 조각만으로 협상이 사실상 불가능해 우리들은 여전히 화면을 확대하거나 눈알을 화면에 들이대기 전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 정보들이 쉴 새 없이 입력 버튼들과 함께 반짝이는 게임을 만들어놓고 누군가 결국 이 게임을 PC에서 에뮬레이터를 통해 돌려주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가져봅니다.
이런 식으로 만든 인터페이스는 이 장르가 모바일에 온전히 안착해 모바일에 어울리는 새로운 특성을 얻어 발전하는 과정을 늦출 겁니다. 지금은 MMO 게임 인터페이스가 모바일 기계에 맞는 형태로 발전하기 전의 문제가 누적되는 과정, 과도기가 찾아고기도 전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이 장르가 앞으로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여전히 의미있는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면 분명 한 두 세대 이후의 이 장르는 모바일에서 이전과는 ‘상당히 다른’ 어느 정도 정돈되어 보이고 또 이로 인해 이전과는 굉장히 다른 플레이를 요구하는 장르로 발전할 겁니다. 물론 이 조건과 결과는 서로 반대가 될 수도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