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는 왜 망하고 있나요?

아무리 자신이 있어도, 또 아무리 미래를 볼 수 있었더라도 회사 이름까지 바꿀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러 뉴스를 ���해 메타버스에 돈을 냈던 회사들이 아무 것도 달성하지 못하고 사업을 철수한다는 소식을 접하곤 합니다. 고작 한 두 해 전만 해도 아무 사업에나 메타버스만 붙이면 돈을 받을 수 있었다고 전해지는 분위기와는 달리 시간이 조금 흐르고 보니 아주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던 대로 메타버스가 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왜 사람들이 이 설명할 수 없는 뭔가에 열광하고 사용하기 시작할지 설명할 수 없는 이상 사업에 돈을 내던 사람들조차 설득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것 같습니다.

메타버스라는 키워드가 나타났을 때 이를 최대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며 스스로 이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실제로 메타버스와 비슷한 뭔가를 개발하며 여러 세계 사이에 물건 호환방법을 생각해 보거나 메타버스는 스스로 자신이 메타버스임을 입증할 수가 없다 같은 주제로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여러 사람들이 갑작스레 시장에 나타나 주장하는 메타버스는 적어도 20년 이상 전부터 게임 업계에서 만들어 온 개념과 별로 다르지 않음에도 기존 게임과는 다르다는 주장을 바라보며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또 이해하려고 노력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돈이 사라지고 회사 이름을 바꾼 그 회사마저도 주주들로부터 매 분기마다 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을 지켜 보며 메타버스 키워드에는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또 여전히 메타버스에 발을 담그고 있는 입장에서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설명하겠습니다.

메타버스를 정의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이 말이 기존에 게임 업계가 20년 넘게 만들어 온 가상 세계와 뭔가 다른 점을 억지로 만들어 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아무리 봐도 극도로 초보적으로 만들어진 삼차원 공간일 뿐인데 거기에 기존의 가상 세계와 다른 특징을 억지로 부여하려는 순간 다리도 꼬이고 혀도 꼬이고 손가락도 꼬입니다. 메타버스는 가상세계와 똑같은 말입니다. 게임 업계에서 지난 20년 넘는 세월에 걸쳐 만들어온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가상 세계에는 그 세계의 규칙이 있고 플레이어들은 이 규칙에 적용을 받으며 게임을 플레이 합니다. 이를 가상 세계에서 생활한다고 표현해도 전혀 틀리지 않은데 이 가상 세계가 곧 메타버스입니다. 메타버스는 새롭게 나타난 개념이 아니라 기존 게임 업계가 하던 비즈니스 중 하나를 다른 말로 표현해 이 같음을 구분하지 못하는 투자자들에게 돈을 얻어내기 위한 말입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메타버스라는 말에 그렇게 쉽게 열광했을까요. 전통적인 온라인 게임 업계가 20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도달한 위치에 지금부터 진입하기에는 난이도가 엄청나지만 시각적으로 그와 비슷한 뭔가는 상대적으로 쉬워 보였을 수 있습니다. 게임 개발에 처음으로 돈을 투자하는 주체들이 종종 게임 개발에 예상보다 훨씬 더 큰 고정비용이 들어간다는데 놀라곤 합니다. 대충 사무실 임대하고 책상의자 놓고 컴퓨터 놓고 사람들 월급 주며 한 2년 기다리면 대박을 터뜨리는 제품이 나올 줄 알았는데 갑자기 들어본 적도 없는 온갖 하드웨어와 온갖 소프트웨어를 사달라고 하기 시작하는 데다가 수익을 떼 가는 주체들은 또 왜 그리 많으며 사람들은 왜 그리 쉽게 다른 팀으로 옮겨 가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간단한 방법은 더 많은 돈을 사용하는 것이지만 책상, 의자, 컴퓨터만 사 주면 될 거라고 생각한 입장에서 돈을 더 낼 결정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메타버스는 게임 개발의 그런 어려움을 건너뛰고 손쉽게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완성된 상태에 도달할 수 있어 보입니다. 게임 프로젝트는 반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이는데도 개발팀 전체가 강행군을 하며 앓는 소리를 내는데 비해 메타버스는 레벨 안에 사람들이 동기화된 상태로 돌아다니는 상테에 도달하기만 하면 완성된 상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메타버스 역시 메타버스 추종자들 - 제 스스로도 어느 정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 의 기대처럼 전통적인 게임과 비교할 때 높은 자유도와 상호운영성 따위를 갖추려면 닫힌 규칙으로 동작하는 게임의 가상 세계와 비교해 엄청난 개발 비용이 필요합니다. 이 비용을 듣는 순간 돈이 아무리 많아도 뭔가 예상과 다르다고 느꼈을 겁니다.

메타버스와 가상현실 장치가 서로 연결되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을 겁니다. 아이폰 이후 하드웨어 하나가 시장 전체를 바꿀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곳곳에 있어 왔습니다. 잡스가 죽은지 십 년도 넘었지만 여전히 그가 화면에 펏 번째 아이팟을 띄우고 음악 산업 전체를 바꿨으며 아이맥을 띄우고 컴퓨터 업계 전체를 바꿨고 이제 시장을 바꿀 세 가지 제품을 한 번에 소개한다고 하던 그 순간을 추억하곤 합니다. 어쩌면 가상현실 장치는 아이폰이 이루어 낸 그런 위업에 근접할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그런 장치와 기존 게임 업계의 위치에 한 번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은 메타버스가 함께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이들의 시너지를 평가할 만한 사용 경험이 없더라도 돈을 걸 생각을 해볼 만 한 조합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상현실 장치는 마치 배터리처럼 물리적인 장벽에 부딪쳐 발전을 거듭하고는 있지만 시장 밖에서 보기에는 거의 발전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상태에 도달했습니다. 장치는 여전히 엄청나게 비싸고 장치를 사용하기 위한 설정은 여전히 복잡하며 하루 종일 들여다 보고 나서도 피곤한 눈을 좀 깜빡인 다음 주머니에 넣어 두면 그만인 스마트폰과 비교해 가상현실 장치는 이런 사용경험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가상현실 장치의 발전은 이전 시대에 비해 더 더뎌졌고 가상현실 장치의 흥행에 어느 정도 의존한 메타버스 역시 발전이 더뎌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상세계에는 세계의 목적이 필요합니다. 전통적인 게임 회사들이 지난 20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가상 세계를 만들며 중요하게 여긴 것은 이 가상 세계를 살아가는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플레이어들이 이 세계를 플레이어 한 명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해 자신의 현실 세계의 생활과 함께 이 가상 세계에서 생활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이유가 필요합니다. 가상 세계에서 체험할 수 있는 시청각적 경험, 이 세계의 장대한 역사와 그 역사의 현장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했고 세계 속에서 플레이어 개인이 시간을 투자함에 따라 점점 더 강해지며 더 넓은 세계를 탐험할 수 있고 그런 경험들이 가상 세계 안의 플레이어와 유저 자신의 추억으로 남으며 이런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실제 세계의 다른 유저들이 있었기 때문에 꽤 큰 시간과 비용을 들이면서도 가상 세계의 생활을 계속합니다.

메타버스 업계에서는 가상 세계를 구축해 놓으면 그 안에 플레이어들이 모여들어 가상 새계의 존재 목적이 자생적으로 생겨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학교 다닐 때 친구와 PC방에 가서 처음으로 리니지를 접했는데 그 전까지는 스토리가 있고 게임이 내게 할 일을 권해주는데 익숙해져 있다가 리니지를 접하니 뭘 해야 할 지 잘 알 수가 없었습니다. 친구에게 ‘뭐 해야 함?’ 하고 물었더니 그가 짧게 ‘몹 쳐’ 라고 말했고 저는 마우스로 몹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리니지의 이 경험이 어처구니 없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 메타버스와 함께 생각해보니 리니지는 적어도 몹을 쳐서 내가 강해지는 최소한의 목표가 있는 가상 세계입니다.

반면 메타버스는 정말로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는 완전히 목적이 없는 가상 세계였습니다. 심지어 억지로 만들어 낸 목적 역시 플레이어들을 설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전통적인 게임이 가상 세계에서 용을 때려잡기 위해 강해져야 한다고 설득한다면 설득될 것 같지만 가상 세계에서 전시회를 보고 주민등록 등본을 뗄 수 있다고 하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용은 가상 세계 안에서만 때려 잡을 수 있습니다. 반면 주민등록 등본은 지하철 역에 있는 무인 장치에 몇 백원을 내면 발급 받을 수 있는데 뭐 하러 위에 설명한 복잡한 가상현실 장치를 동반해 메타버스에서 이 행동을 해야 할까요? 메타버스가 제안한 메타버스를 사용할 이유는 현실 세계와 비교할 때 경쟁력이 없습니다.

메타버스라는 개념은 어쩌면 가상현실 장비와 함께 세계를 바꿀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먼저 지난 20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게임 업계가 고민해 온 가상 세계의 존재 이유와 이 세계가 실제 세계와 비교해 경쟁력이 있음을 고객들에게 납득 시킬 수 있도록 충분히 고민해야 합니다. 또한 메타버스가 전통적인 가상 세계와 별로 다르지 않으며 비슷한 고민과 설득이 필요하고 또 전통적인 게임에 맞먹거나 이를 상회하는 시간과 노력과 돈이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하기 전에는 결코 메타버스 개발로 성공할 수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