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에 말하는 기계를 붙이는 요구사항
애증의 컨플루언스에서 소개한 것 처럼 쓰레기집 스타일로 위키를 사용하는 입장에서 마음에 쏙 들지는 않지만 또 한편으로는 요구사항을 지금 수준 정도로 달성할 수 있는 뾰족한 다른 도구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항상 화를 내고 있기는 하지만 문제가 있을 때마다 적당한 방법을 찾아 가며 사용하고 있습니다. 컨플루언스 위키는 클라우드에서 동작하기 때문에 직접 코드를 수정해 튜닝할 수는 없기 때문에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거나 필요한 기능이 있어도 그냥 있는 그대로 사용하거나 고쳐 줄 지 안 고쳐 줄 지 전혀 알 수 없지만 아틀라시안 커뮤니티에 글을 남기고 다른 사람들과 불만을 이야기하는 정도가 할 수 있는 일의 한계입니다.
한편 이런 상황에도 여전히 위키를 사용하며 생각나는 요구사항을 정리해 두고 있습니다. 기존 온프레미스 서비스를 클라우드로 이전시키는데 집중하고 있는 아틀라시안이 컴플라이언스 달성 이외의 편의 기능을 빠른 시일 안에 제공해 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생각하지만 요구사항을 정리해 보면서 스스로가 위키를 어떻게 생각하고 또 어떻게 사용하고 싶은지, 또 개인적인 관점에서 이상적인 위키는 어떤 모양인지를 정리해 보는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위키와 함께 동작하는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요구사항에서 노션의 데이터베이스와 컨플루언스의 오더리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해 보고 데이터베이스에 필요하다고 생각한 기능을 정리했었고 위키에서 같은 페이지 안에서 관계 있는 항목에 의미를 부여하는 요구사항을 통해 한 페이지 안에 있는 요소들이 서로 연관이 있다고 의미적으로 표현할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또 도쿠위키를 사용한 경험으로부터 위키에서 문서 이름과 위치 변경은 히스토리에 포함되어야 할까?를 생각해 봤는데 내 결론은 문서 이름 변경 역시 문서 히스토리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쿠위키는 문서 이름 변경을 히스토리에 포함하지만 컨플루언스는 문서 이름 변경을 히스토리에 포함하지 않습니다. 또 계층형 위키를 쓰며 느끼는 관리방법의 충돌에서는 디렉토리나 네임스페이스 처럼 문서를 계층형으로 관리할 수 있게 만든 컨플루언스나 노션 같은 도구와 좀 더 전통적인 위키가 이런 계층형 관리를 지원하지 않는 점을 비교해 보며 어설프게 이런 관리 방법 양쪽 모두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한 위키에 여러 관리 방법이 존재해 생기는 복잡성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고 또 위키에 오래된 리비전에 의미가 있을까?에서는 오래된 리비전은 이들이 차지하는 스토리지에 비해 슬모가 적은데 이들이 검색된다면 그나마 차지하는 스토리지에 비해 조금은 더 쓸모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생각의 연장에서 오늘의 위키에 대한 요구사항은 위키에 말하는 기계를 붙이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계는 기계가 쓴 책을 살 필요는 아직 없어요와 현대의 새로운 글쓰기에 부정적이지 않음, 그리고 새로운 일 하는 방식에 적응하기에서 사용했던 표현인데 검색에 걸릴 것 같은 익숙한 표현으로는 ‘AI’입니다. 하지만 텍스트를 읽고 이들을 분석해 질문에 답하는 기계와 소프트웨어를 인공지능이라고 부르기에는 여러 모로 무리가 있다고 생각해 개인적으로는 이를 말하는 기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규모를 달성한 위키는 개인의 생산성에 꽤 큰 기여를 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주제를 검색할 때 구글에 검색하기 전에 먼저 개인 위키에서 검색해 이전에 비슷한 키워드로 작성했던 문서를 통해 이전의 경험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내 위키에서 내 이전 경험을 찾아본 다음 이를 바탕으로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면 바로 인터넷에 검색할 때보다 더 여러 키워드를 바탕으로 검색할 수 있고 이전의 경험을 통해 검색 결과를 필터링하기도 훨씬 쉬운 경험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하는 기계를 개발하는 곳과 말하는 기계가 읽을 만한 텍스트를 생상하는 도구를 개발하는 곳이 서로 완전히 다른 곳이기 때문에 말하는 기계가 읽을 만한 텍스트를 충분히 가지고 있지만 말하는 기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나리오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전에 10년 정도 원노트에 필기 노트를 해 왔는데 이 때 가장 절실히 필요했던 기능은 필기 인식 기능이었습니다. 기계학습을 통해 한 사람이 작성한 필기 데이터를 때려 넣으면 이를 분석해 상당히 엉망으로 쓴 글자들도 인식한 다음 검색할 수 있게 하는 기술들이 몇 년에 걸쳐 계속해서 나타났지만 원노트에서 이들을 사용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결국 오랫동안 원노트에 몇 백 기가 단위로 필기 노트를 작성해 도움을 받고 있었지만 결국 이들은 아주 제한적으로밖에 검색할 수 없었고 어느 순간 더 이상은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필기 노트 작성을 그만 뒀습니다. 또 원노트를 아예 사용하지 않게 됐고요. 웃기게도 현대에는 굳이 내 필기 데이터를 때려 넣지 않아도 애플 노트에 필기하면 아무렇게나 필기해도 이를 훨씬 더 잘 인식하고 훨씬 더 잘 검색해 줍니다. 하지만 애플 노트는 애플 환경 바깥에서는 완전히 쓸모 없어 필기 검색이 잘 된다 하더라도 쉽게 핵심 문서 작성 도구로 편입할 수는 없었습니다. 한편 최근 오피스 소프트웨어에 코파일럿이 추가되면서 원노트에도 말하는 기계를 사용할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이 말하는 기계는 원노트릐 필기 노트를 읽어 내 질문에 답하는 수준과는 거리가 먼 상태입니다.
한편 노션에서 말하는 기계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처음엔 많이 기대했지만 몇 번 사용해본 후에는 노션이 생각하는 말하는 기계가 위키를 작성하는데 기여하는 방법을 완전히 잘못 해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션의 말하는 기계는 문서를 작성하다가 줄 맨 처음에서 스페이스를 누르면 나타나는데 문서를 이어 쓰거나 지금까지 작성한 문서 내용을 기반으로 목록이나 다른 텍스트를 생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텍스트는 근본적으로 사람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르기 대문에 겉보기에는 문서를 제대로 작성한 것 처럼 보이지만 내용을 들여다 보면 문서의 맥락을 무시하고 또 작성하는 사람의 의도 역시 전혀 반영되지 않은 글자 각각이 말은 되지만 문서 전체를 보면 아무런 내용도 없는 텍스트를 생성해낼 뿐이었습니다. 농담 삼아 이제 은퇴해야겠다며 노션의 말하는 기계가 동작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올리기도 했지만 이 따위 수준으로는 줄 맨 앞에 민 칸이나 넣을 수 있게 당장 기능을 제거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기능의 문제는 말하는 기계가 사람을 대신해 문서를 직접 작성하는데 사용하도록 만든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서를 직접 작성할 수 있게 만들면 이미 이 순간 기능에 대한 눈높이가 하늘을 찌르게 되는데 실제 작성할 수 있는 문서 수준은 이에 한참이나 못 미치며 단시간 안에 기대 수준을 달성할 수 있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마이크로소프트의 접근은 훨씬 그럴 듯 한데 ChatGPT가 질문에 답할 때 답변의 근거나 출처를 확실히 처리하지 않는 상황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이에 기반해 출처와 근거를 잘 처리한 질문에 답하는 기계를 제시했습니다. 이 기계의 똑똑한 점은 문서를 직접 작성하게 만들어 기대수준을 끌어 올리거나 출처를 생략해 사람들이 답변이 옳다고 가정하지 않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관점으로 개인 위키에는 이제 필기 노트 시대와 비교할 때 기계가 쉽게 읽을 수 있는 텍스트가 엄청나게 쌓여 있고 이 텍스트를 읽은 말하는 기계에게 질문을 하고 기계의 답변을 읽는 정도 수준으로 말하는 기계를 도입하면 생산성을 크게 개선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웃기게도 정작 그런 거대한 텍스트를 작성하는 도구인 컨플루언스를 개발한 아틀라시안은 이런 흐름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이고 이런 조류의 한 가운데 있는 마이크로소프트는 검색엔진을 만들고 또 오피스 제품에 코파일럿을 포함했지만 정작 말하는 기계가 사용자들마다 개인화 된 아주 많은 텍스트를 읽어 개인화된 말하는 기계를 만들어낼 생각을 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둘을 합치면 분명 의미 있을 것 같은데 그러지는 않는 것으로 보아 원노트를 아주 오랫동안 써 오면서 받던 고통은 한동안 비슷하게 계속 될 것 같아 보입니다.
결론. 최근의 말하는 기계는 이미 작성된 거대한 비공개 위키를 읽힌 다음 개인화된 질문과 답변을 하게 만들면 생산성에 큰 향상을 가져올 수 있을 것 같지만 거대한 텍스트를 만들게 하는 회사와 말하는 기계를 연구하는데 돈을 대는 회사는 서로 상대에게 별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이는 마치 원노트에 필기 노트를 아주 오랫동안 사용하면서도 필기 인식에 의한 검색을 거의 사용하지 못해 왔던 경험과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만약 거대한 비공개 위키를 말하는 기계가 읽고 개인화된 답변을 할 수 있다면 위키의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을 겁니다. 노션이 선택한 말하는 기계가 직접 문서를 작성하게 만드는 접근은 사람 입장에서 아주 높은 기대 수준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코 좋은 접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