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할일관리 사례
트위터에서 할일목록을 관리하는 이야기를 보고 제 할일관리 스타일을 공유해봐도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트위터에서 이런 팁을 공유해 주시는 분들 상당수가 엔지니어셔서 요령을 따라하려고 해도 쉽지 않거나 다른 직군 입장에서는 잘 와 닿지 않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할일을 관리하고 기록하는 방식을 공유해 보려고 합니다. 다만 회사 할일을 공개하면 회사와 계약을 깨게 되니까 ‘완전히 똑같은’ 방식으로 관리하고 있는 제 개인 할일을 기준으로 설명하겠습니다.
할일은 지라를 사용합니다. 할일 관리 도구를 결정하는데 시간도 많이 걸렸고 또 그 사이에 거쳐온 도구도 많았습니다. 그 중 몇 가지만 이야기해보면 한마디로 우아한 앱인 Things를 한동안 사용해 보기도 하고 Trello, Microsoft Todo를 써보기도 하고요. 이런 앱들을 거치면서 알맞은 앱을 찾는데 가까워지기보다는 할일관리 앱에 대한 요구사항이 더 뚜렷해지기만 했습니다.
먼저 앱과 웹 양쪽 모두에서 사용할 수 있을 것. 앱이 아무리 편리하고 아름답더라도 하루에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는 이상 컴퓨터를 통해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앱이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모바일 앱만 지원하거나 맥만 지원한다면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할일 각각의 세부 페이지가 있어 설명이나 진행상황을 기입할 수 있어야 하고 할일 하나 하위에 서브 할일을 만들거나 다른 할일을 연결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할일 각각에는 간단한 우선순위, 언제까지 끝내야 하는지를 입력할 수 있어야 했고 카테고리를 분류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또 할일은 보통 오늘 할 일, 진행중, 완료 정도로 구분하면 됐지만 상황에 따라 할일의 상태를 더 정의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이런 요구사항을 한번에 만족하는 도구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일하면서 사용하는 지라를 내 개인 할일 관리에 사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단 지라는 대규모 팀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프로젝트 관리 도구입니다. 지라는 사용하기에 따라 복잡한 업무를 정의하는데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 이런 확장성 덕분에 단순하게 사용하려면 한없이 단순하게 사용할 수 있는데다가 내가 필요한 커스텀 필드를 추가하기도 너무나 쉬웠습니다. 여느 할일 관리 프로그램들처럼 할일 하나하나의 상태를 추가할 수 없는 것도 아니었고 할일 자체도 설명 필드를 추가하거나 시작일짜, 마감일자 외에도 내가 필요한 다른 날짜를 추가할 수도 있고 답글에 진행상황을 기록하기도 편했습니다. 오토메이션을 통해 매달 반복되는 일이 할일에 자동으로 나타나게 만들기도 편했고 같은 맥락의 할일을 검색하기에도 좋았습니다. 이 도구가 대규모 프로젝트를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개인이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개인에게는 무료이기까지 했습니다.
지라에 개인 할일 프로젝트를 만들고 태스크 상태를 네 가지로 구분해 사용합니다. 백로그, 할일, 진행중, 완료. 지라에는 원래 별도로 백로그 기능이 있습니다. 백로그에 할일을 추가하거나 기존 할일을 백로그에 보내거나 백로그로부터 꺼낼 수 있었지만 백로그에 할일을 넣으면 눈에 잘 띄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예 백로그를 태스크 상태로 정의해 항상 화면에 나타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사용하는 모양은 Trello에 가깝습니다.
이 상태로 그날 할일을 할일 칼럼에 추가합니다. 그날 아침이 되면 오토메이션에 의해 매일 할일이 이 칼럼에 자동으로 생성됩니다. 또 여러 날에 걸쳐서 하던 일이 이미 이 칼럼에 놓여 있습니다. 위 스크린샷을 살펴보면 지금 ‘맥스 테그마크의 유니버스’란 책을 읽고 있는데 이 책을 읽는데는 여러 날이 걸리기 때문에 책을 읽을 대는 진행중 칼럽으로 옮겨놨다가 그날 저녁때 다시 할일 칼럼으로 돌려놓습니다. 그러다가 책을 다 읽으면 완료 칼럼으로 보내고요. 책을 읽는 할일에는 책 태그를 달아서 나중에 단위가간동안 읽은 책 목록을 조회할 수 있습니다. 책 태스크를 열어보면 답글에 책을 읽으며 쓴 메모가 달려있습니다. 나중에 리뷰 글을 작성할 때 다시 열어보고 참고할 겁니다. ‘블로그’ 태그가 붙어 있는 태스크는 말 그대로 블로그 글을 작성하는 태스크입니다. 태스크 이름은 블로그 글 제목입니다. 하위에는 글쓰기, 공개예약, 검색엔진 등록 태스크가 서브태스크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블로그 태스크를 생성하면 자동으로 서브태스크가 등록되도록 해놨습니다.
지금 플레이하는 게임도 할일 중 하나입니다. 책 읽는 태스크와 달리 게임 태스크는 게임을 하며 느낀 점을 그때그때 메모하진 않습니다. 악마를 죽이는게 더 중요하지 메모하는게 더 중요한가요? 하지만 블로그에 간단히 적어두면 좋겠다 싶은 주제들은 태스크로 만들어놨다가 블로그에 쓰는데 이런 글을 게임 태스크에 연결해뒀습니다. 그래서 게임 태스크를 열어보면 이 게임을 플레이 하며 작성한 글 목록을 볼 수 있습니다. 항상 모든 게임에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닌데 오랜만에 할 말이 많은, 또 말을 하기 편한 게임을 발견하는 바람에 글 목록이 조금 길어졌습니다. 평소에는 이렇게 여러 글이 연결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저녁 주문’은 말 그대로 오늘 저녁은 배달음식을 시키겠다는 의미입니다. 배달음식을 먹기로 결정한 순간 태스크를 생성하고 배달을 시킨 다음 관련 정보를 간단히 남긴 다음 완료처리합니다. 배달음식을 얼마나 시켰는지는 가계부를 봐도 되지만 지라에서 할일을 검색해봐도 됩니다. 이 저녁 주문 태스크에는 ‘보조문서’ 태그가 달려 있는데 오토메이션으로 이 태그를 붙이면 위키에 문서를 생성하고 있습니다. 문서에는 주로 이미지를 붙여넣는데 지라 무료 버전은 스토리지 제한이 있기 때문에 이미지 같은 용량이 큰 파일을 첨부할 때 스토리지를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위키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위키 페이지를 생성하고 주소를 지라에 연결시키는데 오토메이션이 알아서 해줍니다.
오늘은 위키에 이런 로그를 남겼습니다. 사실 지라를 사용하는 이상 그 날 진행한 일 목록을 별도로 관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필터에 오늘 날짜 넣고 보면 되거든요. 이 목록은 순전히 제가 이렇게 생긴 뷰를 보고 싶고 또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할일을 처리해 감에 따라 목록을 하나씩 늘리는 재미도 있어서 이렇게 남기고 있을 뿐입니다. 회사 일도 똑같이 이와 비슷한 목록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목록에는 지라 태스크 모양의 오늘 한 일, 그 일에 대한 문서 링크를 붙여넣습니다. 만약 서브태스크가 아니더라도 어떤 일 하나의 하위 업무로 처리한 일은 위 ‘글 쓰는 날’ 하위에 들여쓰기 한 블로그 글 제목처럼 들여쓰기해서 표시합니다. 옆에 ‘블로그’ 링크는 사실 지라 태스크 안에도 들어있지만 위키에서 지라 링크를 누르지 않고도 글 링크를 누를 수 있으니 편하길래 옆에 붙이고 있습니다.
이 로그를 보니 오늘은 점심도 저녁도 사먹었군요. 지금은 이 글을 작성하는 중이고 이 글을 작성하고 나면 게임을 좀 할 작정이고 그 다음에는 물을 끓여 놓을 차례입니다. 다른 날은 이 목록에 운동이 추가되거나 일기쓰는 태스크가 추가되거나 다른 사람을 만나 술 마시는 일이 추가되거나 글 읽는 태스크가 추가되기도 합니다. 그날그날 일어난 일 중 나중에 생각할만 하거나 빈도를 기록해두면 도움이 될 것 같거나 진행상황을 메모해 두면 좋을 것 같은 일들은 일단 태스크로 만들어 놓습니다. 그래서 별 것 안 한 날도 이 목록이 꽤 길어지는 날도 있습니다. 당장 오늘만 해도 잘 보면 그냥 점심 먹고 글 쓰다가 저녁 먹고 게임하다가 잘 작정인 완전 한가한 토요일일 뿐이지만 이 목록만 보면 뭘 잔뜩 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할일을 관리하고 목록을 만들어놓으면서 생긴 좋은 점은 일기처럼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간결하게 알 수 있게 됐다는 점입니다. 무슨 책을 언제 읽기 시작했는지, 이 게임을 언제 시작했는지, 물은 언제 끓여놨는지, 마지막으로 블로그에 언제 글을 썼는지, 또 글 쓸 거리는 얼마나 남아있는지, 운동은 언제 했고 공과금은 언제 냈으며 읽을 짧은 글들이나 유튜브 비디오 보려고 남겨둔 것은 얼마나 남았는지를 편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업무와 개인 할일 모두 같은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방식으로 굳어지면서 이제 더이상 다른 할일 관리 소프트웨어나 새로운 할일 관리 요령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할일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