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증권을 토큰화 하려고 할까?
반 년 전에 증권을 토큰화 하려는 시도에 대한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반 년 만에 이 주제를 다시 읽고 이번에는 증권을 토큰화 하려는 시도가 가진 의미가 무엇일지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이전에는 증권을 토큰화 하려는 시도는 여전히 블록체인이 여러 가지 정치, 사회, 경제적인 실제 세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시도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별로 잘 된 것 같지는 않지만 왜 두 가지 토큰을 사용했을까요?에서 설명한 거버넌스 토큰 도입을 통해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의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나 여러 시장 참여자들이 서로를 신뢰할 수는 없지만 서로 연동되어 동작하는 어떤 서비스를 구축하고는 싶을 때 블록체인을 통하는 사례들이 실제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의 하나로 해석했습니다.
이번에는 경제적으로 조금 삐딱한 관점에서 증권을 토큰화 하려는 시도를 해석해 보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금융시장이 개인들에게 개방된 이유는 시장의 성장 속도나 시장에 매물이 나타나는 속도를 더 이상 개방되지 않은 시장이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싼 자동차를 일반인이 쉽게 구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대출이 생겼습니다. 주택 가격이 상승했지만 일반인이 이를 구입할 대출을 일으킬 수 없었기 때문에 개인 간의 전세 거래를 통한 대출이 생겼고 시간이 흐르며 은행들도 주택 담보 배출을 일반인들에게 내주기 시작합니다. 채권 물량을 시장에서 소화하기 어려운 상황에 다다르자 채권 시장을 일반인이 접근하기 쉽도록 구매 수량을 조정하고 시스템을 정비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을 연장해 보면 증권은 지금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무리 없이 판매되고 있고 주식 담보 대출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원활하게 실행되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주가가 떨어짐에 따라 정리매매에 의해 주식을 잃고 빚만 남아 곤란해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보면 확실히 그런 것 같아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증권을 토큰 모양으로 거래할 수 있게 만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증권은 오랜 기간 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규제 당국의 통제 하에 거래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전히 여러 사고가 일어나지만 그나마 사고가 일어남에 따라 통제 방법이 보강 되어 단기적으로는 피해자가 생기겠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계속해서 조금씩 더 안전해지고 있습니다.
반면 블록체인을 통한 거래는 이를 규제하려는 여러 가지 시도가 일어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충분히 안전하지 않습니다. 중장기적으로는 분명 블록체인을 통핸 토큰 형태 거래 역시 정부에 의해 어느 정도 통제되겠지만 그 전까지는 증권을 증권 모양 그대로 거래할 때에 비해 훨씬 적은 규제를 받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블록체인을 통한 증권 거래가 현재 증권 거래와 비슷한 수준으로 규제를 받기 전 까지의 시간 동안 증권을 토큰 모양으로 거래할 수 있게 만들면 더 약한 규제를 받으며 증권을 거래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전세제도를 통한 대출로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직 규제에 의해 충분히 보호 받지 못하는 시장에서 새로운 판로를 만들기 위한 방법임과 동시에 블록체인에서 주로 거래하는 사람들의 위험 감수 성향과 규제 회피 성향을 만족시키면서도 전통적인 증권을 거래할 수 있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한편 규제가 충분하지 않은 점 때문에 블록체인 상의 토큰과 실제 세계에서의 증권 사이의 연결은 여전히 규제 당국으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블록체인 상에서 토큰 거래 자체는 규제 당국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 자체를 이용하기 위한 것일 수 있지만 거래가 일어난 다음 블록체인 상의 토큰과 실제 세계의 증권 사이의 연결은 규제 당국의 보호 없이는 성립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체로 평화로울 때는 이 연결 관계를 충분한 권한을 가지지 않은 주체가 보증할 수 있다고 나서겠지만 문제가 생기는 순간 이런 애매한 보증 주체의 보증은 순식간에 무의미해지고 실제 세계의 증권과 연결 관계를 입증하지 못하는 블록체인 상의 데이터만을 지갑에 들고 있게 되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미 실제 세계에서 규제 당국의 감독 하에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멀쩡하게 거래하고 있는 증권을 갑자기 토큰화하려고 한다면 블록체인을 통한 원활한 거래를 위함이라고 밝은 면을 보기에 앞서 이미 원활한 거래가 일어나고 있는 대상이 왜 블록체인을 통해 거래 가능해져야 하는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