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T의 메타버스의 상호운용성에 대한 접근
새로 온보딩 하시는 분께서 문서를 파악하신 다음 생긴 여러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을 여러 번 거치다 보니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당연하게 생각한 주제들이 실은 여전히 별로 당연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중 하나는 메타버스의 상호운용성과 NFT가 왜 서로 항상 같은 곳에서 튀어나오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사실 메타버스의 상호운용성만 놓고 생각하면 굳이 NFT가 튀어나와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여러 가지 서로 다른 가상 세계가 있고 각각의 가상 세계에서 통용되는 물건이 다른 가상 세계에서도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통용된다면 이를 상호운용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전에 '여러 세계 사이에 물건 호환'에서 간단히 설명한 적이 있는데 이 설명 안에 딱히 NFT가 비집고 들어갈 만한 틈도 별로 없습니다.
한편 상호운용성은 메타버스 바깥의 다른 분야에서는 같은 표준을 지키는 서로 다른 여러 소프트웨어가 서로 통신하고 마치 한 가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것처럼 동작하는 모양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가령 액티비티펍 규약을 준수하는 여러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들은 서로 다른 소프트웨어로 구동되지만 대부분의 영역에서 서로 상대가 어떤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지 신경 쓰지 않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서로의 글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현대에는 아주 널리 사용되는 것 같지는 않지만 한때 블로그 세계에서 많이 사용하던 RSS 역시 상대가 어떤 블로그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지에 상관 없이 글을 읽거나 새 글 링크를 얻을 수 있던 상호운용성의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메타버스의 상호운용성과 NFT가 서로 비슷한 장소에서 함께 튀어나오는 이유를 NFT가 현재에 이르는 과정을 제가 이해하는 범위 안에서 설명하겠습니다.
NFT는 뭐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몇몇 블록체인에서 제공하는 토큰 규약으로 토큰 하나가 다른 토큰과 구분되는 모양이라면 NFT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가령 한국은행권 지폐에는 일련번호가 기입 되어 있고 이 일련번호는 모든 지폐에 걸쳐 값이 다른데 이 특징만 생각하면 한국은행권 지폐는 엄밀한 의미에서 NFT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행권 지폐는 실제 세계에서 같은 금액권은 모두 똑같이 취급되므로 실제로는 NFT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블록체인 상에서 NFT가 아닌 토큰은 실제 세계에서 같은 금액권이 똑같이 취급되는 것처럼 종류가 동일하면 모두 같은 토큰으로 취급됩니다.
가령 내가 가진 1메틱과 다른 사람이 가진 1메틱은 블록체인 상에서 다른 일련번호를 가지고는 있지만 이 토큰을 지불할 때는 똑같은 토큰으로 취급되므로 NFT가 아닙니다. 한편 NFT는 한국은행권 사례와 같이 모든 토큰에 일련번호가 다를 뿐 아니라 이 일련번호의 다름에 따라 서로 다른 토큰으로 취급됩니다. 가령 크립토펑크 1번 NFT와 2번 NFT는 서로 다른 그림이 포함되어 있고 실제 세계에서도 이 둘을 서로 다른 토큰으로 취급합니다.
NFT를 처음으로 상업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할 때 그림을 사고 팔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NFT 규격은 메타데이터라는 블록체인 바깥의 대상을 가리킬 수 있는 방법을 포함했는데 이 메타데이터가 그림을 가리키면 이 그림을 NFT를 소유한 사람이 소유했다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상업화된 초기 NFT는 주로 그림을 팔았고 그럴 듯 했습니다. 일단 온라인 상에서 별로 뚜렷한 유통 경로가 없던 그림 파일을 사고 팔 수 있는 방법이 생겼습니다. 물론 이 방법이 법적으로 온전히 인정되는 것은 아니며 저작권이나 사용권, 소유권에 걸쳐 다양한 현실 세계의 법률이 미치지 못하는 사례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그림이 계속해서 사고 팔릴 때 실제 세계의 원작자는 아무 이익을 얻지 못하지만 NFT는 스마트컨트랙트 설정에따라 나중에 그림이 사고 팔릴 때도 매매금액의 일부를 원작자가 받도록 할 수도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미술 작품이 거래되기 전에는 온라인 상에서 프로필 이미지로 사용할 만한 그림을 NFT 모양으로 판매하곤 했는데 초기 컬렉션들은 한동안 아주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NFT에 포함된 이미지를 온라인에서 프로필 이미지로 사용하려면 이미지를 구입한 나 자신 역시 이미지를 별도로 저장해 내 프로필로 설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고 이는 종종 NFT를 저장한 다음 ‘이걸 왜 돈 주고 삼?’이라고 묻는 밈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느리게나마 NFT 이미지를 편안하게 임포트 할 수 있는 서비스가 나타났고 또 NFT 거래에 따라 소유권이나 사용권을 획득하는 사례가 나타남에 따라 NFT 거래가 의미 없지 않음이 어느 정도 합의 되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NFT는 지속적으로 그 ‘쓸모’에 대한 의문에 노출되었고 대중이 합의한 미술의 영역에 해당하지 않는 단순 프로필 이미지 NFT들은 이미지를 프로필에 사용할 수 있다는 판매자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 쓸모를 입증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의미 있게 유통되기 힘든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NFT에 ‘쓸모’를 부여한 사례가 나타납니다. NFT와 실제 물건을 연결해 소유권을 부여하는 사례, 고가의 레스토랑 NFT를 구입하면 이후 레스토랑에서 지속적으로 식사할 수 있는 사례, 또 NFT를 구입하면 실제 물건을 보내주는 사례들이 나타났습니다. 물론 이런 사례들은 이 물건의 구매 과정에 왜 NFT가 개입해야 하는지를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다만 전통적인 상거래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는 다른 상거래 방법이 있음을 입증하는 사례로는 의미가 없지는 않습니다.
한편 모든 상품이 ‘쓸모’를 가진 NFT 모양으로 판매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프로필 이미지 NFT들은 다른 NFT들과 마찬가지로 ‘쓸모’를 끊임 없이 요구 받았고 NFT 판매자들은 이 요구에 부응해야만 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바로 메타버스의 상호운용성입니다. 만약 어떤 NFT를 구입한 다음 특정 가상 세계에서 이 물건을 사용할 수 있다면 이 NFT에 어떤 ‘쓸모’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판매 방법은 전통적인 게임 업계에서 주로 사용해 왔습니다. 인게임 샵에서 가상 의류를 구입하면 게임 상에서 이 의류를 착용할 수 있고 게임에 따라서는 이 의류에 겉모양 뿐 아니라 실제 게임에 영향을 주는 능력치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고객들은 이 쓸모를 보고 가상 세계의 의류를 구입합니다.
몇몇 NFT들은 전통적인 게임 업계의 사례를 보고 직접 NFT를 사용할 수 있는 가상세계 혹은 메타버스를 만들어 보려고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주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전통적인 게임 업계가 가상 세계를 만들고 이 세계의 경험과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 그리고 이를 개발하는 과정에 엄청난 시간과 돈을 쏟아 부어 왔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게임 개발에 사용하는 미들웨어 환경이 발전해 그리 어렵지 않게 전통적인 게임 업계를 따라잡을 수 있을 줄 알았지만 NFT 제작자들이 단기간에 따라 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몇몇 NFT 제작자들의 메타버스 개발이 개같은 실패로 끝나고 이제는 전통적인 게임 개발 업계의 기술을 가진 주체가 개발하는 메타버스에 자신들의 NFT가 사용 가능해지는 상태를 고려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사례를 ‘똥 먹어 본 적 없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는데 겉으로는 전통적인 게임과 메타버스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이고 또 전통적인 게임에서는 그 게임의 규칙대로만 행동해야 했다면 메타버스는 그런 규칙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쉽게 말할 수 있지만 그런 규칙에 구애받지 않는 규칙이야말로 더 복잡하고 만들기 어려우며 유지하기도 어려운 규칙이라는 점을 전통적인 게임 업계가 모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똥 먹어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별 생각 없이 메타버스에 손을 댔다가 ‘아 이거 완전 똥덩어리구나’라고 깨닫는 순간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처음부터 똥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사람들이 아니면 메타버스에 도전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이제 NFT 프로젝트들은 ‘될 것 같아 보이는’ 메타버스 프로젝트를 찾아 그 프로젝트에 자신들의 NFT를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쓸모’를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접근이 유효하려면 먼저 인게임이 요구하는 에셋 모양이 잘 정의되어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인게임에 나타날 수 있는 여러 요소들의 형태와 사용 방법 역시 메타버스 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에 잘 설계되어 있어야 합니다. 또 NFT 프로젝트는 메타버스 개발팀이 요구하는 에셋을 제작할 능력이 있거나 제작을 요청할 돈이 있거나 개발팀이 직접 제작하게 만들기 위한 댓가를 지불할 능력이 있어야 하고요.
결론. 초기 NFT는 그림을 거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시작했지만 전통적인 미술의 영역 밖에 있는 NFT들은 그 쓸모에 대한 질문을 끊임 없이 받아 왔습니다. 이에 따라 현대의 NFT는 가상세계에서 자신들의 NFT를 사용할 수 있게 해 이를 ‘쓸모’가 있다고 말하려고 하는데 스스로 가상세계를 구축하기에는 경험과 기술이 없기 때문에 전통적인 게임 업계에서 소위 ‘똥을 먹어 본’ 사람들이 개발하는 가상세계를 찾아 자신들의 NFT를 사용 가능하게 하려고 하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