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블록체인의 관계 정립
전통적인 게임을 만들던 사람이 크립토 게임을 설계할 때 가장 걸리적거리는 것이 바로 블록체인입니다. 어떤 요소를 설계하든 생각에 블록체인을 집어 넣는 순간 항상 뭔가 꼬이고 이상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 문제로 한참 고민하다가 지금까지 제가 정립한 게임과 블록체인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겠습니다.
인게임 자원 거래 장치를 인게임 상에 만들었다 칩시다. 전통적인 게임을 설계할 때와 마찬가지로 거래소를 이용할 때 수수료를 부과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 인게임 자원들이 블록체인 상에 기입 되어 있다면 인게임 거래소를 통하지 않는 거래에는 어떻게 수수료를 부과해야 할까요. 실은 인게임 자원은 NFT 형태이고 애초부터 스마트컨트랙트에 거래 수수료를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는 ‘거래소를 이용할 때 수수료를 부과한다’는 사고방식과는 상당히 다른 접근을 요구합니다. 수수료가 서비스 이용에 대한 댓가가 아니라 화폐의 근본적인 속성이라는 관점으로 이해해야만 이상하게 비틀어진 설계를 피할 수 있습니다.
블록체인 상의 다른 NFT를 인게임에 활용할 수 있게 만들어 봅시다. 우선 NFT의 형태에 따라 인게임에 재현될 방식을 정의해야 합니다. 재현 방식 자체는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이미지라면 이미지 그대로, 모델이라면 모델 그대로 인게임에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인게임 에셋 형태를 정의하고 NFT에 대응하는 에셋을 제작하면 됩니다. 인게임에 역할을 정의하는 것은 조금 더 복잡합니다. NFT 회의론을 말씀하시는 분들이 흔히 드는 사례는 한 게임에서 얻은 집행검 NFT가 다른 게임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는 한 세계에서 아이템의 역할이 다른 세계의 규칙에서도 동일한 가치와 위상을 가져야 한다는 관점의 해석입니다. 틀리진 않았지만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게임은 서로 다른 세계입니다. 각 세계의 규칙은 다르며 한 세계의 가치와 위상이 다른 게임의 세계에서도 동일할 이유와 필요가 없습니다. 중앙화된 개발팀이나 덜 중앙화된 커뮤니티의 해석에 따라 집행검은 새로운 세계에서 다른 방식으로 재현될 수 있고 또 다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기능과 형태를 얼마나 잘 재현가는가 보다는 기능과 형태의 재현이 NFT 소유자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으로 보이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그래야 NFT를 다른 세계에 재현해볼 생각을 할 테니까요. 이는 이전 세계와 같은 역할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역할에만 집중하는 것은 상상력의 부족 때문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가장 골 아픈 문제는 NFT가 게임에 진입할 때 인게임 인스턴스와 NFT가 서로 독립적이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일입니다. 초기 크립토 게임들은 덜 중앙화된 블록체인 데이터베이스에 직접 의존했습니다. 아이템을 획득해 인벤토리로 이동하거나 내 캐릭터에 아이템을 장착할 때도 블록체인에 트랜잭션을 일으켰고 가스비는 둘째 치고 트랜잭션 딜레이 때문에 인게임 경험이 나빴습니다. 이후에는 데이터를 블록체인으로부터 읽어 오되 중앙화된 데이터베이스를 일종의 캐시처럼 사용하기도 했는데 블록체인 상의 에셋에 대한 소유권을 확인한 다음에는 중앙화된 데이터베이스에 아이템 인스턴스를 생성해 트랜잭션 비용을 없애고 인게임 경험을 전통적인 게임과 같은 수준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블록체인 상의 에셋과 인스턴스의 소유권을 대단히 주의 깊게 관리하지 않으면 인스턴스가 복제되어 게임에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았고 실제로 문제를 겪은 프로젝트도 여럿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중앙회된 게임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게임 경험을 유지하지만 블록체인 에셋으로부터 인스턴스를 생성하는 대신 블록체인을 일종의 읽기 전용 데이터베이스처럼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게임에 생성된 인스턴스는 블록체인 상의 소유권 변경 이벤트에 의해 유효성이 결정됩니다. 기술적인 복잡성이 늘어나지만 블록체인 상의 에셋과 인게임 인스턴스가 분리되어 복제될 위험성이 거의 없어집니다.
블록체인 게임을 설계하며 한동안 저를 괴롭힌 고민거리는 그래서 인게임 데이터베이스 대신 덜 중앙화된 블록체인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하는 것이 게임 개발과 사용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전과 다른 어떤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회의론을 주장하시는 분들의 관점이 모두 옳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결론은 덜 중앙화된 데이터베이스에 게임 에셋을 기록하고 이 데이터베이스를 게임 밖에서도 제한적으로 변경할 수 있게 하는데 이를 통해 각 에셋의 소유자들이 이전보다 에셋을 좀 더 자유롭게 다루도록 만들어 에셋의 가능성과 이로 인한 추가 가치를 얻을 가능성을 여는 것입니다.
블록체인 데이터베이스는 참여자들 모두에게 열려 있고 우리는 참여자들 중 하나로써 가능성에 기여할 뿐입니다. 먼저 전통적인 관점 그대로 게임을 설계하는 사람으로써 매력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게임을 개발합니다. 게임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분들이 만들어낸 결과를 덜 중앙화된 데이터베이스에 기록해 에셋을 직접 제어할 권한을 부여해 추가 가치를 얻을 가능성을 만들어내고 우리가 개발한 게임이 블록체인 상의 다른 참여자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어 블록체인 상의 여러 NFT가 유입되어 인게임에 재현되고 역할을 가지게 만들어 장차 참여자들 모두가 블록체인 상의 에셋을 통해 가치를 올릴 여지를 만듭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생각한 게임과 블록체인의 관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