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 토큰 모델은 PoS과 비슷하다
아직 시간이 충분히 흘렀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전통적인 블록체인 게임’이라고 표현해도 될 지 좀 걱정이기는 합니다만, 전통적인 블록체인 게임은 목적에 따라 여러 토큰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아마도 지난번 크립토 게임에 사용할 토큰 체계를 설계할 때 가질 마음가짐에 설명한 초기 블록체인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블록체인의 특성을 통해 실제 세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접근한 사례일 거라고 추측합니다. 이는 이른바 유틸리티 토큰이 경제시스템에 관여해 경제적인 문제를, 거버넌스 토큰은 정치시스템에 관여해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였을 겁니다.
유틸리티 토큰은 인게임에서 직접 사용합니다. 게임의 핵심 목표를 달성하는데 나타나는 장애물을 제거하는데 주로 사용하는데 이는 전통적인 P2W 게임의 동작과 비슷합니다. 인게임 상의 성장을 위해 다양한 메커닉을 통해 소비하게 됩니다. 성장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먼저 성장을 통해 유틸리티 토큰을 더 많이 얻어 인게임에서 경제적인 편의를 얻는 것, 다음은 성장을 통해 인게임을 포함한 온라인 상에서 명성을 쌓는 것입니다. 물론 온라인은 나아가 오프라인을 포함하고 대체로 후자는 전자를 포함합니다.
거버넌스 토큰을 구분한 최초의 결정은 유틸리티 토큰이 프로젝트의 장기적인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실제 세계의 동작이 올바르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거라고 추측합니다. 실제 세계에서 화폐는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데 사용하지만 같은 화폐로 정치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도 있습니다. 작게는 모임을 조직해 일관된 목소리를 내고 이를 대표에게 전달하는데 사용하고 크게는 대표의 권한 사용에 압력을 가하거나 스스로 대표가 되는데 사용합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런 과정을 로비라고도 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 세계에서 경제 활동을 통해 화폐를 많이 획득한 사람은 정치적인 힘을 가지게 됩니다.
만약 경제활동을 위한 화폐와 정치활동을 위한 화폐가 분리되어 있고 이들 각각을 취득하고 사용하는 방법이 다르다면 이런 현상을 완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않았을까요? 거버넌스 토큰은 커뮤니티를 통해 프로젝트에 기여하는데 따라 획득하는데 작게는 프로젝트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광고해 주는 것부터 크게는 프로젝트에 사용될 에셋이나 컨텐츠를 제작하고 또 프로젝트에 자문을 제공해 얻습니다. 이론적으로 인게임에서 성장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인게임에 집중하지만 여기서 얻은 유틸리티 토큰으로는 프로젝트 의사결정에 참여하기 어렵습니다. 의사결정에 참여하려면 인게임 뿐 아니라 커뮤니티 활동에도 참여해야 합니다. 이에 따라 인게임 상의 경제력이 프로젝트 자체의 의사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이론적으로, 또 이상적으로는 그렇지만 실제로는 잘 동작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근본적으로 두 가지 이상의 토큰 모두 법정화폐에 연동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법정화폐를 제외한 토큰 흐름만 본다면 경제활동과 정치활동을 분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법정화폐는 양쪽 모두로 교환할 수 있으므로 게임 밖 경제력이 인게임 및 프로젝트 의사결정 모두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인게임에서 획득한 경제력 역시 법정화폐를 통해 거버넌스 토큰으로 바뀔 수 있으므로 실제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똑같이 일어납니다.
목적 달성에 실패한 이상 전통적인 블록체인 기반 게임들이 그렇듯 둘 이상의 토큰을 채용할 필요는 적어 보입니다. ‘Multi-Token Games Are Trouble’의 언급 대로 둘 이상의 토큰에 가치를 부여하기 쉽지 않으며 시스템을 복잡하게 만듭니다. 이는 설계하기도 어렵고 사용자 입장에서 이해하기도 어려우며 운용하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반면 단일 토큰 모델은 설계하기도 쉽고 이해하기도 쉽고 운용하기도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개인적으로 단일 프로젝트가 단일 토큰을 사용하는 모델은 최근 이더리움이 전환한 PoS 모델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PoS는 일종의 운명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내가 토큰을 다량 보유한 이상 이 시스템의 영속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토큰의 가치가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트랜잭션을 확인할 때 더 큰 운명을 공유한 주체가 더 올바른 결정을 내릴 거라고 가정합니다. 이는 경제시스템과 정치시스템에 통용되는 토큰이 동일하기 때문에 가능해집니다.
단일 토큰을 채용해 이를 경제활동과 정치활동 모두에 사용하도록 설계하는 것은 설계에 의도적으로 스테이킹을 포함하지 않더라도 비슷한 효과를 낸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인게임과 분리된 스테이킹은 시스템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나중에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자. 결론. 블록체인 게임 프로젝트에 여러 토큰을 사용하는 모델은 사실상 실패했습니다. 단일 토큰을 사용하는 프로젝트는 명시적인 스테이킹 개념 없이도 일종의 PoS를 도입한 효과를 내며 현대에 블록체인 게임 프로젝트의 경제시스템을 설계한다면 단일 토큰을 고려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