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캐릭터가 게임 안에 있는 것이 맞을까
오늘은 제가 설계해야 하는 시스템을 준비하다가 남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몇몇 모바일 MMO 게임을 실행해봤습니다. 솔직히 이 게임들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필요할 때 필요한 부분을 보기 위한 플레이를 하고 필요한 부분을 보고 나면 거기까지만 플레이하고 다시 필요해질때까지 그대로 방치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이런 게임 종류가 늘어나다 보니 게임 가짓수나 거기 투자하는 시간의 합이 작지는 않습니다.
한 MMO 게임을 굉장히 오랜만에 실행했는데 로그인이 풀려 있었습니다. 로그인 옵션이 여러 개 나타났지만 저는 이전에 이 게임을 어떤 옵션으로 만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구글 계정, 애플 계정, 카카오 계정 등등을 모두 가지고 있었고 이 여러 계정을 사용하는 저는 한 명이지만 게임은 이 각 계정을 모두 다른 사람으로 취급합니다. 이 화면에서 잘못된 계정을 선택하면 게임은 이전에 내가 시간을 들여 플레이했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나를 마치 게임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 취급하게 됩니다. 내가 보길 원하는 장면을 보기까지 분명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죠. 다행히 원패스워드를 뒤져 이전에 이 게임에 어떤 계정으로 로그인했는지 단서를 찾아냈습니다. 이 게임은 구글 계정으로 로그인했었습니다. 다행이다 싶은 마음으로 구글 계정을 선택했습니다만 게임은 여전히 나를 모르는 사람 취급했습니다. 캐릭터는 하나도 없었고 시작하면 혈압부터 오르는 튜토리얼부터 시작해야 할 판입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니 게임은 지난 한동안 사용자 수가 줄어 여러 차례 서버를 통합했고 이 사이사이에 유저들이 접속할 때마다 캐릭터를 마이그레이션 한 것 같습니다. 한번에 알아서 내가 플레이하던 캐릭터를 적당한 새 서버에 넣어두면 좋겠지만 서버 통합 뿐 아니라 시스템이나 캐릭터 구조가 바뀌면서 마이그레이션 할 일이 여러번 생겼습니다. 매번 유저가 새로 접속해올 때마다 그때그때 마이그레이션을 했고 이를 잘 따랐다면 지금도 문제 없이 플레이 할 수 있었겠지만 이 기간 동안 저는 아예 접속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여러번 마이그레이션 할 기회를 놓친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마이그레이션을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된 것 같았습니다.
온라인 게임의 약관상 내 캐릭터는 내가 시간과 돈을 내서 플레이한 결과물이지만 내 소유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게임에 지불한 돈이 0은 아니지만 또 그 금액이 아주 크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내 시간과 내 돈을 투입해서 플레이한 결과물이 한동안 접속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라져있는데다가 내 캐릭터가 존재했었다는 아무런 근거도 안 남아있다는 점은 썩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그 캐릭터가 내 소유가 아니며 나는 그 캐릭터에 소유권이나 재산권을 주장할 수 없지만 그냥 그 자리에 남아있기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한편으로 요즘 인게임 에셋을 게임 바깥에 저장하는 유행이 업계 저편으로부터 밀려오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차라리 그런 시대가 더 빨리 와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캐릭터가 게임 안에 보관되는 것이 옳을까요. 게임이 유저로부터 점점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요구하는 이상 소유권의 유무를 떠나 내 캐릭터로 대변되는 내 경험의 기록은 개발사의 판단에 따라 허투루 날려버리기에는 아깝습니다. 지금은 스캠에 가까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NFT이든 이와 비슷한 다른 방식이든 내 플레이 경험이 개발사의 결정에 따라 아무 대항력도 없이 그냥 사라져버리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의 경험에 따르면 내 캐릭터가 게임 안에 보관되는 건 썩 옳은 것 같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