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 두 명이 만들 수 있는 MMO 게임은 없어요
최근에 전해 들은 일종의 구인 사기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하고 지나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구인을 하다 보면 이력서에 비슷한 패턴이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여러 해에 걸쳐 일했지만 지금은 폐업은 아주 작은 팀을 전전하며 어떻게든 개발을 진행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1년 남짓 한 시간을 소모했으면서도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경험을 얻지 못하기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개인적으로 운이 없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한편으로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낮은 허들을 반복하다가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의미 있는 경험을 하는데 실패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들이 학원이나 학교 같은 교육기관이라면 이런 분들과 함께 가능성이 있는 개발 경험을 쌓아 나갈 수 있겠지만 일반 기업인 이상 이런 분들이 원하시는 재직 기간을 인정할 수도 없고 심지어 면접에 모시기조차 어렵습니다.
이런 상태가 반복되다 보면 개인적으로는 ‘임계선 현상’이라고 부르는 상태가 나타나는데 업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임계선이 있고 임계선 위에 있는 기회와 임계선 아래에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항상 임계선 위에서 일하지만 종종 임계선 아래의 기회를 잡았다가도 상황이 나빠지면 곧잘 원래 위치로 돌아오곤 합니다. 그런데 또 다른 어떤 분들은 처음부터 임계선 아래의 기회로부터 시작해 영원히 임계선 위로 올라오지 못하시곤 합니다.
이런 분들의 이력서를 보며 답답해 하다가 한번은 이런 가능성이 별로 없는 작은 팀을 전전자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들어 볼 기회가 있었는데 우리 주변에 흔히 보이는 게임을 개발하는데 어느 정도 자원이 필요한지 잘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회사가 얼마나 현실적으로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종종 업계에는 아주 특이한 사례들이 나타나곤 하는데 이들이 특이한 이유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말 몇 년에 한 둘 씩 고작 한 두 명이 개발한 프로젝트가 아주 큰 돈을 벌곤 합니다. 이들은 성공을 거두며 본격적으로 컨텐츠를 추가하는데 투자해 정신 차리고 보면 처음 성공을 거둘 때의 보잘 것 없는 모습을 빠르게 탈피하지만 이런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이 나중에 보면 컨텐츠로 가득한 이 게임을 고작 한 두 명이 개발했다고 믿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게임 개발에는 생각보다 아주 많은 인원이 필요합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기는 어렵고 또 정확하게 이야기해도 프로젝트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정확하다고도 말하기 어렵지만 프로젝트에 어느 정도 인원이 필요한지는 대략 이런 요령으로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먼저 서로 다른 여러 클래스가 등장하는 롤플레잉 게임은 클래스 하나 당 전담 기획자 한 명이 필요합니다. 이 게임에 던전 여러 개가 나온다면 1년 동안 레벨디자이너 한 명이 관여할 수 있는 던전은 어느 정도 분업이 잘 된 상황에서 대여섯 개 정도입니다. 2년쯤 개발한 게임에 던전 100개가 나온다면 레벨디자이너가 15명쯤 필요하다고 계산해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모바일 게임에는 인터페이스가 아주 많이 나옵니다. 온갖 능력치와 강화 화면과 아이템 상세정보와 던전 설명과 업적 따위를 표현할 인터페이스가 수 없이 나오는데 대강 이런 인터페이스 한 화면을 개발하기 위해 기획자 한 명과 두 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계산하면 아주 틀리지는 않습니다. 가령 어떤 게임의 강화 과정에 10가지 화면이 나온다면 이 강화 시스템 하나를 개발하는데 기획자 한 명이 거의 2년을 온전히 매달려야 합니다. 이런 시스템이 여러 개 있다면 그 만큼 사람이 더 필요합니다.
수집형 게임은 어떨까요. 수집형 게임은 클래스마다 전담 기획자가 있는 형태와는 약간 다릅니다. 캐릭터를 찍어내는 한 조직이 각자 에셋 제작부터 전투에 이르는 캐릭터 하나에 필요한 광범위한 영역을 담당하는데 잘 분업화된 조직이 캐릭터 하나를 찍어내는데 한 달 남짓이 걸린다고 보면 됩니다. 여기서 분업화가 더 잘 되어 있거나 시스템이 더 잘 구축되어 있다면 주 단위로 기간이 감소할 수는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한 달에 신규 캐릭터 두 종이 출시된다면 이런 조직 두 개가 병렬로 일하고 있으며 최소한 두 배의 인원이 관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지금까지 아주 대충 살펴본 바에 따르면 던전 수 십 개와 마을 여러 개, 100화면 어치 시스템, 대여섯 개의 클래스와 몬스터 수 십 종류가 나오는 게임을 개발하려면 기획자만 수 십 명이 필요하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종종 시장에는 선임 기획자 한 명만 있는 팀이 주니어 기획자 한 명을 구인하며 앞에서 설명한 게임을 개발할 거라고 접근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앞에 잠깐 소개한 사람 한 두 명이 개발해 성공한 기적적인 프로젝트는 성공하는 순간 돈을 투자해 초기 상태가 쉽게 지워지기 때문에 한 두 명이 관여한 허술한 상태를 우리가 볼 기회는 거의 없습니다. 핵심은 게임 개발에는 기획자만 해도 생각보다 아주 많은 인원이 관여하며 그나마 팀이 체계적으로 움직일 때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은 팀이라면 훨씬 더 많은 인원이 관여해야만 개발할 수 있습니다.
결론. 고작 몇 명의 기획자가 관여해서 개발할 수 있는 클래스가 여럿 나오는 MMO 게임이나 캐릭터가 여럿 나오는 수집형 게임을 만들 수는 없으며 만약 이런 계획을 가지고 구인하는 팀이라면 이 팀에 지원할지, 또 이 팀에 계속해서 남아 있을지를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