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와 CD-ROM
회사 로비에서 사람을 기다리며 랩탑을 펼쳐놓고 빈둥거리다가 ‘I hate the metaverse’를 읽었습니다. 최근의 메타버스 논의가 스캠코인마냥 과장된 측면이 있고 한바탕 거품이 꺼지는 가혹한 현실을 맞이한 다음에야 제자리를 찾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제자리가 실제 제자리일 수도 있고 시장에서 완전히 사라진 결과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 키워드에 왜 달갑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지, 또 그런 반응에도 불구하고 이 키워드에 반응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 생각해봤습니다.
메타버스는 마치 기존의 게임의 확정처럼 보이기도 하고 현실의 연장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게임은 게임으로 남아야 재미있고 현실을 메타버스화 하는 건 지금으로는 생산적이지도 않고 조잡하며 불편합니다. 메타버스에서 월마트를 이용하는 경험이 얼마나 쓰레기같을지는 심지어 그 영상을 안 보고서도 짐작할 수 있을 지경입니다. 메타버스에 구축된 기업의 전시장은 당연하게도 실제 전시장보다 말 그대로 후질 겁니다.
제 관점에서는 이런 측면을 보고 메타버스를 쓰레기라고 하기에는 약간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초기 인터넷과 비교가 올바르지 않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걸 어떻게 써야 할 지 잘 모른다는 점에서는 초기 인터넷과 비슷합니다. 이보다 더 비슷한 사례는 게임 업계가 CD-ROM을 처음 마주한 시점일 겁니다. 게임 개발자들은 이 거대한 용량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지 잘 몰랐습니다. 이 시대에는 아직 3D 그래픽을 사용할 수 있지도 않았습니다. 이 거대한 용량에 개발자들은 일단 동영상을 집어넣었습니다. 몇 년에 걸쳐 게임 중간에 미리 렌더링한 영상을 재생하는 형태가 유행했고 CD-ROM은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생각해보면 그 시대에는 CD-ROM 여섯 장 짜리 윙커맨더4 같은 게임도 있었습니다.
지금의 메타버스도 비슷한 느낌입니다. 다들 이 개념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잘 모릅니다. 그러니 일단 현실의 경험을 그대로 가져와보려고 합니다. 당연히 말도 안됩니다. 메타버스에서 실제 세계와 같은 쇼핑경험을 하는 것이 편리한가요? 효율적인가요? 아니면 재미있나요? 어느 쪽도 아닙니다. 그래픽은 조잡하고 조작은 불편하고 심지어 접속 자체도 까다롭습니다. 디센트럴랜드는 브라우저에서 짧은 시간마다 크래시 되고 비디오게임 업계에서는 오래전에 해결한 문 문제나 3차원 공간에서 플레이어와 공간의 스케일 문제를 그대로 다시 겪고 있습니다. 또 실제 매장에서 저는 시리얼 상자를 집어 들어 뒤에 적힌 영양성분표를 읽을 수 있지만 메타버스의 월마트에서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상자를 어떻게 집어 들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반면에 현대의 웹에서 구입하면 상자를 스캔한 고해상도 사진을 스크롤만 하면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실제 세계의 월마트를 메타버스에 구현해 놓는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다만 지금은 CD-ROM에 영상을 가득 집어넣던 시대와 비슷합니다. 이런 사이에 누군가는 똑같은 게임을 CD-ROM 두 장에 나눠 GDI vs. NOD로 구분하기도 하고 CD-ROM 여섯 장에 영상을 가득 채워 인터랙티브 무비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결국 이런 시도들이 쌓인 다음에야 대용량을 보다 생산적인 방향으로 사용하는 프로젝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메타버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가령 저는 오늘 좁은 책상에 랩탑을 펼쳐놓을 자리가 마땅찮아 랩탑 암을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상품 페이지에서도 암을 3차원 공간에서 살펴보거나 책상에 붙여 놓은 실제 사진을 올려놓질 않고 있었습니다. 리뷰어들의 유튜브는 광고에 가깝고 블로그에는 제가 원하는 각도의 사진이 없었습니다. 메타버스에서라면 이걸 이리 저리 돌려 볼 수 있지 않았을까요. 내 책상에 붙여보고 관절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벽에 부딪쳐 가동되지 않는 각도가 생기지는 않을지 미리 알아볼 수 있지 않았을까요.
지금의 메타버스는 CD-ROM 초기 시대와 비슷하고 한마디로 난장판에 쓰레기입니다. 하지만 이대로 두고 손가락질하기에는 우리가 이를 잘 사용한 사례를 아직 본 적이 없어 판단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 시장에 직접 뛰어들 생각이라면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생각해야 하고 밖에서 구경하는 중이라면 조금 기다렸다가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